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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 벽을 가득 메운 심훈 선생 사진, 유고, 훈장들
ⓒ 박도
심재호씨의 안내로 2층 서재에 이르자 출입문에 종이로 만든, 컴퓨터 자판으로 새긴 '심훈 기념관(Shim Hun Memorial Hall)'이라는 직사각형 표찰이 눈에 띄어 내 가슴을 후볐다. 일제 강점하 대문호의 기념관이 이렇게 초라할 수가.

서너 평 되는 서재는 온통 심훈 선생의 흔적으로 가득 찼다. 정면 벽에는 낡은 사진과 유고, 훈장으로 도배되었다. 심재호씨는 흰 장갑을 끼고서 궤짝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빛바랜 원고뭉치를 꺼냈다.

'治安妨害 削除(치안방해 삭제)'라는 붉은 잉크의 스탬프와 '삭제'하라는 붉은 선이 매 쪽마다 시뻘건 '沈熏詩歌集(심훈시가집)'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 '痛哭(통곡) 속에서' 시와 산문의 원고와 장편소설 원고들이 쏟아졌다.

또 마라톤에 우승한 손기정 선수를 기리는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마지막 절명의 원고까지 나왔다. 심훈 선생이 1936년에 운명하셨으니 모두 70~80여 년 전의 원고들이다.

심재호씨는 이들 원고를 하나하나 펼치면서 원고에 얽힌 유래담을 들려줬다. 당진의 필경사에서 동아일보 발간 15주년기념 현상모집에 당선된 <상록수>를 연재할 때는 날마다 이웃에 살았던 지인실 씨가 원고를 받아 읍내 우체국에 가서 부쳤다면서 그분의 사진까지 벽면에 걸어 두고 기렸다. 이 모두가 우리 겨레의 귀중한 문화자산으로 국보급이 아닐까?

인문학이 함몰된 나라

▲ 심재호씨가 아버님 유고함을 열고 있다.
ⓒ 박도
한 역사학자는 지금 우리 사회가 국민소득은 올라갔지만, 오히려 인문이 죽어버렸다고 개탄한다. 온통 나라 전체가 경제에 함몰된 느낌이다. 인문이 빛을 잃어버리고 온갖 사이비들이 판을 치고 있다.'돈'에 관해서는 지위고하도 염치도 없다.

국민소득만 올라간다고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다. 물질적인 삶의 질과 문화적인 삶의 질이 함께 향상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대영박물관 전시물, 이들은 남의 나라 파괴된 조각물도 가져다가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 박도
대영 박물관은 영국 문화의 상징이다. '대영'이란 이름에 걸맞은 세계 최고, 최대의 박물관으로 의사요 고고학자였던 한스 스로운 경이 수집한 문화재를 토대로 1753년에 기초가 마련되고 1759년에 일반에게 공개됐다는데, 인류 문화사적으로 가치 있는 최고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수집해온 로제타스톤(Roseta Stone)을 영국이 다시 이를 빼앗아 여기에다 옮겨다 놓았고, 터키가 그리스를 통치하고 있을 때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그대로 싣고 와서 박물관에다 재현시켜 놓았다. 이집트의 미라, 그리스와 로마에서 약탈해 온 토기, 조각품, 오스만 터키족에 의해 파괴된 그리스의 찬란한 유물들도 영국인들은 예사롭게 보지 않고 수집해 놓았다.

그밖에 시리아,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페르시아, 터키의 찬란했던 문명 등 남의 귀중한 문화재도 정갈스럽게 전시장을 메우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기를 죽인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의 유물들을 듬뿍 소장하고 있어서 세계 문화사의 변천을 시대별, 지역별로 분류 전시하여 지구인의 문화적 발자취를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게 진열해 놓았다.

또 박물관 1층 도서관(British Library)에는 1215년에 발행된 대헌장(Magna Carta) 원본과 1453년에 처음 활판 인쇄된 구텐베르크의 성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초판본, 모차르트, 베토벤의 육필 악보, 저명인들의 원고, 지도, 신문, 잡지, 우표 컬렉션까지 전시되었고 1000만 권이 넘는 장서에는 동서양의 희귀본들이 부지기수다.

