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의 모험이 시작됐다. 물론 이미 많은 언론이 여론조사에까지 반영했던 예고된 결단이다. 손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언뜻 예상과는 다르다. 그 동안 내내 '경선불복'의 학습효과를 강조하던 것과 달리 국민 여론은 찬반이 팽팽한 '유보' 상황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또 느낌이 다르다. 조사마다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지도는 눈에 띄게 올랐다. 방관으로 일관하던 호남과 충청의 여론도 잘했다는 평가로 방향이 잡힌 듯 하다. 불복에 따른 부작용은 최소로 나타나고, 정국의 한 중심에 서서 이슈를 장악했다. '대단한 도전'은 일단 성공인 셈이다.
이명박의 '손학규 내상'... 중도 외연 축소
경선불복을 금지한 선거법의 탓이든, 후보들의 결정을 재촉한 한나라당 지도부의 탓이든 탈당 시기는 예상보다 빨랐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일찍부터 새로운 정치세력을 도모하지 않고,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탈당했다는 것은 내용상 경선불복이다.
다만 '절차상' 경선불복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손 전 지사의 정치적 노선 자체가 실제 한나라당과 비한나라당 진영의 '경계'에 있었다는 점에서 손 전 지사는 일단 중도 제3후보라 불릴 수 있다. 97년 대선에서 경선에 불복해 출마했던 이인제 의원, 그리고 2002년에 월드컵을 계기로 부상했던 정몽준 의원에 이은 또 다른 제3후보이다.
제3후보의 출현은 항상 경계의 대상이었지만 어김없이 출현하기도 했다. 기존 정치구도가 특정 '리더십'을 수용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제3후보는 우리 것만은 아니다. 미국 대선에서는 로스페로나 랄프 네이더가 이에 해당하며 최근 프랑스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바이루' 역시 중도지대를 표방한 제 3후보이다.
다만, 우리 정치에서든 외국 정치에서든 제3후보가 당선된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대선구도에 영향을 미쳐 한 쪽의 승리를 좌초 시키는 데에는 일조한다. '인물' 이전에 오랜 기간 누적된 정당 충성층의 벽을 깨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손 전 지사의 탈당이 현 시점 대선흐름의 핵인 '이명박 대세론'에 당장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탈당 이전이든 이후이든 손학규 전 지사의 지지도 자체의 규모가 크지 않았고, 지지층조차도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층의 비중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대세후보'인 이명박 전 시장이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층만의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닌 '중도층'을 장악하고 있어 국민의 '중도' 수요를 이미 어느 정도 해소시키고 있다. 또 그 동안 불안정했던 한나라당 내부 경선구도가 이-박 맞대결로 정리되면서 보다 초점이 명확해지게 되었다. 손 전 지사의 탈당으로 한나라당 지지층이 더욱 결집한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으나, 이미 한나라당 결집도가 최고조에 이르러 있어 큰 의미는 없다.
다만 한나라당은 중도 외연이 축소되어 상황변화에 따른 적응능력은 떨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내분과 분열의 이미지를 얻게 되는 만큼 일정 수준의 상처를 입게 될 가능성이 있다.
중도세력의 등장과 비한나라당의 결집
손 전 지사의 탈당이 가지는 향후 의미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대안적 중도세력의 등장이고, 또 하나는 비한나라당 진영의 결집이다.
먼저 손 전 지사는 국민에게 외면 받고 있는 비한나라당 진영의 기존 세력은 기피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본인이 얘기했듯이 제3지대에서 중도 보수신당의 기치를 걸고 정운찬 전 총장 등과 함께 새로운 '드림팀' 라인업을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중도신당의 탄생은 기존의 한나라당, 특히 이명박 전 시장의 대세론을 직접 위협하기는 어려우나 이 전 시장의 지지도가 흔들리거나 한나라당이 심각한 상황에 빠져들면 대안세력으로서 급부상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또 현재 열린우리당 내부에 남아있는 일부 중도세력에게도 또 하나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 2차 정계개편의 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한편, 라인업 초기에 비한나라당 진영과의 연대는 아니더라도 탈당 직후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이 호남과 충청, 그리고 일부 유동층의 지지를 끌어 모으며 한나라당에 대한 대항마로서 구심력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구심력을 만드는데 실패하고 있던 비한나라당 진영이다. 만일 손 전 지사가 비한나라당 성향의 유권자를 일정 수준 규합하는 흐름이 나타나게 되면 너도 나도 새로운 라인업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이런 경우 손 전 지사는 초기의 거리두기에서 벗어나 비한나라당 진영 전체를 대표하여 '대항마'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손 전 지사의 탈당이 과거의 제3후보와 특히 다른 점은 홀홀 단신 뛰었던 그들과 달리, 기존의 정치세력의 지지와 결합하기 쉬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제3후보지만 전통적 '정당지지층'들의 확보를 통해 제3후보의 좌절을 극복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손학규, '제3후보의 좌절' 극복할 기회 있다
손 전 지사의 이번 탈당의 이번 대선에서의 직접적 영향을 예단하기는 힘들다. '한계' 역시 뚜렷하다는 것이다.
먼저, 강력한 주자 '이명박'을 극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 전 시장이 '중도'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차별점은 크지 않다. 전문가들의 분석대로 이 전 시장의 대세론에서 핵심 지지층인 40대 수도권 중산층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반면, '경계인' 손학규가 그들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증명하기 어려워진다. 또 가져온다 해도 그것은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그들은 과거 대선의 5:5 싸움에서 비한나라당 진영에 섰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선의 승패가 근본적으로 지형이 아닌 '인물'의 힘으로만 최종적으로 갈린다고 볼 때 '인물'로서의 손 전 지사는 여전히 이 전 시장에 비해 힘이 딸려 보인다.
손 지사발 정계개편의 또 다른 한계는 바로 '진보층'이다. 대략 20% 선으로 추정되는 진보층은 엄연히 존재하는 또 다른 공간이다. 실제 민노당은 지난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10% 이상의 정당득표를 꾸준히 거두고 있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의 대립축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들 진보층을 한데 묶을 수 있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정몽준씨가 중도세력을 묶었다면, 당시 노무현 후보는 진보층을 묶었다 할 수 있다. 혼합정당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가지고도 실패했듯이 최근의 국가적 이슈들은 중도와 진보가 한데 섞이기 어렵다. 진보적 유권자를 대표할만한 인물도 없는 상황에서 손 전 지사가 중도의 위치에서 이들을 엮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번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유권자에게 있어 학습효과란 큰 의미가 없다. 대중은 논리로 움직이지 않고 항상 원하는 바로 '그것'을 찾는다는 것이다. 국민의 지지를 얻고 최종적으로 승리하는데 있어 세력의 규합을 통한 대항마론으로는 부족하다. 천시와 지리로만은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 의미를 증명하고, 그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공감을 얻어내야 한다. 이기지 못해 돌아섰다는 '배신론'을 극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비전'에 달려있다. 그런 점에서 손 전 지사는 지금 필요조건을 만들기 위한 첫 발을 내 딛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