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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은 연분홍 물 들여 곱게 바느질한 옷을 차려 입은 가녀린 여인 같다.
진달래꽃은 연분홍 물 들여 곱게 바느질한 옷을 차려 입은 가녀린 여인 같다. ⓒ 김연옥
아직 남아 있는 찬 기운에도 화려한 봄꽃들이 여기저기서 꽃망울을 톡톡 터뜨리고 있다. 지난 18일 찾은 청량산(323m, 경남 마산시)에서도 봄꽃 냄새가 실바람을 타고 내 마음을 마구 흔들어댔다.

청량산은 내게 달콤한 첫사랑 같은 산이다. 몸이 무겁고 마음마저 복잡해지면 나는 우리 아파트 뒤에 있는 그 산으로 달려가곤 한다. 새 학기인데다 오랜만에 중학교 담임을 맡아 나는 요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19일에 있는 교내 환경심사 때문에 우리 반 아이 몇몇이 사흘 동안이나 늦은 시간까지 남아 교실을 꾸몄다. 나는 그들의 저녁을 챙겨 주며 함께 있었는데, 간간이 춤도 추면서 일을 즐겁게 하는 아이들 모습이 너무 예뻐 내 손전화에도 담아 두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그날 모처럼 청량산을 찾게 되었다. 아파트 뒷문을 나서자마자 생각지 못한 샛노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화들짝 놀랐다. 화사한 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샛노란 개나리를 보면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노란집>이 생각난다.
샛노란 개나리를 보면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노란집>이 생각난다. ⓒ 김연옥
노란색이 왠지 세상을 환하게 하는 것 같아 학창 시절에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노란 우산을 펼쳐 들면 괜스레 기분이 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을 정도로 말이다.

나이가 들어서는 노란 색깔을 보면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노란집>이 자꾸 떠올랐다. 프랑스 아를에 있던 그 노란 집에서 고갱과 다툰 뒤에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 버렸던 고흐. 나는 화려한 노란색에서도 깊은 슬픔이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고흐의 그림에서 보았다.

진달래꽃은 남자의 마음을 살살 녹이는 여인의 붉은 입술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진달래꽃은 남자의 마음을 살살 녹이는 여인의 붉은 입술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 김연옥
얼마 가지 않아 연분홍 진달래가 그만 내 마음을 붙잡았다. 마치 연분홍 물감으로 키 큰 나무들 사이사이에 점점이 꽃무늬를 찍어 놓은 듯했다. 그 예쁜 풍경에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청량산 이곳저곳에 진달래꽃이 피어 있었다. 연분홍 물 들여 곱게 바느질한 옷을 차려 입은 가녀린 여인의 모습이기도 하다가 남자의 마음을 살살 녹이는 요염한 여인의 붉은 입술을 보는 듯한 게 참으로 어여쁘다.

경남 마산시 청량산에서.
경남 마산시 청량산에서. ⓒ 김연옥
청량산에는 정상까지 하늘하늘한 연갈색 커튼 같은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바다가 계속 따라다녔다. 초록빛 나뭇잎이 무성해지면 감상할 수 없는 그윽한 풍경이다. 그 산에서 바라보는 파란 바다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리고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 떠 있는 조그마한 돝섬이 내 마음에 늘 정겹게 와 닿는다.

청량산 정상.
청량산 정상. ⓒ 김연옥
연분홍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이 되면 그 산은 더욱더 예쁘다. 마치 연분홍 등불을 켜 둔 것처럼 환한 느낌이 든다. 문득 학급 게시판에 붙일 편지를 꼭 써 달라던 귀여운 우리 반 급장 말이 생각났다. 갑자기 내 마음의 봄 편지를 연분홍 진달래꽃에 곱게 써서 파란 바다에도 띄우고 싶어진다.


화려한 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구나.
오랜만에 하는 담임, 너희들이 내 반이라 참 기쁘다.

선생님에게는 딸이 없으니 너희들이 내 딸과 같지.
너희들이 내게 와서 따뜻한 봄이 되어 주는구나.

새학기가 시작되어 너무 바쁘네.
너희들도 그렇겠지?

선생님이 이따금 미운 얼굴로 화내고 잔소리를 하더라도 잠시 참아라.
마음속으로 "어머, 우리 선생님이 오늘 왜 저래?" 하면서.

그렇지만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말해 주는 게 선생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너희들은 야단맞는 게 싫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너희들과 내가 한 해 동안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다.
처음처럼, 마음 변치 말고.

자, 우리의 행복한 한 해를 위하여 서로 손을 잡고 가자.

연분홍 꽃물 든 내 마음에도 화려한 봄이 왔다. 왠지 내가 행복한 여자가 된 듯하다.

ⓒ 김연옥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서마산 I.C → 산복도로→ 월영마을→ 청량산
남해고속도로 서마산 I.C → 공설운동장→ 해안도로→ 월영마을→ 청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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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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