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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하 앵커.
김주하 앵커. ⓒ 우먼타임스
[이재은 기자] "다 차려진 밥상에서 예쁘게 숟가락만 들고 밥을 먹으려 한다면 앵커로서 오래갈 수 없습니다."

출산 후 MBC 주말 '뉴스데스크' 단독 앵커로 발탁된 김주하 아나운서는 지난 3월 12일 서울 여의도 MBC 경영센터 대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성 앵커의 수명은 스스로 얼마나 적극적으로 뉴스에 참여하는가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임신·출산과 함께 일을 그만둬야 하는 무언의 강요와 압력이 존재했지만 이제는 시청자와 방송 환경이 성숙한 만큼 자신이 하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동안 뉴스에서 남성 앵커의 비중이 컸던 게 사실이에요. 여성 앵커들은 남성 앵커와 뉴스 관계자들이 차려 놓은 밥상에 앉아 숟가락만 드는 일을 해왔으니 비중이 작을 수밖에 없었죠. 앞으로 제가 후배 여성 앵커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고자 합니다."

김 앵커는 평일에는 국제부 기자로, 주말에는 뉴스데스크 앵커로 주 7일 동안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출산휴가를 마치자마자 업무에 적응하는 한편 새롭게 단장하는 주말 뉴스를 단독으로 진행하게 돼 큰 부담감을 느낀다"면서 "하지만 제가 뉴스의 역사를 쓰고 있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일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여성 앵커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 요즘, 단독 앵커 자리를 거머쥔 자신의 위치와 역할이 앞으로 후배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목 받는 여성 앵커이기 전에 여성으로서 느끼는 고민도 있다.

첫 번째는 기존 여성 앵커에게 기대하는 부드러운 이미지와 단독 앵커로서 발휘해야 하는 카리스마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아야 할지에 대한 것이다. 김 앵커는 "작년 미국에서 여성 단독 앵커가 탄생했다는 말을 듣고 뉴스 진행하는 모습을 담은 테이프를 빌려 봤다"며 "남자 파트너가 없는 상황에서 뉴스를 어떻게 이끌어 갈지 정말 고민"이라고 고백했다.

두 번째 고민은 아기 엄마로서 느끼는 고충이다. 출산휴가를 마치고 복직한 후 바로 단독 앵커로 발탁되면서 아들 얼굴 보기가 어렵다.

"할머니가 잘 봐주시니까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지난주 화요일 첫 출근하는 날, 아이가 바지를 붙잡고 한참 우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마음이 흔들렸어요. 출근하고 나서 일주일 동안 아이가 자는 모습만 딱 세 번 봤는데 지난주 금요일에는 정말 이렇게 아기를 팽개치고 일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되더군요."

그러나 고민은 고민일 뿐. 그는 옆집 아줌마처럼 가깝게 시청자 눈높이에서 뉴스를 전달하는 앵커가 되고 싶다. 그 바람을 실천하기 위해 내일은 오늘보다 더 열심히 뛰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올해 10년차 기자 겸 앵커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김주하 앵커는 1997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해 지난 2000년 10월부터 평일 뉴스데스크의 앵커로 활약했으며 2004년 보도국으로 소속을 옮겨 취재기자와 앵커직을 병행해왔다.

시청자와 하나되는 진정한 언론인돼야
[칼럼] 강형철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교수

김주하 앵커가 출산 후 복직, 주말 저녁 뉴스를 혼자 진행하기로 해 화제다. 중년 유부남 기자를 보좌하는 젊은 여자 아나운서라는 고정관념을 '애 낳은 아줌마'가 불식한다는 점에서 잘된 일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 아나운서는 결혼과 함께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도 여성 아나운서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이들은 꽃다운 시기에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은 후 점차 라디오 뉴스를 진행하는 역할로 축소된다. 남성 앵커가 젊은 여성으로 파트너를 계속 바꿔가며 연륜을 쌓아가는 동안 여성 아나운서는 눈가의 주름을 걱정해야 한다.

김주하 앵커는 "어깨에 역사를 메고 가는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김씨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진정한 앵커'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면 그 자체가 성차별적이다. 대한민국에서 '뉴스 읽는 자'(news reader)로서가 아니라 존경할만한 언론인으로 대접받는 앵커는 남자 중에도 거의 없다. 남성들은 뉴스 리더 역할만 해도 언론인 대접을 받는데 여성은 꽃이 아니면 진짜 앵커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여성 '기자'가 여성 '아나운서'를 대체하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최근의 기자 우월주의도 뛰어넘어야 할 벽이다. 아나운서라서 진짜 앵커가 되지 못하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 진짜 앵커라면 시청자들은 기자가 아닌 손석희 아나운서를 꼽지 않는가!

김주하 앵커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는 과장된 몸짓과 말투, 즉 '앵커 흉내 내기'를 지양하기 바란다. 그 대신 과거보다 정확한 발음과 강세로 전직 아나운서로서의 장점을 살려야 할 것이다.

'뉴스 읽기'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말을 하는 언론인이 되길 부탁한다(그렇다고 해서 엽기적인 발언으로 주목을 끌라는 것은 아니다). 시청자의 시각에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편한 뉴스 멘트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은 여성이면서 아나운서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한 명의 앵커로서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최초'의 여성들에게 얹힌 짐은 너무도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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