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희망 소비자인가? 당신이 매일 서너 잔씩 마시는 커피가 어떤 과정을 통해 당신에게 전달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또 당신이 즐기는 초콜릿 원료가 어디서 생산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커피와 카카오, 바나나를 공급하기 위해 어린아이들, 인디언, 가난한 제3세계 여성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부당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하루에도 서너 잔씩 마시는 커피 한잔으로 당신은 '된장녀'가 될 수도 있고 얼굴도 모르는 어느 인디언 농부의 희망을 구매한 소비자가 될 수도 있다.
<희망을 거래한다-가난한 사람들의 무역회사 막스 하벌라르>(서해문집)는 멕시코의 가난한 커피재배 농부들과 함께 일하던 네덜란드의 프란스 판 데어 호프 신부와 라틴아메리카를 위한 종교간 개발기구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니코 로전이 제3세계 농부들의 가난을 퇴치하기 위해 시작한 공정거래제품 막스 허벌라르 커피, 오케 바나나, 구이치 청바지 등을 설립하는 과정과 공정거래운동을 정착시키기 위해 극복해야만 했던 수많은 장애물에 대해 쓴 이야기이다.
이제는 공정거래와 유기농 커피 브랜드의 대명사가 된 '막스 허벌라르'라는 상표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주장하며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주민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 실존 인물에서 따왔다고 한다.
1985년 5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역 식당 한구석에서 프란스 신부와 니코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 작은 만남을 시작으로 네덜란드와 멕시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간 경제적인 격차가 만들어낸 가난을 퇴치할 공정한 거래에 대한 희망적인 발상이 싹트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개발 원조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불평등에 기초한 원조 체계에 있습니다"라고 니코는 말했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제공하는 원조의 대상이 됩니다. 제 생각으로는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이러한 원조의 형태는 인간의 가치를 빼앗습니다. 돈은 사회적 동력을 쉽게 파괴합니다. 더 나아가 원조금은 새로운 형태의 예속 관계를 낳게 합니다. 우리가 북과 남 사이의 보다 평등한 관계를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예속 관계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책에서
그들은 제3세계의 국민들이 경제적 예속관계에 있음을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삼았다. 공정거래를 위한 첫 시도인 막스 허벌라르 프로젝트의 밑바탕에는 인디언 커피재배 농부들의 자유와 독립적인 사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당신들의 선물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거지'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공정한 가격으로 지불해 준다면 우리는 원조 없이 홀로 설 수 있습니다."-책에서
인디언 커피재배 농부들은 중간 상인들인 코요테의 부당한 이윤착취와 식민지적 유통 체계 때문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었다. 프란스 신부와 니코는 그들과 협동조합 결성, 중간 상인을 배제한 공정거래를 실현시킬 막스 허벌라르 커피를 생산해 내기에 이른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다우버 에흐베르츠라는 단 한 명의 주자가 여러 상표를 거느리며 시장 70%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 외에 서너 개의 중소 기업체가 있었지만 경영의 노하우가 전무하다시피한 참여연대가 현명한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단 한 가지에 의지해 시장을 연다는 것은 대단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모험이었다. 그러나 프란스 신부와 니코는 수많은 방해와 난관, 박해를 극복하고 농민들의 노동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는 공정 거래를 정착시키기에 이른다.
현재는 막스 허벌라르로 대표되는 커피, 유기농 오케 바나나, 구이치 청바지 등이 네덜란드, 스위스,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에 기존의 대형 상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상품대에 진열되어 유럽 소비자에게 공정 거래가로 선택되어 팔리고 있다.
농민들이 공정거래를 위한 직거래를 시작하자 부당한 방법으로 많은 이윤을 갈취하던 중간 상인들과 싼값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던 대기업은 정부를 등에 업고 압력을 행사하고 살인 청부업자를 동원해 조합원을 살해하는 등 온갖 방해와 이간질을 마다지 않는다. 막스 허벌라르 커피가 공정거래에 성공한 이면에는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은 프란스 신부와 니코의 피땀 어린 노력과 사전 조사를 통한 충분한 정보가 밑바탕이 되었다.
막스 허벌라르는 커피를 시작으로 카카오, 차, 야생 딸기와 열매를 이용한 잼 등 친환경적인 유기농 상품을 차례로 개발하여 취급 상품을 확대하고 있으며, 공정거래 상품 소비율이 가장 높은 스위스에서 막스 허벌라르 커피의 시장 점유율은 8%, 오케 바나나는 15%에 이르는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공정거래는 가난한 제3세계 사람들에게 경제적 안정을 제공한 것 이상의 가치를 창출했다.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도 희망의 등불이 밝혀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책을 쓴 2001년 당시 공정거래 운동에는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13개의 유럽 국가에서 총 253개에 달하는 생산자 그룹이 참여하고 있으며 총 거래량은 6800만 유로에 달하고 있다니 6년이 지난 지금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들은 막스 허벌라르 커피가 맛있고 질 좋은 커피라는 확신으로 마신다기보다 '가난한 농부들을 도와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마신다는 기존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소비자들에게 단지 '이념'으로 존재하며 하나의 '제품'으로 인식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막스 허벌라르 제품들이 사회적으로 의식 있는 '행복한 소수'를 위한 배타적인 인증 상품이 아닌, 품질을 사랑하는 '행복한 다수'를 위한 제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막스 허벌라르 커피는 일조량과 장인정신으로 재배한 커피며 일단 한 번 마셔봐야 그 맛을 알게 되며, 품질은 제품의 품위로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제품에 대해 그러한 정의 안에서 사회적, 생태학적 측면의 책임을 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에코 생산품들에 최소의 사회적 가치를 충족시켜 줄 것을 제안하고 있는 그들에게서 지구의 환경, 먹을거리, 가난한 이웃들의 자존심을 회복시키고 지키려는 순수한 열정과 꺼지지 않는 희망의 등불이 감지되지 않는지….
한국 역시 노동력을 안팎으로 착취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덧 우리는 우리보다 약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착취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한국 역시 세계적 착취국가(선진국)의 대열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착취국가의 시민이 착취의 희생자에게 지켜야 할 도리를 깨우쳐야 한다는 박노자 교수의 일갈이 들려오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희망을 거래한다> 프란스 판 데어 호프·니코 로전 지음. 김영중 옮김. 2004년. 서해문집.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