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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기 많은 소연이. 제법 의젓하게 동생도 잘 챙깁니다.
장난기 많은 소연이. 제법 의젓하게 동생도 잘 챙깁니다. ⓒ 전은화
큰딸 소연이는 요즘 아침마다 사탕 타령입니다. 그것도 친구들 줄 거라면서 말이죠. 가만 보니 친구들한테 사탕 주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입니다. 그만큼 친구들과 많이 친숙해졌다는 의미겠지요.

중국유치원에 처음 보내던 지난해 9월만 해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겨우 5살짜리를, 말도 안 통하는 낯선 사람들 속에 '툭' 던져 놓는 심정이란….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본 분들은 다 아실 듯합니다.

첫날은 뭣도 모르고 안 울더니 그 후 4일 정도는 아침마다 울고불고…. '그냥 보내지 말까'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유치원을 다니게 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나니 요녀석 울 때마다 속상해 하는 엄마의 표정을 읽었는지 매일같이 "엄마 소연이 안 울었지?"하며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습니다.

1학기 때만 해도 우리딸은 지각쟁이였습니다. 아침마다 어찌나 늦게 일어나던지요. 겨우 눈뜨게 해놓으면 유치원 가기 싫다는 둥, 재미가 없다는 둥, 친구들 안 좋다는 둥…, 그렇게 투정부리는 딸애의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나기는커녕 딸애의 속내가 어떨지 이해가 가기에 혼자서 가슴 미어지는 날이 참 많았습니다.

다행히 학기 후반에는 적응을 너무 잘해서 주말마다 받아오는 수첩에 대부분 칭찬의 글이 써져 있었습니다. 그에 선생님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는 답글을 써서 보내곤 했습니다. 지각을 많이 한 것 빼고는 나름대로 적응하는데 성공한 셈이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벌써 유치원 2학기에 들어섰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친구들을 못 본 탓인지 개학 첫날엔 빨리 가자고 설치는 바람에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습니다. 첫날이라 서먹할 만도 하건만 교실로 들어서는 뒷모습이 참 씩씩하대요. 일단 그 모습은 이 엄마 마음을 뿌듯하게 하고도 남았습니다.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 줄때 선생님께서 주시는 찌에송(接送)카드입니다. 아이 데리러 갈때 지참하여 반납하면서 아이를 데려옵니다.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 줄때 선생님께서 주시는 찌에송(接送)카드입니다. 아이 데리러 갈때 지참하여 반납하면서 아이를 데려옵니다. ⓒ 전은화
며칠 전 여느 때처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선생님에게 찌에송(接送)카드 받은 후 돌아서는데 선생님이 "샤오줸, 껀 마마 짜이찌엔(소연아, 엄마한테 인사해야지)라고 시키더군요. 그런데 요녀석 뒤도 안돌아 보고 손만 흔드는 거예요. 그러더니 친구들 향해 막 뛰어갔습니다. 흠! 좀 야속했습니다. 선생님과 눈 마주치며 그냥 씨익 웃고 나왔습니다.

그날 오후 4시 30분쯤, 5시에 끝나는 딸을 데리러 유치원에 갔습니다. 아침에 받은 찌에송(接送)카드 들고 3살 은혜 손잡고 문 앞에 도착하니, 늘 그렇듯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들로 대문 앞은 만원이었습니다. 한쪽으로 비켜서서 철창 대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지요.

4시 50분쯤 되니 대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물밀듯이 들어갔습니다. 오토바이 타고 가는 사람, 자전거 끌고 가는 사람…, 한쪽에 떨어져서 쳐다보니 에효, 그 속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날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사람들과 들어가는 사람들로 늘 붐빕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사람들과 들어가는 사람들로 늘 붐빕니다. ⓒ 전은화
대문 말고도 유치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철창문은 약 5분 후에 열립니다. 가끔 하는 생각이지만 그 철창문을 보면 어쩐지 으스스합니다. 어디 꼭 면회 온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이곳 중국인들 안전주의 중 하나이니 지금은 오히려 그 철창문을 보면 안심이 됩니다.

4시 55분쯤 되니 문이 열립니다. 우르르 밀고 들어가는 사람들 모습이 파도 같습니다. 그 속에 나도 끼어서 은혜를 안고 소연이 교실이 있는 2층을 향해 계단을 열심히 올랐습니다. 사람들 비집고 찌에송카드 반납한 후, 소연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유치원 안을 빠져나오면 숨이 탁 트인다고나 할까요. 소연이 데리고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우리 모녀 여지없이 수다쟁이가 됩니다.

