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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들은 요즘 봄나물 캐는 일이 있어 소일거리가 생겼다.
ⓒ 전갑남

퇴근길에 우리 집 근처 밭에서 나물을 캐고 있는 이웃집 할머니를 만났다. 옷을 단단히 입으셨다. 머플로로 목을 감싸고 눈만 보일정도로 안전무장을 한 차림이시다.

"날이 찬데, 할머니 나물 캐시네!"
"하도 심심해서 나왔어."
"요즘 날씨가 유별나죠?"
"뒤죽박죽이야. 개구리가 다시 들어가겠다니까!"


할머니 말마따나 요즘 같아서는 종잡을 수 없는 날씨다. 경칩이 지났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날이 차다. 어제는 때 아닌 함박눈까지 펑펑 쏟아졌다. 2월이 3월 같고, 3월로 접어들어서는 2월 같은 날씨가 며칠째이다. 봄 들머리에 내린 눈이 장관이었지만 겨울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하는 착각이 든다.

할머니는 며칠 전 날이 푸근하여 마늘밭 비닐을 벗겨놓았다. 이제는 땅이 얼지 않으리라는 예견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 밖의 한파가 몰려와 걱정이 많다. 푸릇푸릇한 마늘잎이 목이 시린 듯 생기가 떨어졌다.

봄을 시샘하는 날씨치고는 꽤 춥다. 봄 같은 겨울날씨가 계속되어 꽃샘추위가 적응이 안 되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들녘엔 봄기운이 속내를 들어 낸 게 분명하다. 들풀도 고개를 내밀어 푸른 기운이 감돈다.

"냉이를 줄까? 달래를 줄까?"

할머니가 나물 캐는 일을 지켜보았다. 장갑 낀 손으로 일삼아 땅을 뒤진다. 호미로 나물을 뽑아 털어내는 솜씨가 능숙하시다. 할머니 나물바구니를 들여다보니 냉이와 달래가 수북하다. 얼마나 많은 품을 들였을까?

▲ 할머니가 주신 달래와 냉이를 깨끗이 손질하였다.
ⓒ 전갑남
"할머니 많이 캐셨네!"
"아직 실하지는 않아."


말씀을 하면서도 손놀림은 빠르시다. 할머니 수고가 느껴진다. 이만하면 넉넉하다며 허리를 펴고 일어나신다.

"선생님, 냉이를 줄까? 달래를 줄까?"
"아녀요. 우리도 캐서 먹으면 되죠."
"이것을 누가 다 먹나? 내다 팔 것도 아닌데…."

"돈 만들면 좋죠? 우리한테 파시면 되겠네!"
"이웃간에 푸성귀를 팔아? 인심 고약하게!"
"그래도 그렇죠!"


할머니께서 별소리를 다 한다며 한 움큼을 건네준다. 한사코 손사래를 쳐도 막무가내이다. 할머니 손길에서 진한 인심이 느껴진다.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하지만 아직 시골에서는 이웃의 정이 남아있다.

냉이, 달래는 봄나물로 으뜸

현관문 열고 들어서자 아내가 어서 들어오라 반긴다.

"당신, 손에 든 거 뭐야?"
"이거? 냉이달래야."
"오다가 나물 캤어?"
"아니! 건너 집 할머니가 주셨어."


나물을 들여다 본 아내가 좋아한다. 저녁은 뭐로 해먹을까 고민했는데 마침 잘되었다고 한다. 나도 입맛이 깔깔하던 차에 냉이와 달래 요리가 기대된다. 소중한 것을 알면 마음도 느껴지는 법, 할머니의 마음이 너무 고맙다.

아내가 팔을 걷어붙인다. 흙이 묻어있는 나물을 손질하는 일이 만만찮다. 시장에서 나물을 사다먹으면 거의 손보지 않을 만큼 다듬어서 판다. 그러고 보면 사먹는 게 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검불을 걷어내고 허드레를 골라낸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흐르는 물에 수차례 헹구고 또 헹구자 손질이 끝난다. 한 끼 음식으로 넉넉하다.

"여보, 어떻게 해먹을까?"
"당신이 생각해 봐? 요리사는 당신이잖아."
"냉이로는 된장국 끓이고, 멸치 넣고 달래는 무치면 어떨까?"
"그러면 아주 좋겠네."


이른 봄, 봄나물의 대표적인 나물하면 냉이와 달래이다. 조금만 품을 들이면 지천으로 널려있는 나물을 캐서 맛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나른하고 몸이 노곤한 춘곤증에 냉이와 달래는 식욕을 돋우는데 그만이다.

냉이는 어린 순과 뿌리 모두를 먹을 수 있는 채소이다. 주로 무침을 하기도 하고 된장국을 끓이면 그 맛이 구수하다. 씹으면 단맛이 나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다. 간 기능이 떨어져 피로가 심한 경우에 좋고 숙취 해소에도 효과적이다.

달래 또한 잎과 알뿌리를 날로 무쳐먹는다. 부침재료로 이용하는데 달래장을 하여 뜨거운 밥에 비며먹으면 색다른 맛이 난다. 냉이와 함께 된장국을 끓이기도 한다. 겨울철 부족했던 무기질과 비타민을 보충해주는 음식으로 달래는 으뜸이다.

"와~ 입맛이 살아나는 것 같네!"

▲ 냉이를 넣어 끓인 된장국이다. 그 맛이 구수하였다.
ⓒ 전갑남
▲ 달래와 멸치를 넣어 조물조물 무쳤다. 색다른 맛이 났다.
ⓒ 전갑남
깨끗하게 나물 손질이 끝나자 아내는 요리 솜씨를 발취한다. 음식을 장만하는 아내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아내가 먼저 냉이국을 끓일 준비를 한다. 굵은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우려낸다. 이렇게 하면 국물 맛에 감칠맛이 더해진다. 국물이 끓어나자 건더기를 건져낸 뒤 된장을 풀어 파, 마늘을 넣는다. 이제 냉이를 넣고 한소끔 끓여내면 구수한 냉이된장국이 완성된다.

이제 달래를 무칠 차례다. 아내는 달래를 이용하여 멸치를 넣어 무칠 모양이다.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무치자 색다른 달래무침도 끝난다.

"여보, 다 되었다! 어서 와 밥먹자구."

아내가 식탁에 차려놓은 음식이 단출하다. 오늘 음식의 주인공은 냉이국과 달래무침이다. 밥은 찹쌀 팥밥이다. 김도 구워냈다. 냄새만으로도 침이 넘어간다.

▲ 찰밥을 김을 싸서 냉이무침과 함께 먹으니 아주 좋았다.
ⓒ 전갑남
밥을 김에 싸서 달래무침을 얹어먹는다. 그리고 냉이국을 떠먹으니 입에서 밥이 녹아들어간다. 구수한 맛이 입에 짝 달라붙는 맛에 꽃샘추위도 잊는다. 정말 봄을 느끼기에 알맞은 식사이다.

저녁을 물리고 설거지를 하는 아내가 즐거운 표정으로 말을 한다.

"할머니 덕분에 봄맛을 보았네! 쑥은 며칠 있어야 올라올까? 우리도 꽃샘추위가 지나면 들에 나가 나물을 뜯자구요. 쑥개떡도 하고 쑥국도 끓이게요."

아내는 나물을 캐고, 그 나물로 맛난 음식을 해먹어야 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봄 마중을 나설 때면 꽃샘추위도 멀리 달아나지 않을까?

태그:#봄나물, #달래, #냉이, #할머니,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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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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