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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바위 전경. 애랑의 형상이 조그많게 보인다.
애바위 전경. 애랑의 형상이 조그많게 보인다. ⓒ 김대갑
강원도 삼척에서 울진 방향으로 7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면 아담하면서도 예쁜 신남 해변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 해변에는 특별한 사연 하나가 전해져 온다.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는 귀여운 섬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이 '애바위'이다. 애와 같이 생긴 바위래서가 아니라, 애를 태웠다는 바위란다. 도대체 무슨 애를 그리도 태웠을까?

@BRI@'애랑은 죽어가고 있었다. 바닷물은 시시각각으로 섬을 삼키고 있었고 애랑의 몸도 푹 젖어갔다. 이대로라면 애랑의 목숨은 동해의 심연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이는 나를 이 바위에 내려놓으면서 잠시 돌김을 따라고 했다. 자신은 다른 섬에서 고기를 잡겠노라 하면서.

그러나 갑자기 애바위에 파도와 비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큰일이었다. 그이가 빨리 오지 않으면 애랑의 목숨은 파도 속으로 잠기고 만다. 애랑은 기도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그이가 어서 오라고.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구할 수 없었다. 지독히도 컴컴한 어둠이 바다를 덮치고 있었고, 악마의 발톱 같은 파도가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던 그이의 애간장도 타들어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쇳빛처럼 검푸르죽죽한 하늘을 원망하며 목청껏 외칠 수밖에 없었다. 애랑아, 애랑아, 애랑아…….'


해신당 공원 입구
해신당 공원 입구 ⓒ 김대갑
결국 애랑은 싸늘한 한 줌의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처녀의 원혼(손각시)을 달래기 위해 당집을 하나 만들었다. 당은 오래된 향나무가 바다 쪽으로 가지를 드리운 곳에 자리 잡았다. 마을 사람들은 당집에 제사를 지낸 후에야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애랑이 죽은 후로 바다에는 풍랑이 멈추지 않았으며 고기는 전혀 잡히지 않았다. 불길한 기운이 마을 전체를 돌아다녔다. 왜 이럴까? 분명 손각시를 달래는 제사를 정성스럽게 치렀는데, 무엇이 잘못된 걸까?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총각 하나가 당에 올라가 애랑을 향해 원망의 목소리를 늘어놓았다. 잠시 후 화가 치민 그는 해신당을 향해 오줌을 갈겼다. 그런데 이날 이후 출어를 나간 배마다 만선이 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처녀의 원혼이 풀린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제 서야 깨달았다. 애랑이 원한 것은 제물이 아니라 운우지정이었던 것이다. 한 번도 성교를 못하고 죽은 처녀 귀신에게는 음양의 조화를 맛보게 해주는 남성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신남해변을 바라보는 목제 남근상들
신남해변을 바라보는 목제 남근상들 ⓒ 김대갑
이 일이 있은 후,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나무로 만든 남근(일명 각좆)을 당에 바치게 되었다. 또 음력 시월에도 남근을 바쳤는데, 특별히 오(午) 날을 택해 제사를 지냈다. 오(午)는 12간지 동물 중에서 성기가 가장 큰 동물인 말을 지칭하는 것이다.

삼척시 원덕면 갈남리에 있는 신남해변에는 이런 슬프면서도 해학적인 전설 하나가 전해져 온다. 신남리 마을은 삼척 경내의 해안도로 중에서도 으뜸의 절경을 자랑하는 곳으로써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곳이다.

이 신남마을의 북쪽 끝머리에 가면 나지막한 산줄기가 위태롭게 서 있다. 산줄기는 바다 가까이에 작은 언덕 하나를 만들었는데, 언덕에는 푸른 해송들이 여린 잎을 조금씩 디밀고 있다. 억울하게 죽은 처녀의 원혼을 모신 당집은 이 언덕 숲 속에 고적하게 서 있다.

당집 문을 열면 아리따운 처녀의 영정이 중앙에 걸려 있고, 그 옆에는 목제 남근이 새끼줄에 엮어서 굴비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 당집의 이름이 바로 '해신당'인 것이다.

솔 숲 사이 해신당
솔 숲 사이 해신당 ⓒ 김대갑
신남마을에는 숫서낭과 암서낭이 있다. 숫서낭은 골맥이 할배를 모신 본 성황당이고, 암서낭은 해랑을 모신 해신당이다. 일반적으로 영동 해안 지방에는 숫서낭과 암서낭이 짝을 이룬 경우가 많다. 다만 신남마을이나 고성 문암리, 강릉 안인진리 처럼 암서낭에 남근을 깎아 바치는 것이 드물 뿐이다.