교실앞에도 역시 아이를 불러내느라 북적이는 모습입니다. 저곳을 늘 비집고 들어가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게 이젠 일상이 되었습니다.
교실앞에도 역시 아이를 불러내느라 북적이는 모습입니다. 저곳을 늘 비집고 들어가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게 이젠 일상이 되었습니다. ⓒ 전은화
"엄마 엄마, 이거봐~여, 친구가 줬어~요."
"그게 뭐야?"
"사~탕, 히히."
"그렇게 좋아?"
"네."
"오늘 재밌게 놀았어? 밥도 잘 먹고? 잠은 잘 오더냐? 머리는 누가 묶어줬어?"
"응, 머리는 류라오스(유 선생님)가 묶어줬어요. 이뿌지."
"그러게, 공주네 공주."

친구가 줬다며 사탕을 만지작거리며 수다 떠는 소연이는 기분이 좋아보였습니다. 물어보는 말에 대답은 늘 간단하지만 기분이 좋은 날은 흥얼흥얼 입에서 노래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날도 그렇게 흥얼거리는 것이 아마도 친구가 줬다는 사탕 때문인 듯했지요. 먹지도 않고 만지작거리면서 몇 번이고 자랑만 해댔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소연이는 눈을 뜨자마자 사탕 가져가면 안 되냐고 물었습니다. 마침 얼마 전에 이웃에 사는 중국인 친구가 준 사탕이 한 봉지 있어서 한 움큼 꺼내어 가방에 넣어줬습니다. 소연이 사탕이 들어간 가방을 들쳐 메고 아주 기분 좋게 유치원에 갔습니다. 그날 유치원 갔다 온 소연이는 제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혼자 떠들기만 했습니다.

"엄마 친구들이 나한테 사탕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사탕 줬지~요. 히히, 근데 자꾸 달라고 하네?"
"그래? 누구 누구 줬어?"
"왕진진, 리양쥐, 왕뤼커, 천즈후이, 어~아 맞다. 화레이 어~또…."

하하, 끝도 없네요. 46명이나 되는 친구들을 다 주지는 못했을 테고, 아마 가까이 앉은 친구들에게 나누어 준 것 같습니다. 사탕을 주니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말도 걸었을 테고요. 요 녀석 사탕주면서 친구들 포섭작전(?)을 시도한 모양입니다.

아마 다른 친구가 하는 걸 보고 따라한 것 같아요. 살며시 웃음이 나왔지만 아직 중국말이 서툴기만한 그 어린 것이 나름대로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방법을 찾아가는 모습이기에 마음이 짠했습니다.

언젠가 소연이 반 남자 아이가 하굣길에 저한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아이, 샤오줸 장 썬머 화야? 타 수오화 헌 뚜오 딴스 워먼 팅부동(아줌마, 소연이 하는 말 어디 말이에요? 말 엄청 많이 하는데 우리는 못 알아 듣겠어요)"라고 말이죠.
그때는 그 아이한테 그랬습니다. 한국에서 왔으니 말을 잘 못한다고요. 그러니 잘 알려주라고요.

말하기 좋아하는 소연이가 중국말이 안 되니까 그냥 급한 마음에 한국어와 조금 아는 중국어를 섞어 말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 같은 반 꼬맹이들이 못 알아 듣는 건 당연했을 테고요. 그때도 이래저래 마음이 참 복잡했습니다.

그런데요. 아이들의 언어 습득은 놀라울 만큼 빠른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중국어와 친숙해졌고 지금 소연이의 중국말은 아주 많이 늘었습니다. 유치원에 데리러 갈 때마다 교실 밖에서 들여다 보면 친구들과 웃고 떠드느라 엄마가 온 줄도 모르는 아이가 바로 소연이랍니다. 그 모습이 하도 기특해서 소연이랑 눈이 마주칠 때까지 보고 있을 때가 많답니다.

친구들과 이렇게 친해진 이유, 뭐 많겠지만 달콤한 사탕 포섭작전(?)의 성공이라고 말해도 괜찮겠지요? 선생님 말에 의하면 소연이가 유치원 생활을 잘하는 편이라고 합니다. 친구들과 싸우는 일도 없고요.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오늘도 우리 딸 유치원에서 재미나게 보내고 있겠지요? 마음 속으로 딸에게 '아자 아자, 힘내라'는 응원을 보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그 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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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동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생활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삶속에 만나는 여러 상황들과 김정들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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