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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철 전 주미대사 "2002년 10월 방북 당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HEU(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보유 사실을 시인했다고 주장한 제임스 켈리 차관보의 발언이 이 사건을 드라마타이즈(각색 혹은 극화)했다."
ⓒ 오마이뉴스 김당

양성철 전 주미 한국대사는 "'2002년 방북 당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HEU(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보유 사실을 시인했다'고 주장한 제임스 켈리 차관보의 발언이 이 사건을 드라마타이즈(각색 혹은 극화)했다"고 밝혔다.

양성철 전 주미대사는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HEUP(Highly Enriched Uranium Program, 핵무기 생산시설)에서 'H(highly)'자를 떼고 UEP(Uranium Enrichment Program, 우라늄농축프로그램)라고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이 원심분리기 2000~3000개를 들여왔다'고 난리법석을 피웠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만 봐도 HEU 건은 최소한 과장되거나 아니면 (미국 정부가) 사실을 왜곡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실험실 수준'의 북한 핵 상황을 '고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계획'으로 왜곡·조작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양 전 주미대사는 지난 2월 23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와 그후 수 차례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 와서 보면, 켈리의 방북 자체가 처음부터 북한의 HEUP 의혹을 터뜨리기 위해 의도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실험실 수준'을 '핵무기 생산시설 수준'로 바꾼 미국

2002년 10월 당시 HEU 파동의 계기가 된 부시 대통령 특사단의 방북 자체가 북한과 대화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한 '기획방북'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켈리 차관보와 그 후임자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 그리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HEU 관련 발언이 바뀐 점을 들었다.

양 전 대사는 "북한의 HEUP 문제는 그것이 R&D(연구개발) 수준이냐 아니면 그 이상의 생산시설 수준이냐가 관건이다"고 전제하고 "그런데 라이스가 R&D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말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2·13합의 당시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HEU 프로그램은 R&D 수준을 넘어서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그는 "나는 미국 정부와 켈리가 제공한 정보를 철썩같이 믿고, 가는 데마다 HEUP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를 뜻하는 미국의 북핵 해결원칙)를 외치고 다녔는데 어느 날 HEU에서 'H'자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그는 "주미대사로 있던 3년여 동안 북핵 문제로 짐(제임스의 애칭)을 자주 만났고 전화통화는 거의 매일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양 전 대사는 "고작 원심분리기 20개 정도를 가지고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이라크의 WMD(대량살상무기)와 북한의 HEU 사건은 미국이 베트남전 확전을 위해 조작한 '통킹만 사건'과 닮은꼴"이라고 밝혀 파문이 예상된다. 이라크의 경우에도 대량살상무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양 전 대사는 이어 "국가간의 동맹과 국가정책 결정은 진실에 기초해야 오래 지속될 수 있는데 HEU건은 최소한 과장되거나 왜곡조작된 것"이라며 "동맹은 진실에 기초해야 하는 만큼 한국에서도 한미동맹 강화 차원에서라도 이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정책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도 역사적 진실은 규명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HEU건은 최소한 과장되거나 왜곡조작된 것"

제임스 켈리 전 국무부 차관보 2002년 10월 당시 '제2차 북핵 위기'를 몰고온 HEU 파동의 진원지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양 전 대사는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6자회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라면서 "HEU 문제로 6년째 허송 세월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2·13합의가 잘 이행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북한을 '범죄집단'에서 협상파트너로 인정한 현재의 국면은 북한에게도 절호의 기회이지만, 한국도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밖에 지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이후 의회의 대외정책 기조가 바뀌었고, 이라크전 실패로 인한 국내의 제약요인 커진 점 등 다섯 가지 이유를 들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보다 더 낙관적"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부터 부시 행정부 전반기에 이르는 민감한 정권 교체기에 주미 한국대사(2001.8~2003.4)를 지낸 양 전 대사는 현재 고려대 석좌교수로 재직중이다.

다음은 양성철 전 주미대사와의 일문일답 전문이다.

