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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먹음직스럽지 않은 장산집 보리밥백반
별로 먹음직스럽지 않은 장산집 보리밥백반 ⓒ 맛객

서울에 올라와서 이해할 수 없는 메뉴가 백반이었던 적도 있었다. 밥, 국, 김치와 몇 가지 반찬들. 특별한 요리도 아닌 그저 집에서 늘상 먹고 살았던 음식 아닌가. 그걸 돈 주고 사먹는 사람들까지도 이해가 안됐다. 적어도 짜장면이나 만두 정도는 되어야 사먹을 맘이 생기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다. 백반은 집 밥이 그리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그래 집에서 먹던 반찬들과 가까운 맛일수록 더욱 더 즐거운 식사시간이 된다. 그게 바로 백반의 일미다. 그렇기에 백반에는 보편타당성 있는 재료가 들어가야 하고 외식이라는 특별함보다는 집 밥처럼 부담 없는 편안함이 있어야 한다.

값 비싼 한정식을 매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함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남도 음식기행을 떠난다면 한 끼 정도는 백반으로 식사하기를 권한다. 지역의 특산물을 맛보거나 유명한 집의 일품요리를 맛보기도 촉박한 일정인 줄은 안다. 하지만 남도의 정과 진정한 손맛을 느끼는데 백반만한 게 또 있으랴.

수저로 떠먹던 게장

가오리와 붕장어가 말려지고 있다
가오리와 붕장어가 말려지고 있다 ⓒ 맛객

목포 여객선 터미널 가는 길에 동명어시장이 있다. 홍어 도소매점이 줄 지어 몰려 있고, 거리에는 말린 가오리를 비롯해 갖가지 크고 작은 생선들이 거리까지 점령해 일광욕을 하고 있다. 횟집이 몰려 있는 곳 조그만 골목길로 들어서면 코딱지만한 식당들이 보인다.

해성전복과 KOSA MART 사잇길이 식당골목이다
해성전복과 KOSA MART 사잇길이 식당골목이다 ⓒ 맛객

목포집, 도초식당, 완도식당, 신안횟집 등 골목 끝에는 '장산집'이라는 작고 낡은 식당이 있다. 목포에 오면 배가 부르든 아니든 꼭 들르는 집이다.

이곳의 보리밥이 꽤 먹을 만하다. 가격도 '착해' 3000원밖에 안한다. 정월 대보름달보다 큰 쟁반에 바닥이 안보이도록 반찬들을 채워 내온다. 국이 나왔음에도 생선이 들어간 찌개가 중앙을 차지한다. 찌개 한 가지만 가지고도 밥 한 그릇은 비워진다.

언젠가 이 집에서 나온 반찬 중에 게장이 있었다. 게장이라고 해서 살 발라 먹는 게 아니고 수저로 떠먹는 게장이다. 조그만 바닷게를 껍질째 갈아 언뜻 보면 갈치속젓 같기도 하다. 그걸 반 숟가락 떠서 밥그릇 한쪽에 비비면 맛보기도 전에 침부터 고였다. 참 고소하면서 혀를 뒤집어 놓았던 게장이었다.

그날 그나마 먹을 만 했던 고깃국, 밑에 지방 돼지고기는 어느 집을 가든 대부분 맛있다. 육질은 붉고 쫄깃하다. 수입이 아닌 게 이유인 듯하다. 쇠 그릇에 담아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그날 그나마 먹을 만 했던 고깃국, 밑에 지방 돼지고기는 어느 집을 가든 대부분 맛있다. 육질은 붉고 쫄깃하다. 수입이 아닌 게 이유인 듯하다. 쇠 그릇에 담아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 맛객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낮은 조명 때문에 좀 어둡다. 안쪽에 있는 좌식 테이블에서는 어른 서너 분이 왁자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주문을 받는 아주머니가 낯설다.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있자 보리밥이 나온다. 쟁반은 예전 그 쟁반인데 음식은 많이 달라졌다. 쟁반의 절반밖에 채우지 못한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한눈에 봐도 먹음직스럽지가 못하다. 주인이 바뀌었나 생각이 든다.

아무리 먹으려 해도 밥이 줄어들지 않는다. 반찬은 더욱 줄지 않는다. 막걸리만 축내다가 밥을 가져다 준 아주머니께 물었다.

"예전 그 아주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병원예요."
"어디 편찮으세요?"
"허리, 허리가 안 좋아서…."


음식이 부실해진 데 대한 답은 나온다. 사람이 바뀌니 식당의 음식도 바뀌는구나. 이처럼 음식이란 누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한데 그동안 식당의 간판만 보고 음식을 찾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황홀한 오찬(?)을 즐긴 데 대해 막걸리 한잔으로 위안을 삼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다음에 장산집을 가게 된다면 예전의 그 주인아주머니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근처 상인에게 맛있는 백반집을 물으니 장산집이 있는 골목 입구에 있는 완도식당을 추천한다. 테이블은 고작 두 개밖에 안 되는 집이다. 이 집에서 10여분 기다려도 출타중인 '쥔장'이 돌아오지 않아, 어떤 맛인지 알 수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번 들러보리라. 2.23~3.7일까지 음식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업소정보는 blog.daum.net/cartoonist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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