애초 인터넷 공간은 이용자 제작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를 상품 및 홍보수단으로 바라보는 업계와 정치권의 손길이 와닿았다. 결국 '왜곡된 UCC 담론의 전성시대'가 됐다는 게 민경배 교수(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의 진단이다.
왜 '왜곡'됐다고 보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늘날 인터넷 공간을 이끄는 동영상 UCC엔 '3가지'가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 '철학', '공론장'이 바로 그것이다.
민 교수는 "잘 포장된 상품으로서의 UCC, 선거홍보 수단으로서의 UCC만 있을 뿐"이라며 사용자의 부재를 지적한다.
또 "참여·개방·공유·집단지성 및 신뢰는 사라진 채 오직 흥행만을 고려한 엽기적, 자극적 영상만 난무한다"며 철학의 부재를 꼬집는다. 끝으로 이 둘의 부재가 당연히 공론장의 부재로 이어진다고 본다.
8일 예정된 언론광장 주최 '왜곡된 UCC 담론 진단: UCC 공론장은 가능한가' 토론회에서 발표될 민 교수의 발제문을 들여다봤다.
"UCC는 선거 운동 시기 홍보영상물과 다를 바 없다"
'UCC 대비하는 자, 12월 19일(대선) 웃으리'(동아일보, 1월 13일자), 'UCC를 알아야 대선에서 승리한다, 23일 설명회 개최'(아이뉴스24, 1월 14일자)' 등 언론 매체에 등장하는 UCC 관련 기사 제목만 봐도 UCC 열풍을 느낄 수 있다. 이제 UCC는 한국 정치 변동의 핵심 변수로까지 성장했다.
그러나 민 교수는 "UCC란 과거 선거 운동 시기만 되면 흘러넘치던 홍보영상물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유력 대권 주자인 한나라당 이명박 전 시장의 '명빡이'('마빡이' 패러디)와 '꼭지점 댄스', 박근혜 전 대표의 피아노 치는 동영상 등에서 볼 수 있듯 UCC가 '네티즌에게 인기를 끌만한 재미있는 동영상을 제작해 배포하거나 중계하는 것' 쯤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 교수는 UCC-대선 관련 기사를 분석한 뒤 "UCC를 선거 전략의 핵심적인 수단으로만 간주하고 있을 뿐, 이용자들의 자발적 참여로 생산되는 UCC 본래의 의미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한다.
네티즌 공론장의 잠재적 가능성은 애초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다. 그는 차라리 "지금 UCC개념은 '동영상 콘텐츠'란 말로 교정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용자제작정보'를 말하면서 정작 중요한 '이용자'는 사라졌다는 얘기다.
"네티즌, 수동적 바보가 아닌 능동적 행위자"
국내 정치권에서 올 대선을 앞두고 동영상 UCC에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 계기는 지난해 미국 중간 선거에서 대표적인 동영상 UCC 웹사이트 '유투브'에 올라온 동영상이 민주당 승리에 기여했다는 보도가 국내에 소개되면서부터다. 다음 두 대조적인 장면을 보자.
#1. 몬테나 주에서 공화당 콘래드 번스 상원의원은 육류가공단체 주최 농장법안 공청회에서 10초 정도 졸았던 모습이 '번스의 낮잠'이라는 동영상으로 퍼져 여론이 악화돼 역전패를 당했다.
#2. 지난달 23일 '유투브'에 공개된 '졸린 맥케인 의원'이란 제목의 동영상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의회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할 때 존 맥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의 졸고 있는 듯한 모습을 찍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 경우 네티즌들은 "부시의 지루한 연설을 그렇게 오랫동안 보고 있을 필요가 없다"며 번스 의원 때와는 정반대되는 반응을 보였다.
민 교수는 "국내 정치권에서 UCC를 바라보는 시선은 분명 수정돼야 한다"면서 "정치권은 단지 동영상 UCC의 위력에만 주목할 뿐, 그것이 인터넷 공론장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해석되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어 "동영상 그 자체보다 더 강력한 것은 네티즌의 상황적 맥락에 따른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해석력이다, 네티즌은 수동적 바보가 아니라 능동적 행위자다"고 충고한다. 그는 "정치권은 고작 새로운 동영상 홍보수단으로, 인터넷 업계는 수익 창출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로 UCC를 사고했을 뿐"이라고 본다.
공론장의 싹이 나기 전, 상업화에 포획된 동영상 UCC
동영상 UCC의 급격한 확산과 함께 새로운 문제점들도 떠올랐다. 민 교수는 '이용자 생산 콘텐츠'가 아니라 '이용자 복제 콘텐츠(User Copied Contents)'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심각해진 저작권 문제와 자극적이고 유희적인 정보가 더 많다는 점, 그리고 '낚시성 동영상'들의 무분별한 유포로 인한 '신뢰의 상실' 등을 거론했다.
민 교수는 "공론장의 싹조차 틔우지 못한 상태에서 상업화의 손길에 먼저 포획된 동영상 UCC의 현 주소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진단했다.
이밖에도 민 교수는 발제문에서 UCC의 유래와 이 말이 널리 사용된 배경, 텍스트 및 이미지 UCC의 '동생'격인 동영상 UCC의 현황, 그리고 '형'들에 비해 공론장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동영상 UCC의 문제점과 이유 등을 설명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언론광장(상임대표 김중배) 창립 3주년 기념 심포지엄 및 4차 정기총회의 일환으로 8일 오후6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다. UCC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다양한 쟁점을 점검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예정이다.
토론회에서는 민 교수의 발제에 이어 명승은 <매경인터넷> IT 전문기자, 최내현 <미디어몹> 편집장, 황용석 건국대 교수 등이 토론자 나선다. 사회는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겸 언론광장 총무가 맡는다.
덧붙이는 글 | - 토론회 관련 문의는 언론광장 사무국 (02)720-3721으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