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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관호 기자의 <청바지를 입은 예수, 뉴욕에서 만나다>
나관호 기자의 <청바지를 입은 예수, 뉴욕에서 만나다> ⓒ 성안당
나는 인간 예수를 존경한다. '신'으로서 예수에 대해선 아직 유보 상태다. 예수의 말씀, 예수의 행동은 도저히 따라할 엄두가 안 나서 문제지, 백 번 지지한다. 하지만 지금 교회에 대해선 별로 그러하지 못하다. 기독교에 대한 마음 상태가 그렇다.

그래서 나관호 기자가 <청바지를 입은 예수, 뉴욕에서 만나다>를 펴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반가웠다. 아, 2천년 전 예수의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겠구나. 게다가 '청바지를 입은 예수'라면 박제화 된, 교조화 된 예수가 아니라 살아있는 예수이겠구나 하는 생각.

일단 나관호 기자를 먼저 소개해야겠다. 나관호 기자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200대 강사에 선정된 기독교커뮤니케이션 분야 전문가다.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M.A)을 전공했다. 토지에 관해서 가장 혁명적인 주장을 했던 헨리 조지의 사상을 알리는 한국헨리죠지협회를 비롯 사람낚는어부선교회 등에서 기독교문화사역을 했다.

지금은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과 서든크로스 기독예술신학원 교수로 재임 중이다. 약력을 보면 알 만한 단체도 있고, 모르는 단체도 있다. 다만 현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 중이고, 대표적인 시민운동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문화전략위원으로 활동한 것에서 나관호 기자의 활동 이력을 짐작할 뿐이다.

폴로셔츠에 청바지 입은 예수

우선 이 책은 무척 기발하다. 살아있는 예수를 인터뷰한다는 발상 자체가 그렇다. 2천여년전 사람을 인터뷰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상식으론 불가능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인터뷰한다?

책에서 예수를 인터뷰하는 인물은 가상으로 설정한 뉴욕타임스의 조셉 메이어 기자다. 그는 살아있는 예수를 인터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하지만 그는 예수라고 자신을 밝힌 인물을 인터뷰하러 간다. 게다가 같은 시간대에 탐 크루즈를 인터뷰하기로 돼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됐을까. 당신이라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점이 이 책을 읽는 첫 번째 지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 지극히 적은 가능성에 다가서는 것, 고정관념을 깨는 것, 진실로 믿어보는 것이 예수를 만나는 방법이라고 저자는 말하는 듯하다.

이 책의 저자는 그래서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매 에피소드마다 몇 가지 질문이 나온다. '당신은 예수님이 역사적 인물인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신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나요?', '당신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귀하게 여기나요?'와 같은 질문들이다.

책의 주인공은 예수지만 이 질문들은 내가 만나는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던져도 무방하다. 어쩌면 이런 질문을 풀어가는 일이 예수를 만나는 방법이라는 것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메이어 기자는 탐 크루즈 대신 예수를 만난다. 아, 그런데 예수의 모습이라니. 검고 조금은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에 파란색 폴로 남방셔츠. 청바지를 입고 신발은 검정 폴로 모카 로퍼. 게다가 영화까지 즐긴다. 당신이 생각하던 예수의 모습과 일치하는가.

이런 모습을 통해 예수는 신화의 위치에서 현실로 내려선다. 2천여년전 당시 사람들이 입는 옷을 입고, 먹는 음식을 먹던 예수라면 2007년엔 21세기의 방식으로 더불어 살지 않겠는가. 만약 예수가 2천년전 복장으로 서울 한 복판에 나타난다면 분명 영화 촬영중이거나 광고를 찍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청바지 입은 예수를 표현한 이는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예수는 그만큼 먼 존재다. 저자는 복장을 자세히 설명함으로서 예수를 순식간에 우리 가까이에 있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 앞에 예수가 있다면 양복을 입고, 운전을 하고, 때론 청바지에 손에는 휴대 전화를 들었지만, 변하지 않은 1세기 당시의 사상과 전인적인 가치관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볼 것이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 돋보여

@BRI@이 책은 기독교 서적이다. 아마 서점에선 틀림없이 기독교 코너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교회 관련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을 비롯 우주 이론, 물리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가 곳곳에서 나온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함께 예수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 수집을 했는지 엿볼 수 있다. 메이어 기자가 "로마의 병사가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흰 물이 나왔다. 이것은 죽음을 꾸민 증거가 아닌가"라고 질문하자 그에 대한 예수의 답이 대표적이다.

"24시간 이전에 파열된 심장에서는 피가 흐르고 심장 주위에 피가 고이는 주머니가 생깁니다. 그리고 혈청이 가라앉으면 하얀 액체가 생기죠. 긴 주사바늘로 오른쪽 가슴의 다섯 번째 갈비 쪽에서 왼쪽 심장을 향하여 찌르면 바늘이 심장의 벽에 닿는 순간 많은 양의 흰 물을 뽑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논지를 설명하기 위해 너무 한 방향의 정보만 가져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즉 진화론을 약육강식론이라고 비판하지만 아나키즘의 대표적인 이론가인 크로포트킨이나 신채호 같은 이는 진화론에서 줄기차게 이야기해온 '모두는 서로가 맞서 싸운다'라는 상호항쟁의 의식이 '자연에서 개체들이 서로 도와가며 생존한다'는 상호부조의 관점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 탄생 이전 수많은 동물의 멸종 등 단지 창조론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다. '진화론에 잘못된 부분이 많다'가 곧 '창조론이 옳다'는 명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실 예수, 정작 이 시대의 이야기는 없어

<청바지를 입은 예수 뉴욕에서 만나다>는 아주 쉽게 쓴 성경이다. 기독교에 관심이 없거나 이해가 없는 사람이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 점은 이 책의 큰 미덕이다.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예수는 친근하고 자연스럽다.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하게 살짝 기도를 하고, '아빠 하느님'이라는 호칭까지 사용한다. 이 점은 형식에 치우친 요즘 기독교에 대한 간접 비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갖게 한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이스라엘이 로마 지배 하에 있던 당시 예수는 피압박민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어루만졌다. 만약 그 시대 예수라면 지금 커피숍에서 뉴욕타임스 기자와 인터뷰를 나누기보다는 농민이나 노동자, 철거민, 장애인들을 찾아다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FTA 협상' '농업 개방' '무허가 주택 철거' '도시 개발' 등과 관련한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가슴아파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에서 이런 문제는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메이어 기자가 "노동자와 농부들이 정부나 회사 시책이 불의하다고 이에 맞서서 데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요?"라고 한 질문에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죠"라고 답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그리곤 끝이다. 물론 이런 사안에 예수가 일일이 답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저자가 그 시기 예수의 마음으로 들어간 것이라면, 이에 대한 최소한의 답은 유추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들었다.

메이어 기자가 우주의 크기에 대해 지나치게 놀라는 장면은 다소 어색하다. 숱한 정보를 접할 뉴욕타임스의 기자가 우주의 크기가 엄청나다는 정보에 놀란다는 것은 예수의 크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지나치게 상대화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미 예수를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었을 정도라면 상당히 마음을 연 상태다. 그런데 시시콜콜 예수를 의심하는 모습도 좀 부담스럽다.

신도가 아닌 사람이 성경을 다룬 책을 읽었으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저자가 던진 화두들은 오랫동안 머리 속에 남을 것 같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화두는 바로 다음 문장이다.

"인간의 삶이 진화의 연속이라면 왜 인간의 도덕성은 발전하지 않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나요?"

청바지를 입은 예수, 뉴욕에서 만나다

나관호 지음, 성안당(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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