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의 금융기관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동결된 북한측 자금의 해제 문제가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의 조사결과 발표에도 불구하고 동결 자금의 처리 방향은 아직 오리무중이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는 BDA를 '돈세탁 은행'으로 지정하고 제재를 가하면서 북한 자금의 처리는 마카오 당국의 결정에 맡기는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마카오 당국을 포함한 중국측은 미 재무부의 발표내용에 반발하면서 북한 자금의 처리에 대해 명확한 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다.
북한은 일단 중국측의 결정을 지켜봐야 하는 입장이지만, 문제해결의 열쇠는 여전히 중국보다 미국에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전면 해제가 될지, 선별 해제가 될지, 혹은 단계적 해제일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북한은 BDA 동결자금의 전면해제 여부와 '2.13 합의'에 따른 비핵화 조치의 이행을 연계시키겠다는 뜻을 비쳐왔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이 내려지느냐에 따라 합의 이행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문제는 각국별, 기관별 이해관계가 엇갈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더구나 관계자들이 쏟아내고 있는 말에는 '협상용'과 '설득용', '법 논리'와 '정치논리'가 뒤섞여 정확한 실체 파악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미국 '법 집행'인가, '정치적 해결'인가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가 지난 2월 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에서 BDA문제가 6자회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처리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 약속이었다.
이 문제는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법 집행' 사안이라고 강조해왔던 미국이 180도 자세를 바꾼 것이다. 2005년 9월부터 진행해온 조사를 30일 이내에 종결시키겠다고 구체적 시한까지 못박았다. 그 동안 이 문제의 '해결'을 낙관해왔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14일 미 재무부의 발표는 이 시한을 일단 지킨 것이다. 그러나 발표내용을 보면 미국이 과연 6자회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고려한 조치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미 재무부는 발표에서 BDA의 많은 북한계좌 예금주들이 돈세탁과 달러화 위조, 마약 거래 등에 연루된 기업들과 연관을 갖고 있는데도 ▲비정상적인 거액 계좌의 출처를 입증하는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고 ▲북한 고객들이 불법 행위를 하고 기만적 금융 관행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했으며 ▲수수료를 받는 대가로 자기의 금융 시스템에 아무런 감시나 통제를 받지 않고 접근하도록 허용했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리고 제재조치로서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BDA와 연관된 계좌를 유지할 수 없도록 하고, BDA가 미 금융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 정도면 BDA로서는 궤멸적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마카오 금융시스템 전체의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조사결과를 내놓고서 "6자회담에 영향이 없도록 마카오 당국이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중국측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BDA 회장 "어떤 범죄활동에도 관련되지 않았다"
중국측은 중앙정부와 마카오 당국, BDA가 한 목소리로 유감을 표시했다. 친강(秦岡) 외교부 대변인이 밝힌 유감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6자회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둘째는 마카오의 금융 및 사회안정에 악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마카오 당국은 "BDA의 불법활동에 대한 증거를 발견치 못했다"고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스탠리 아우(區宗傑) BDA 회장도 16일 기자회견에서 "BDA는 어떤 범죄활동에도 관련된 바 없다"면서 법적 대응방침을 밝혔다. 그는 "BDA는 고객이나 예치금이 돈세탁이나 범죄행위에 개입돼 있다는 주장을 부인한다"면서 "이번 결정은 미 국내법에 따른 조치이기 때문에 우리는 마카오 법률에 따라 계속 영업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중국측의 이런 강한 반발은 일단 강하게 받아침으로써 이번 발표로 인한 동요를 최소화해 보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6자회담에 기여'라는 명분도 있다.
그러나 국제 금융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 재무부의 조사결과를 일방적으로 무시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중국측의 고민이 있다.
미국은 마카오 당국이 충분한 정보를 갖고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물증'과 '분석'을 전달하기 위해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를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이 조사 마무리를 위한 단순한 '모양 갖추기'인지, 아니면 불법계좌를 계속 묶어두기 위한 '압력용'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미국 언론들이 발표에 임박해서 BDA에 동결된 북한자금 2500만 달러 가운데 800만~1200만 달러만 풀릴 것이라고 전망한 것 등을 보면 미 재무부의 분위기는 확실히 '선별해제' 쪽으로 기울어 있는 인상이다.
힐 차관보 "북한에게 BDA문제가 해결된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
힐 차관보는 16일 6자회담 실무그룹 회의가 열리고 있는 베이징에서 "우리는 북한에게 BDA 문제가 해결된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며 거듭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는 "워싱턴에서 관련 발표가 있은 이후 아직 그들과 대화하지 못했다"면서 "추가로 협의를 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물론 미국 내 국무부와 재무부간 입장차이를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힐 차관보가 협상대표로서 전체적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느냐이다. 힐 차관보의 이날 언급은 상황을 충분히 통제하고 있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힐 차관보가 말한 '해결'이 그 동안 북한이 공개적으로 요구해온 동결계좌의 전면 해제를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힐 차관보의 머리 속에 있는 '그림'과 북한의 '기대치'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북한은 미 재무부의 발표가 나온 뒤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베이징에서 연쇄적으로 열리고 있는 6자회담 실무그룹 회의에 예정대로 모두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미·중간의 줄다리기가 장기화되고 문제해결이 지연된다면 상황은 언제 급변할지 모른다. 17일 미 재무부 실무팀이 마카오를 방문해서 마카오 당국에 조사결과를 넘겨주는 절차가 하나의 고비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