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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멧돼지고기는 부추 위에 얹어 식지 않게 가열한다.
삶은 멧돼지고기는 부추 위에 얹어 식지 않게 가열한다. ⓒ 강상헌
멧돼지고기라는 흔치 않은 재료와 한방 약재의 어울림이 빚어내는 맛이 심상치 않다는 지인(知人)의 떠벌임에 혹해 '한 맛 한다'는 이들을 얼른 불러 모았다. 동대문을 가운데 둔 로터리의 큰길가 동대문호텔과 국민은행 사이의 작은 식당, 밥상 9개의 소박한 음식점이었다.

멧돼지고기집이 교외에서 드물게 눈에 띄기는 하지만 과연 좋은 멧돼지고기로 요리하는지, 혹은 믿을 수 있는 음식점인지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식품 전문가들은 귀띔한다. 그런 뜻에서 서울 도심 한 가운데서 3년째 한 결 같이 손님을 맞으며 쓸만한 맛집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진성멧돼지'는 주목할 만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따라 SBS의 '웰빙 맛 사냥'팀이 취재에 열중이어서 한참을 수선스러운 분위기에서 기다려야 했다. 손님도 많은데다 요령껏 피하는데도 TV 카메라가 시선을 쏘아대니 괜히 심통이 나기도 했다.

담백하다, 부드럽다, 향이 고급스럽다, 위스키나 와인과도 잘 맞겠다, 삶은 부추와의 궁합이 완전하다, 토하젓이 예술이다 등 취재 중인 그들의 맛깔스런 대화 사이로 풍겨오는 기막힌 냄새가 시장기를 부추겼다. 허기지면 라면 한 사발도 천상의 음식 아닌가? 오늘 음식 맛 감상(?)은 실패 아닐지 몰라.

부추 위에 얹어 무르도록 푹 삶은 멧돼지고기는 과연 깊고 담백한 맛이었다. 모양은 삶은 일반돼지고기와 구분하기 쉽지 않았지만 고소함이 뒷맛의 깔끔함과 함께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구워서 먹어본 멧돼지고기 특유의 졸깃함과 대조되는 부드러운 물성(物性)과 상큼한 맛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주인 이현숙씨는 "좋은 재료의 확보가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드는 가장 큰 비법(?)이자 전제 조건"이라고 말한다. 멧돼지와 함께 유기농 발아현미, 진상품 나주 토하젓(민물새우와 천일염으로 담근 젓갈), 유기농 뽕잎차 등 '진성멧돼지'가 자랑하는 메뉴들은 '족보 있는 식품들'로만 짜여져 있다는 것. 또 한방약재나 양념 등 아무리 사소한 재료까지도 이런 원칙을 지킨다는 설명이다.

"시장이나 할인마트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재료값은 30% 정도 더 들지만 내 식구에게 먹일 수 있는 정도의 좋은 음식만을 손님상에 내야 직성이 풀립니다. 음식이 착해야 세상이 착해지죠."

재료도 재료지만 이 집의 인기는 주인 이현숙씨의 손끝에서 나오는 것이다. 남도 보성의 바닷가 출신인 이씨가 내는 밥상에서 꼬막 한 알만 집어먹어 보면 정통 남도의 손맛을 실감할 수 있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그 맛이 언급되었다며 즐겨 찾는 사람이 많다는 이 집의 꼬막은 속살처럼 야들야들한 첫맛과 씹을수록 졸깃한 뒷맛이 매혹적이다. 살아있는 맛이다. 꼬막만 몇 접시 먹는 이들도 많단다.

"서울 사람들은 꼬막을 삶아버려요. 삶는 것이 아니고 데치는 것인데 가르쳐줘도 못하는 사람이 많데요. 좋은 꼬막 버리는 거지요. 물론 잘 자란 싱싱한 고막을 구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맛나게 하는 데는 요령이 필요해요."

이런 매운 손끝에서 나온 보쌈김치는 이 집의 숨은 보석. 이 집을 찾은 유명 디자이너 홍미화씨가 이 김치를 일러 '보석김치'라 했다고 이현숙씨는 은근히 자랑하는데 이는 결코 빈말이 아닌 듯하다.

싱싱하게 내오는 보쌈김치는 입안에서 만만치 않은 저항과 함께 부딪치고 부서지며 불꽃같은 희열을 터뜨린다. 삶은 고기, 토하젓, 새우젓과의 앙상블은 도시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듯. 꽤 여럿 나오는 반찬들도 남도의 맛을 담았다.

한방재료와 함께 푹 삶은 멧돼지고기와 보쌈김치
한방재료와 함께 푹 삶은 멧돼지고기와 보쌈김치 ⓒ 강상헌
식사로는 멧돼지 뼈 감자탕과 남도식 추어탕, 칼치조림 등을 낸다. 수준급, 더구나 가격 대비 가치는 더 크다고 느껴진다. 고기를 삶는데 충분한 시간을 주는 고객에게는 더 맛있는 요리를 제공할 수 있단다.

멧돼지고기와 돼지고기의 차이는?

멧돼지고기 유통업체인 인터넷 식품기업 '고인돌가게'(www.goindolgage.com)의 이선자 사장에 따르면 멧돼지 새끼를 도축할만한 110kg 정도의 성체(成體)로 기르는데 걸리는 기간이 최소 11개월인데, 일반돼지는 6개월에 불과하다. 멧돼지는 야생성이 강해 사료와 환경도 일반돼지에 비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즉 비용과 시간이 일반돼지에 비해 2배가량 많이 든다는 것이다.

유통량이 많지 않은 특별한 고기이기 때문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물론 이 멧돼지는 야생멧돼지를 흑돼지와 교배하여 육종한 녀석들이다. 야생종은 법적으로 포획(捕獲) 도축(屠畜) 식용(食用)이 금지되어 있다.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사냥도 하지만 이런 물량은 유통되지 않는다.

멧돼지고기는 일반돼지고기에 비해 선홍색이 진하다. 비계가 적고 지방이 불포화지방산이어서 성인병으로 투병하는 이들의 영양식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맛이 깊고 담백해 한번 맛들이면 다른 고기는 싱겁게 느껴질 정도라고 마니아들의 말한다.

구워도 맛이 좋은데 냄새가 실내에 배지 않고, 상이나 바닥에 튄 기름도 쉽게 닦이는 것 때문에 소고기나 일반돼지고기와 다른 성질의 육류로 구분되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단점 1, 주차장이 없다. 지하철(1,4호선 동대문역)이나 버스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단점 2, 조리장의 기준 입맛이 남도의 약간 맵고 짠 정도에 맞춰져 있다. 대책은 맛에 관한 자부심 충만한 이 조리장께 3% 정도만 덜 맵고 짜게 해달라고 미리 요청(?)하는 것.

이 기사는 주간 '부동산신문'과 '생명시대신문'(www.lifereport.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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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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