신남마을에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고성 문암리에서는 구멍 뚫린 바위에 커다란 남근 하나만 봉납하며, 강릉 안인진리의 경우에는 일찌감치 남근 봉납 제의가 단절되었다. 그러나 신남마을에서는 향나무로 만든 여러 개의 남근을 굴비 두름처럼 엮어서 당집에 걸어놓는다. 또 남성기 봉납 제의가 아직까지 행해지고 있다. 남근은 크기가 대략 20∼30cm 정도이며 3개에서 11개까지의 홀수 개로 만든다.

박물관 내부의 남근석들
박물관 내부의 남근석들 ⓒ 김대갑
현재 해신당 주변에는 특이한 볼거리 몇 개가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삼척시가 남성기 봉납 제의를 관광자원화하면서 조성한 성 민속 박물관과 남근 깎기 대회를 통해 설치한 남근 조각물이 그것이다. 성 민속 박물관은 어촌민속전시관 제3전시실에 마련되어 있다. 내부에는 세계 각국의 성 풍습과 관련된 각종 자료와 조형물,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울주군 암각화와 신라 토우에서 볼 수 있는 성 상징을 시작으로, 일본과 중국의 각종 성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또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중동 지역의 다양한 성문화와 성기 모형들을 적나라하게 전시하고 있다. 특히 거대한 남성기와 여성기 모형이 가감 없이 전시된 모습은 웃음과 신기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우리나라의 성문화가 이렇게까지 발전되었다니!

여성기 모형
여성기 모형 ⓒ 김대갑
뭐니 뭐니 해도 해신당 공원의 백미는 야외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목제 남근들이다. 통나무에 남성기를 상징하는 귀두가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는 모습은 해학을 안겨준다. 더 재미있는 것은 목제 남근상에 여인의 아리따운 몸매가 새겨져 있는 것이다. 절묘한 조화와 기발한 착상이 아닐 수 없다. 남 성기를 상징하는 목재상에 선명하게 새겨진 여인의 젖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S라인 몸매라. 허허, 거참.

이 남근 목들은 지난 1998년 삼척시가 개최한 '남근 깎기 대회'에서 엄격한 심사기준을 통해 선정된 60여 개의 작품들이다. 짙푸른 동해의 하늘에 있는 솜털 구름을 배경으로 위풍 당당히 서 있는 남근상들. 자세히 보니 그리움과 아쉬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해신당과 애바위를 바라보고 있다. 애랑은 죽어서나마 남복이 단단히 터진 모양이다. 한두 개도 아닌 수많은 남근들이 그녀의 음원을 달래주기 위해 열병식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희한하게도 이 남근 목들은 전혀 외설스럽지 않다. 그 남근 목들을 바라보는 여인네들과 남정네들도 외설스럽지 않다. 그저 농을 걸고, 쓰다듬고, 보듬을 뿐이다. 해안가의 성기 신앙은 풍요와 다산을 바랐던 민중들의 건강한 바람을 상징한다. 해신당과 남근조각공원에는 바닷사람들의 성스런 신앙이 곱다시 배여 있다.

거대한 남성기 모형. 주 계단실에 설치되어 있다.
거대한 남성기 모형. 주 계단실에 설치되어 있다. ⓒ 김대갑
정월 대보름날. 풍성한 몸매의 만월이 가벼운 손길로 제 젖가슴 주변을 어루만지는 미인처럼 수평선 위로 부드럽게 떠오른다. 달빛은 교교하면서도 요염한 빛을 해신당 주변에 뿌려댄다.

자정 무렵, 마을에서 엄격히 선발된 제관들이 해신당 주변에 금줄을 치고 주변을 조심스레 청소한다. 멀리 수평선과 산자락은 경건하게 너울거리고, 촛불을 밝힌 사내들은 정성껏 마련한 제물과 남근 목으로 제사상을 차린다.

올해에도 큰 탈 없이 풍요와 축복이 이 마을에 내려지기를 앙망하나이다. 한 사내의 조용한 음성이 차가운 밤 공기 속으로 아스라이 퍼진다. 이윽고, 사내들은 모든 제의를 마친 후 정성스레 불을 피운 소지를 하늘로 훠이훠이 날린다. 손각시의 원혼도 달래고, 마을의 풍요와 안녕도 바라고, 각 개인의 행복도 바란다.

잔물결의 파도가 부드럽게 오고 감을 반복하는 가운데 여남은 척의 배가 은모래 톱에 걸쳐져 있는 신남해변. 슬픈 사랑의 전설을 성 신앙으로 승화시킨 신남마을 사람들의 정서가 고요한 달 사이로 잔잔하게 흐른다. 슬픈 넋의 정서 또한 달 사이로 흐르고, 해신당을 바라보며 그 모습을 상상하는 나그네의 정서도 달 사이로 흐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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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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