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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보시기에다 미나리와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서 볼이 터지라고 한 입 가득 떠넣습니다.
큰 보시기에다 미나리와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서 볼이 터지라고 한 입 가득 떠넣습니다. ⓒ 이승숙
매년 이맘 때면 걸려오는 전화가 있다. 한 해도 빼먹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 바로 대구 사는 내 동생이 거는 전화다. 올 해도 잊지 않고 전화가 왔다.

"작은 누나야, 내일 집에 있으레이. 내일 미나리 도착할끼다 집 비우지 말거레이."

@BRI@동생이 미나리를 보낸 모양이다. 미나리는 생물이니 빨리 받아서 신선할 때 무쳐 먹으라며 집 비우지 말고 택배를 기다리라고 했다.

"오야 고맙다. 해마다 누나는 앉아서 얻어 묵네. 잘 묵으꾸마."
"뭐 빌 꺼 아이다. 봄에 나오는 미나리는 보약이다 카잖아. 자형 해드리라. 그라마 누나야 잘 있거레이."
"오야, 니도 건강하고 항상 조심하며 잘 지내거레이."

대구 사는 내 동생은 철마다 먹을 만한 것들을 우리한테 챙겨준다. 봄이면 미나리를 보내주고 가을이면 감홍시가 찾아온다. 저도 사는 게 빡빡할 텐데 매년 이 누나를 챙겨준다.

내 고향 경북 청도는 소싸움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먹거리도 풍족하다. 특히 과실농사가 잘 되어서 복숭아를 비롯해서 감, 대추 등 과일들이 지천으로 나온다.

미나리를 좋아하는 자형을 위해 친정 동생은 해마다 잊지않고 보내줍니다.
미나리를 좋아하는 자형을 위해 친정 동생은 해마다 잊지않고 보내줍니다. ⓒ 이승숙
대구와 경산을 지나 청도로 내려가자면 첩첩 산들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여기가 강원도가 아닌가 여겨질 정도로 청도는 산이 많다. 산이 많으니 골도 깊다. 그 깊은 골골마다 집들이 들어서 있고 산비탈에는 과실나무들이 있다.

산골짝에선 맑은 물이 흘러내려온다. 그 물들은 땅을 적시고 초목을 키워준다. 주변 산천을 닮아 순박한 사람들은 깎아 놓은 밤톨처럼 매끈하진 않지만 속 깊은 마음을 은근히 전해준다.

봄이면 청도의 산비탈들은 연분홍꽃밭이 된다. 농부들은 손바닥만한 땅도 허투루 놀리지 않고 다 과실나무를 꽂아두었다. 집 근처 밭에는 감나무를 많이 심고 산비탈 밭에는 복숭아 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청도의 봄은 복숭아꽃으로 시작된다. 무릉도원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청도의 봄은 복숭아꽃으로 수놓아진다.

청도의 '한재'라는 마을에선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천지가 다 미나리 향으로 덮인다. 골짝 골짝마다 하얀 비닐 온상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그 온상에는 겨우내 자란 미나리들이 파랗게 향을 내뿜고 있다. 청도의 깊고 맑은 물에서 자란 미나리들이 이 계절이면 제 맛을 낸다.

맑은 물로 농사 지은 청도 한재 미나리, 맛과 향이 좋습니다.
맑은 물로 농사 지은 청도 한재 미나리, 맛과 향이 좋습니다. ⓒ 박범이
미나리에는 독을 다스리고 피를 맑게 해주는 성분이 있다고 한다. 도시의 바쁜 일상 속에서 한 주 내내 헤매던 사람들은 주말 한때만이라도 시골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피로를 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주말이면 한재 미나리 밭을 찾는 사람들로 인근 도로는 출렁인다. 청도의 청정 공기와 오염 안 된 맑은 물로 키운 미나리는 도시 사람들에겐 보약과도 같을 것이다.

미나리는 비타민 A, B1, B2, C 등이 다량으로 함유된 알칼리성 식품으로,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는 혈액의 산성화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 미나리에는 풍부한 무기질과 섬유질이 들어 있어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활력을 준다. 그리고 칼로리가 거의 없어서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한다.

퇴근한 남편이 미나리를 보자 반색을 한다.

"처남이 또 미나리를 보냈네. 하여튼 처남은..."

남편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은근하게 자형을 챙기는 내 동생의 뜻이 남편에게 전달이 되었나 보다.

"여보, 큰 그릇에 미나리하고 고추장만 주라. 다른 반찬 아무 것도 필요 없어. 그냥 밥하고 미나리만 주라."

옷도 채 안 벗은 채로 남편은 미나리를 찾는다. 동생이 보내 준 미나리에는 고향 청도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인정이 살아 있는 내 고향 청도가 미나리 파란 잎 속에 담겨 있었다.

청도 화악산에서 내려다본 한재 미나리 마을 모습입니다.
청도 화악산에서 내려다본 한재 미나리 마을 모습입니다. ⓒ 이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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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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