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흥미로운 일이다. 정작 대처가 당수였던 영국 보수당은 대처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고 오히려 국가 무상의료 시스템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 국가 건강 서비스)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우겠다는 카메론이라는 젊은 당수가 등장하고 나서야 대처 이후 지난 10여 년간의 암흑기를 벗어나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의 대선주자 사르코지가 대처 이미지를 차용하려고 애쓰더니 이젠 우리나라의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도 이미지 차용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영국에 와서 느낀 것은 대처의 신화가 한국에서 무척 과장되었다는 점이었다. 영국 사람과 이야기해 보면 대처 이름만 나와도 이를 가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국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공공서비스의 기반이 대처시절로 인해 매우 심대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대처에 이 가는 영국인 쉽게 찾을 수 있어
이는 비단 복지 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처 시절 전폭적인 민영화 정책 끝에 (결국은 그 뒤를 이은 보수당 메이저 수상 때) 민영화 됐던 철도의 경우, 최악의 서비스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시간이 안 지켜지거나 취소되는 경우는 부지기수고 열차표를 당일 날 사려고 하면 10만원 20만원이 우습다. 그나마 서비스가 나아진 것은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특히나 대처 집권 막바지에는 지방정부 예산까지 통제하여 공공 지출을 줄이려는 집착에 인두세 성격의 불공평한 지방세를 강제로 도입하자 전국적인 항의 시위가 일어나 대처는 1992년 영국 국민에게서 '쫓겨났다'.
그럼 경제는 나아졌을까? 대처 집권시기였던 1979년, 위기의 원인이던 인플레이션은 8.4%, 실업은 130만명이었던 반면 대처 집권 말기였던 1990년, 인플레이션은 10.5%, 실업은 200만명에 다다라 오히려 악화되었다.
경제를 살린다며 공공 서비스를 망쳐놓고는 경제조차 살리지 못했으니 대처 시절을 악몽처럼 기억하는 영국인이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05년 선거 때 노동당의 이라크전 정책 실패로 많은 사람들이 노동당에 항의하기 위한 전략적 투표, 즉 보수당을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당에 항의하기 위해 보수당에 투표한다는 흐름이 형성되었다.
그러자 노동당은 런던 도심에 대처의 캐리커처가 담긴 선전물을 뿌리고, TV엔 대처를 겨냥한 광고를 내보냈다. 하룻밤 자고 났더니 남편이 제멋대로인 사람으로 바뀌었고 전 남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당신이 어제 선택한 일이야'라고 말하는 내용의 광고였다. 한마디로 그러다가 다시 대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영국 국민을 '협박'한 셈이다. 물론 이는 노동당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했지만 대처 시절이 영국 국민 기억에 어떻게 남아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그런데 대처 수상은 처음으로 3번 연속 총선에서 보수당을 승리로 이끌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수치를 보면 그 당시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같은 대단한 지지라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대처가 당수로 처음 선거에서 이기고 집권한 1979년 득표율은 43.9%로, 이는 2차 대전 이후 보수당의 5번째 승리였지만 득표율은 그 중 가장 낮았다.
79년 대처 정부 등장 때 득표율은 역대 보수당 집권 중 최저
1997년 현 노동당 정부의 첫 집권 때도 유사한 득표율을 얻었지만 다수당 의석차(Majority, 다수당 총 의석수와 나머지 당 의석수 합계 간 격차)로 따져 보면 대처가 처음 얻은 의석차는 44석에 불과했다. 노동당이 97년에 획득한 178석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대처 시절 얻은 최대 의석차인 143석(1983년, 포클랜드 전쟁 후)도 현 노동당 정부가 두 번째 선거(2001년)에서 얻은 166석에도 미치지 못한다.
실은 보수당 3연속 승리의 주역은 대처 수상 자신이라기보다는 지리멸렬했던 야당인 노동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9년 패배 후 내전(Civil war)라고 불리는 심각한 노선 갈등에 빠져들었던 노동당은 노동당과 사회민주당으로 갈라졌다. 그런가 하면 선거에서 제시된 정책집(Manifesto)은 '세계에서 가장 긴 유서'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전혀 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했었다.
현재 영국 정치에서 아무도 대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92년 선거에서 노동당이 선거 승리 전망에 너무 도취된 나머지 전폭적인 세금 인상에 해당하는 복지 확대안을 내세우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승리한 경우를 제외하면 보수당은 10년여간 집권 가능성조차 보여준 적이 없다. 오히려 최근 그 반대의 색깔을 분명하게 내세우면서 신노동당의 이미지를 차용한 젊은 당수가 등장하고 나서야 보수당은 여론조사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국가 축소 주장한 대처가 국가 책임 방기로 위기인 한국에 맞을까?
지금 그렇다면 국가역할 축소를 주장했던 대처가 현재 우리나라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양극화, 사교육비 폭증, 보육 대란, 부동산 대란, 비정규직 확산 등등은 모두 국가가 역할을 방기해서 발생한 문제들이다. 무엇보다 그 당시 대처정부가 축소했다는 공공지출 수준도 현재 우리나라의 열악한 수준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또한 대처 시절에도 복지 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이미지가 겹치는 박정희정부처럼 대처 정부가 경제 개발 계획을 세워서 영국 경제를 살린 것도 아니다. 대처 수상은 단지 국가 소유 기업을 팔아 치우고, 국민임대주택을 팔아치우는 등 과도하게 비대한 국가를 축소하는데 집중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현재 대처를 우리나라에서 찾는 집단들은 주소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셈이다. 그들이 찾는 대처에는 우리나라에서나 통하는 과장된 신화가 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김보영 기자는 영국에서 박사과정으로 복지 정책과 실천에서의 정치 이데올로기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