이 대영 박물관은 영국인들의 정신문화의 주춧돌로, 남의 나라 문화재까지 약탈해다가 그들에게 자긍심을 불어 주고 정신 교육의 장(場)을 만들어 놓았다.

영국의 스트래트퍼드는 인구 2만의 자그마한 도시지만 연 100만 명의 셰익스피어 순례자들이 찾고 있는 문화의 도시다. 단테의 고향 피렌체의 거리에는 <신곡>의 구절들이 석판에 새겨져 문화를 사랑하는 순례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우리문화의 현주소

▲ 복원한 이효석 생가, 생전에 생산도 안 된 플라스틱 지붕으로 덮었다.
ⓒ 박도
자칭 국민소득 2만달러에 이른다고 자랑하는 우리의 문화수준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나라의 문화를 총괄하는 문화관광부 수장만은 우리 나라 최고의 문화인으로 메워야 할 터이지만, 지난날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문화'는 늘 찬밥이요, 문화를 진흥케 한다고 만든 문화상품권이 때로는 도박의 칩이 되어 온 나라를 사행의 열풍 속으로 빠트린 적도 있다. 최근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아직도 문화인 대부분은 월수입이 기초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지난해 봄 내가 사는 이웃 마을 봉평 이효석 생가를 찾았더니 지붕이 플라스틱 기와로 덮여 있었다. 그날 여러 신자와 함께 온 한 목사님이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 이래놓고도 올림픽 유치에 열을 올린다고 통탄했다.

생가의 지붕을 원래 기와로 올리면 얼마나 돈이 더 든다고 그 당시 있지도 않은 플라스틱 기와로 지붕을 올리고 참배객들을 우롱할까? 이처럼 유명 문인의 생가 지붕마저 가짜로 치장하여 눈가림을 하니 우리 사회에 온통 가짜들이 판을 치고 있다. 온통 껍질문화만 요란하다.

"이 원고들은 겨레의 자산으로, 언젠가는 겨레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재호씨는 아버님의 유고들을 다시 보관함에 차곡차곡 넣으면서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알고서 미국 시카고 대학과 일본 도쿄대학에서 이 유고들을 기증해 달라고 백지수표로 제의하지만 어찌 넘길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제 당신도 일흔이 넘었다. 그래서 이번에 '심훈 기념관'을 열면서 이 유고 관리를 모두 자녀들에게 넘겼다고 서류까지 보여주는데, 그 서류만은 당신 가족들의 사사로운 일이라고 사양하여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두어 시간 '심훈 기념관'에서 머문 뒤 석별의 정을 나누고는 귀로에 올랐다. 실내에서 작별인사를 나누고도 아쉬웠는지 내외분이 바깥까지 나와 전송했다. 나는 굳은 악수를 나누고, 기약 없는 약속을 한 뒤 메릴랜드 숙소로 돌아왔다.

한 네티즌의 댓글

이틀 전, 이 기사 '심훈 기념관 탐방기 1'편이 나가자 한 네티즌이 다음의 댓글을 달아주셨다.

▲ 집 앞에서 멀리서 찾아온 나그네를 환송하는 심재호씨 내외와 박유종씨(오른쪽).
ⓒ 박도
아사달(asadarl)

중학교 2학년 2학기 첫 단원에 실려 있는 '옥중에서 어머니께 올리는 글월'을 해마다 가르치고 있지만, 언제나 선생 혼자만 눈시울이 붉어질 뿐 학생들은 별 감정을 못 느끼더군요.

'그날'을 그토록 열망했거늘, '그날'을 보지 못하고 가신 심훈 선생님.
친일부역자들은 '그날' 이후로도 잘 먹고 잘 사는데….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나는 이 댓글을 읽으면서 아직도 심훈 선생이 바라던 '그날'은 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이 오면' 한반도 어디엔가 '심훈 기념관'도 번듯하게 서리라.

▲ 심훈 선생 절명 원고 '오오, 조선의 남아여!'(왼쪽)과 상록수 원고를 매일 우체국으로 배달했던 '필경사' 마을의 지인실씨.
ⓒ 박도

덧붙이는 글 | 심훈기념관 연락처는 1-703-815-2098 입니다.


#심훈#심재호#상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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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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