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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에메랄드>
<예언자의 에메랄드> ⓒ 문학동네
모험의 발단은 한 쌍의 에메랄드였다. 짙은 초록색이 투명하게 빛나는 두 개의 에메랄드에는 각각 '우림', '툼밈'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그리고 이 한 쌍의 에메랄드를 가리켜서 '신의 계시'라고 부른다. 크기도 같고 색도 같지만 한쪽 에메랄드 속에는 해가 들어있고, 다른 에메랄드에는 초승달이 들어있다.

이 한 쌍의 에메랄드를 신의 계시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수천 년 전에, 여호와가 예언자 엘리야에게 선사한 에메랄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전설의 보석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남다른 힘이 깃들어 있다. 유대인의 대제사장이 입는 흉패에 이 보석을 달면,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전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이 한 쌍의 에메랄드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서기 73년 사해 서쪽 '마사다'에서 유대인 960여명이 로마군에 저항해 전원 자살했을 때 그 장소에 이 에메랄드가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의 정보만 가지고 어떻게 이 에메랄드를 찾을 수 있을까?

전설이 깃든 보석을 찾아 떠나는 모험 이야기

쥘리에트 벤조니의 <예언자의 에메랄드>는 전설이 깃든 보석인 '신의 계시'를 찾으러 길을 떠나는 두 남자 '알도 모로지니'와 '아달베르 비달 펠리코른'의 모험 이야기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2차 대전 직전의 상황이다. 알도는 베네치아의 왕자이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대의 보석 전문가이다. 그리고 아달베르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고고학자이다. 이 둘은 함께 힘든 발굴작업을 해온 절친한 친구사이이기도 하다. 마치 한 쌍의 에메랄드처럼.

알도와 아달베르는 함께 '신의 계시'를 찾기로 하고 마사다 요새에서 발굴을 시작하지만, 도무지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마사다 요새는 로마 황제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약탈한 후에, 유대 저항군 900여명이 몇 달 동안 틀어박혀서 마지막까지 로마군에 저항했던 장소다. 이미 폐허로 변한 이 요새의 구석구석을 파헤쳐서 두 개의 에메랄드를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꼴이다.

@BRI@이것 말고도 어려움은 또 있다. 알도와 아달베르에게는 두 무리의 적이 있다. 한쪽은 에메랄드를 되찾아서 자기 민족의 역사를 다시 일으키려 하는 사람들, 다른 한쪽은 중간에 에메랄드를 가로채서 한 밑천 챙기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알도와 아달베르는 과연 무사히 이 에메랄드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예언자의 에메랄드>는 전형적인 모험소설이다.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두 명은 시간이 지나면서 프라하, 이스탄불, 파리와 루마니아의 숲 속까지 종횡무진 한다. 보석에 대한 단서가 보일만 하면 어느새 그 단서는 다른 곳으로 넘어가 있다.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 계속 멀어져가는 에메랄드의 행방. 주인공은 성 소피아 대성당의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루마니아에서는 드라큘라 백작의 후손을 만나기도 한다. 때로는 기지를 써서 위기를 모면하고 때로는 총격전도 마다않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곳에서 변사체가 발견되고 주인공은 범인으로 몰리기도 한다.

모험소설이자 팩션인 <예언자의 에메랄드>

<예언자의 에메랄드>는 또한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뒤섞은 팩션(Faction)이기도 하다. 저자는 풍부한 역사적 자료를 동원해서 마사다 요새에 관한 이야기, 아랍의 영웅 살라딘과 드라큘라에 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모험소설답게 역사와 전설보다는 소아시아와 유럽을 넘나드는 두 주인공의 여정이 더욱 흥미진진하다.

작품을 읽다보면 폐허로 변한 마사다 요새와 이스라엘의 사막, 루마니아의 눈 덮인 산맥, 이스탄불을 떠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난다. 마치 한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것 같은 빠른 전개와 장면의 전환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계속 손에서 빠져나가는 보석의 행방을 찾아가며 온갖 악전고투를 벌이는 주인공의 모습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저자인 쥘리에트 벤조니는 '프랑스 역사소설의 여왕'으로 불리고 있다. 마흔이 될 때까지 평범한 주부였지만, 첫 남편이 죽은 이후에 막혔던 댐이 터진 것처럼 이야기들이 콸콸 터져 나왔다고 한다. 80세가 넘은 고령이면서 현재까지 발표한 작품들은 총 60편이 넘는다. 방대한 역사적 지식과 철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상상력이 풍부한 역사소설을 주로 집필한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그녀의 작품들은 전 세계 22개 언어로 번역출간되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예언자의 에메랄드>는 이 작가의 1999년 작품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읽다보면 단숨에 빠져들게 된다. 마치 이스탄불을 출발해서 파리까지 질주하는 오리엔트 특급열차처럼, 도시와 사막과 숲을 누비고 다니는 주인공의 신나는 모험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2차대전 전의 유럽과 소아시아의 도시 풍경도 볼 수 있다. 당시 이스탄불의 최고급 호텔이었던 페라 팰리스, 아랍인과 유대인의 해묵은 갈등, 영국의 점령에 대항하는 무리들의 모습까지. <예언자의 에메랄드>는 모험소설이면서 한 시대의 풍경이다. 신화와 전설이 개인과 집단에게 유효하게 작용하던 시절, 2차대전이 터지기 전의 나른하고 평화롭던 일상의 모습들. 전쟁으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리기 전, 그 시대가 막연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 쥘리에트 벤조니 지음 / 손종순 옮김. 문학동네 펴냄.


예언자의 에메랄드

쥘리에트 벤조니 지음, 손종순 옮김, 문학동네(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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