- 2·13 합의 이후 이른바 '제2차 북핵 위기'를 낳은 고농축우라늄(HEU)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2002년 10월 당시 미국 정부가 밝힌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 일행의 방북 목적은 무엇이었나.
"공식적으로는 '북한과 직접 대화하라'는 우리(한국 정부)의 주장에 호응해 방북한 것이다. 당연히 우리는 환영했고 내심 긍정적 결과를 기대했다. 그런데 거꾸로 HEU 문제를 제기해 충격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HEU 문제가 제네바합의 폐기, KEDO 해체, 경수로 건설 중단 등으로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그러는 동안 남북관계가 제약을 받고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얼마나 큰 시련을 겪었는가.

(당시 미국 측이) '원심분리기 2000~3000개를 들여와서 파키스탄의 칸 박사가 기술 이전을 했다'느니 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겨우 원심분리기 20개 정도를 가지고 난리법석을 피운 것 아니었냐. 켈리의 방북 자체가 처음부터 북한의 HEUP 의혹을 터뜨리기 위해 의도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원심분리기 20개 정도를 가지고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그렇다. 기술적으로 원심분리기 최소 850개 정도는 되어야 농축이 가능하고, 20개는 실험실 연구 수준에 불과하다. 원심분리기 850개는 있어야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핵무기 1기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의미있는 분량'이라고 규정한 무기급 HEU 25㎏의 생산이 가능하다. 이는 원심분리기를 1년 내내 쉬지 않고 완전 가동했을 때를 가정한 것이다. 그러니 고작 20개 정도를 가지고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켈리가 북한에 다녀왔을 당시에는 원심분리기 2000~3000개 얘기는 없지 않았나. 이 얘기는 왜 나왔나.
"북한이 2000~3000개를 갖고 있다는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2000~3000개는 HEU 프로그램이 있다는 전제로 한 얘기였다. 미국 정부가 얘기한 대로 북한이 무기급 HEUP을 갖고 있다면 2000~3000개의 원심분리기를 갖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켈리 방북, 애초 HEUP 의혹을 터뜨리기 위한 것"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2·13합의 당시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HEU 프로그램은 R&D 수준을 넘어서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그런데 요즘은 HEUP니 원심분리기 2000~3000개니 하는 얘기는 쏙 들어가고 H를 떼어내고 'UEP(Uranium Enrichment Program)'라고 한다. 힐 차관보도 최근 북한의 HEU 의혹에 대해 핵개발 수준은 아니라고 발언했다. 미 당국자들의 얘기가 서로 다른데….
"2·13 합의문이 발표된 날에 힐과 라이스는 각각 베이징과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힐은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시인했냐'고 물으니 '노'라고 답변했다. 라이스는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이 R&D(연구개발) 수준이냐 아니면 R&D 수준을 넘어섰냐'고 물으니 처음에는 대답을 안했다. 그래서 기자가 재차 물으니 라이스는 'No, No'라며 부인했다.

북한의 HEUP 문제는 그것이 R&D 수준이냐 아니면 그것 이상의 생산시설 수준이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라이스가 R&D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말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 거기에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그 배경은 핵전문가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국 ISIS 소장이 최근 북한에 다녀와 미국 카네기평화연구소에서 한 발표문에서 찾을 수 있다. 로이터 통신에도 보도되었지만, 그 핵심은 북한이 갖고 있는 원심분리기 20여개 정도는 핵개발 수준이 안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량살상무기(WMD)가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된 것처럼 북한 HEU 문제도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 2002년 10월 켈리가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고 시인했다"고 밝힌 것 자체가 왜곡조작된 정보라는 얘기냐.
"그렇다. 켈리는 '2002년 10월 방북 당시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HEU 프로그램 보유 사실을 시인했다'고 드라마타이즈(각색 혹은 극화)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슬며시 'H'를 떼고 'UEP'라고 했다. 그것을 봐도 HEU건은 최소한 과장되거나 아니면 사실을 왜곡조작한 것이다."

