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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 포스터
ⓒ 연기획
국내에선 올비의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라는 작품이 처음으로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염소 혹은 실비아는 누구인가>라는 작품은 미국 부조리극의 대표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올비의 색깔을 그대로 드러낸다.

에드워드 올비는 올해 79세의 미국 극작가이다. 미국 내 많은 연극계 인사들은 그를 생존해 있는 사람 중 가장 위대한 미국 극작가라고 평하고 있다. 공연은 50대 마틴의 소통되지 않는 사랑이야기로부터 시작해 모두를 파멸의 구덩이로 몰아넣는다.

동물과 교감을 하는 기이한 사랑 이야기에 대해 필자 역시 극중 인물 스티비, 로스, 빌리와 다를 바 없이 거부 반응을 보인다. 동물과 사랑을 나누는 이상한 집단의 치유과정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려는 편협한 모습을 본다.

그렇지만 실비아를 대하는 마틴의 모습은 단순히 동물과의 사랑이야기의 중요성 보다는 어떤 진실에 대한 민감한 레이더망을 작동하게 한다. 단순히 동물과 사랑에 빠진 사내에 대해 혐오감이나 가치판단을 떠나서 진실에 대해서 얼마나 옹졸하게 스스로 대하고 있는지.

그의 아내 역으로 나오는 스티비는 마틴의 이야기보다는 로스의 말을 더 신뢰하고 따른다. 마틴을 우상 모시듯이 하며 당신이 최고라고 칭찬하는 스티비. 그러나 염소와 동등한 위치에 놓이고, 자신이 꿈꾸던 그 이상적인 가정의 진실에서 벗어나는 순간 끊임없이 부정하고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반면 마틴의 친구인 로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뻔뻔함으로 승부한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전혀 책임도 지지 않고 받아들여지지 않는 진실에 대해 일단 밝히고 본다. 세상에서 존재할 수 없는 진실에 대해 로스라는 인물은 가차 없이 자신의 방식대로 밀고 나가버린다. 그에게 진실은 자신이 뱉는 그 말이 곧 법이요, 진리가 된다.

ⓒ 연 기획
빌리는 어떠한가? 그는 게이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기보다 집에서 자유분방함 가운데 살아간다. 빌리는 열린 사고, 약간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부모상이 무너졌다고 광분할 뿐이다.

나머지 세 사람과는 달리 마틴은 흔들림이 없다. 그는 염소가 아닌 실비아로 보이는 동물을 사랑하기에, 영혼을 나누기에 더없이 행복하다. 그는 동물을 사랑한,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해 다른 사람을 설득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서로 자신들이 바라보고자 하는 진실에 대해 부딪히다가 결국 폭발하고 만다. 마틴 부부와 빌리의 거실이었던 무대가 무너져 내린다. 낚싯줄에 의존해 기울어진 양 옆 출입구, 빽빽하게 꽂혀 있던 책은 책장이 앞으로 기울면서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닥은 이미 유리조각들로 난장판이 되어있고, 장식용 그림은 비뚤어져 순식간에 파괴된 공간은 뒤엎어진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삶의 터전이 무너져 평화로웠던 가정이 파멸에 이르는 것으로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스티비가 남편이 사랑했던 염소 실비아를 죽여 피가 줄줄 흐르는 시체를 집안으로 끌고 들어온다. 염소를 죽인 스티비의 시선은 이미 그 공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친다. 그녀는 로스가 가르쳐 준 목장에 가서 실비아라고 생각되는 염소를 죽여서 데리고 왔다. 피에 얼룩진 그녀의 옷은 실비아 즉 염소에게 느끼는 질투심의 극치를 보여준다.

마틴의 입에서 작은 소리의 괴성이 터져 나온다. 그는 "그녀가 아파하지 않았어?"라는 스티비에게 묻는다. 그 질문에 대해 스티비는 뜻밖의 대답을 한다. 스티비는 그녀도 너를 사랑하더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녀가 둘의 사랑을 인식한 건지 아니면 체념한 것인지 선택은 보는 이의 몫으로 남긴다.

인간과 사랑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것 아니면 혹은 저것이라는 그 질문이 나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할 이야기로 남는다. 진실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이기적으로 각자의 시선만을 타인에게 고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ot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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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사람. 프로젝트 하루5문장쓰기 5,6기 진행자. 공동육아어린이집 2년차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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