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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하지 않은 봄추위와 함께 함박눈이 내렸다. 어제 새벽에 밖을 내다봤더니 온 세상이 하얀 눈 세상이었다. 날씨는 얼마나 추운지 마루에 선 내 맨발이 금새 얼어붙는 것 같았다. 수은주를 봤더니 영하 7도. 이건 완전히 '도로겨울' 날씨였다.
봄이 너무 일찍 왔다고 호들갑을 떨던 사람들을 혼내려는 것일까? 봄을 시샘해서일까? 3월 12일 날씨치고는 너무 춥다.
싸리비로 마당을 쓸었다. 집 밖 길에는 쌓인 눈이 참 애매했다. 7∼8센티미터쯤 되어 보이는데 눈을 치울까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마음을 정했다. 낮에 어차피 눈이 녹기야 하겠지만 그 사이에 이쪽으로 올라오는 차라도 있으면 비탈길에 곤란할 것 같았다.
모자에 목도리까지 하고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게 양 갈래로 눈을 치는데 동네 아랫집까지 근 500미터나 되는 길을 혼자 눈을 치우다 보니 금새 땀이 배는 것 같았다. 아랫집 사람들이 아직 안 일어났는지 그 집 골목은 물론 마당에 발자국조차 없었다.
다시 다음 아랫집까지 200여 미터나 더 눈을 밀어 나갔다.
이번 눈은 올겨울의 작별인사 같았다. 2월 중순부터 봄기운이 차지해 버린 우리 마을에 인사라도 하고 떠날 마음으로 겨울은 이렇게 무더기 눈을 내려보냈는지도 모른다.
눈 가래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아침 햇살을 만났다. 햇살이 앞 산꼭대기로 들기 시작했는데 눈에 반사된 햇살이 무척 고왔다. 멀리 덕유산 봉우리에는 눈꽃이 예쁘게 피어있었다.
우리 집 바로 아래 빈집을 지나다가 깜짝 놀랄 '물건'을 발견했다. 다가가서 보면 볼수록 영락없는 '물건'이었다. 얼른 집에 가서 카메라를 가져왔다. 사진이 약간 어둡게 나와서 플래시를 터뜨려 다시 찍었더니 번들거리는 것이 이건 완전히 막 '일'을 끝내고도 싱싱한 굳센 총각의 성기 모양이었다.
옆에 있는 물 호스가 얼어 터져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여러 개의 남근빙(男根氷)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밤 내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얼어 차곡차곡 쌓이다가 새벽녘 가장 온도가 떨어지는 시간대에는 결빙 속도가 빨라지자 약간 두텁게 얼기 시작했을 것이고, 그것이 자지의 귀두모양을 만든 것으로 보였다.
음지 마을의 어귀나 모악산 주변 등 음기가 강하다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남근석이 있는 것을 봐 왔지만 이토록 사실적인 남근을 본 적이 없다. 대지를 뚫고 약동하는 봄기운과 꽃샘추위가 함께 만들어 낸 걸작품이었다.
오후가 되면서 눈이 녹기 시작하여 말 그대로 '눈.물.'이 천지를 적시고 있었다. 봄기운에 밀려올 겨울은 이렇게 눈물로 하직 인사를 대신했다. 남근빙은 거의 다 녹아 없어졌고 질척한 흔적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