- 왜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
"주미대사로 있던 3년여 동안 북핵 문제로 짐(켈리)을 자주 만났고 전화통화는 거의 매일 했다. 나는 미국 정부와 켈리가 제공한 정보를 철썩같이 믿고서 가는 데마다 HEUP와 CVID를 외치고 다녔다. 그런데 작년 5월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포럼의 오찬 연설자였던 켈리는 공식석상에서 북한 핵문제를 거론하면서 한번도 'HEUP'라고 표현하지 않고 'UEP'라고 표현했다.

'농축'과 '고농축'은 천지 차이다. 그래서 오찬이 끝나자마자 켈리에게 '왜 HEUP가 아니고 UEP냐'고 물었더니 켈리는 '난 전에도 HEU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더라. 그때부터 강한 의혹을 품게 되었다."

- 켈리의 답변에서 어떤 점이 석연치 않았는가.
"두 가지 점에서 석연치 않았다. 우선 내 친구인 미 고위 외교관리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는 켈리가 2002년 당시에 분명히 HEU라고 언급했다고 증언했다. 따라서 켈리가 부인한 배경에 의혹을 갖게 되었다. 더구나 당시 나는 북핵문제로 거의 매일 국무부 담당자들과 서로 의견 교환을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켈리나 다른 국무부 관계자들이 왜 아무도 내가 HEU 문제를 언급하는 동안 이를 시정해 주지 않았냐는 것이다."

- 그런 점을 지적하니 켈리는 뭐라고 하던가.
"켈리는 그냥 '미안하다(I'm sorry)'라고만 할 뿐 말꼬리를 얼버무렸다. 그래서 심증을 더 갖게 되었고, 개인적인 친분관계와 신뢰를 떠나서 밝힐 수 있는 데까지는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 켈리가 말한 '미안하다'의 의미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래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 아닌가. 이미 제네바합의는 깨졌고 북한은 플루토늄 재처리를 재개해 핵무기 제조에 들어갔고 핵실험까지 했으니까. 그러나 켈리도 네오콘의 대북전략과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본다."

"'HEU' 언급한 적 없다? 공식 연설문만 봐도 안다"

▲ 위성에 바라본 북한 영변 핵 시설단지.
ⓒ 2003 몬테레리 연구소
- 'HEU'라고 언급한 일이 없다는 켈리의 답변은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자료에 비추어도 사실이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물론 켈리 자신의 공식 연설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켈리는 2002년 12월 11일 워싱턴의 우드로 윌슨센터 연설에서 '1994년 합의틀(Agreed Framework) 하에서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HEU 프로그램을 상당한 수준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결정적 정보를 지난 여름 우리는 갖게 됐다'고 말했다."

- 켈리 차관보뿐만 아니라 다른 고위 인사들도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고 얘기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의회 속기록을 보면 아미티지 부장관도 상원 외교위에서 북한의 HEUP에 대해 증언했고 라이스 국무장관도 켈리를 인용하며 여러 번 북한이 HEUP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 켈리와 함께 방북했던 다른 사람들은 HEU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당시 방북단이 8명이었는데 잭 프리처드(대북교섭담당 대사)와 데이비드 스트라브(국무부 한국과장) 통 킴(김동현, 국무부 통역) 등 세 사람은 HEU 관련 정보의 왜곡과장을 인정하는 편이다.

이들에 따르면 켈리가 HEU나 EU에 관한 아무런 물증을 제시하지 않은 채 강석주 부상에게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고압적으로 다그치자, 강석주는 격앙된 어조로 '우리는 이것보다 더한 것도 가질 수 있다'고만 했지, 명시적(explicit)으로 고농축우라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거나 그 보유를 시인한 일은 없었다고 한다.

결국, 미국은 '북한측이 HEU 프로그램을 인정했다(acknowledge)'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회담이 끝난 뒤에 '인정했다'는 쪽으로 북한의 입장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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