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만들 때는 모든 잡념이 사라지는 '화도삼매'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마지막 궁중채화 전수자 황수로 박사. 그가 사라져가는 조선왕조 궁중채화의 보존과 전승을 위해 쉴 틈 없이 연구 활동을 해온 지도 어느덧 20여년이 다 되어간다.
채화란 가화(假花)의 한 종류로서 비단을 재료로 만든 꽃을 뜻한다. 사료를 살펴보면 조선시대만 해도 궁중에는 가화를 제작하는 전문장인인 화장이 존재했고, 가화가 각종 연회와 모자 장식으로도 널리 쓰이는 등 가화 제작기술이 고도로 발전했다는 기록이 발견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는 가화를 재현하는 기술이 사라져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채화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황수로 박사가 그 분야에 뛰어들기 이전에는 그 맥이 거의 끊기다시피 한 상태였다.
황수로 박사가 채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릴 때 자라온 환경의 영향이 가장 컸다. 황 박사의 증조부는 고종 황제 때 궁중의 꽃을 관할하는 관리였던 이병찬 선생과 친분이 두터워 왕래가 빈번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외조모와 모친, 이모들이 궁중채화 제작 기술을 전수 받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황 박사의 채화 연구와 재현에 큰 도움이 되었다.
현재 황 박사는 궁중채화연구소를 설립하여 6명의 전수자들과 함께 궁중채화 연구와 전시활동에 힘쓰고 있다. 6명은 각각 염색, 재단, 인두, 씨앗제작, 밀랍 등의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데 그 제작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김태숙 선생이 홍화와 쪽과 같은 천연염료로 천을 염색하면 윤정아 선생이 각 꽃과 잎의 모양에 맞게 재단을 한다. 재단된 천이 장은숙 선생의 인두질을 통해 잎맥과 주름을 갖게 되면 황순희 선생이 가져다가 밀랍처리를 하는데, 채화에 밀랍처리를 하면 성분이 꿀이기 때문에 자연 꽃들처럼 나비와 벌이 날아들고, 물에 닿아도 쳐지는 일이 없으며, 꽃의 색 또한 빨리 바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밀랍 처리된 잎은 플라스틱처럼 딱딱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인두로 살짝 녹여 밀랍을 안으로 침투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차영랑 선생이 완성된 꽃잎을 실로 묶고 풀로 붙여서 꽃 모양을 만드는데, 이때 꽃 안에 들어가는 씨앗은 곽지순 선생이 담당한다.
꽃을 만드는 과정은 꽃의 종류에 따라 달라서 연꽃을 만들 때는 별도로 연치기라고 하는 꽃잎의 주름을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모양이 갖춰진 꽃에 따듯한 바람을 불어넣어서 꽃잎이 활짝 펴지면 비로소 채화 한 송이가 완성된다.
이렇게 수많은 제작과정과 고증을 거치며 연구에 매진해온 노력이 결실을 맺어 2004년에는 국내 최초로 덕수궁 중명전에서 '조선왕조 궁중채화전'을 개최했다. 또 2005년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부산개최기념 특별전시회를 개최하여 각국 정상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이 때 전시회에 왔던 대만 총통 부부에게 초청받은 것을 계기로 황수로 박사와 전수자 6명은 오는 22일부터 27일까지 대만 국립역사박물관이 주최하는 '2007 화예문화 학술연토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게 된다.
이제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도 우리 전통 채화의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황수로 박사. 그러나 한편으로는 힘들게 일궈놓은 전통채화 제작기법이 자신을 끝으로 사라질까봐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저는 선조들의 뜻을 받들어서 이것(채화)을 재현해야겠다는 그런 사명감 때문에 모든 걸 떠나서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전수자들은 정말 힘듭니다. 빨리 정부가 전수받는 저 분들을 제도 속에 묶어주지 않으면 제 다음 대에는 소멸되고 말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번 맥이 끊일 뻔 했던 궁중채화. 황수로 박사는 다시는 우리 아름다운 문화가 소멸되는 비극이 없어야 된다며 정부와 국민이 궁중채화에 관심을 가져 줄 것을 당부했다.
덧붙이는 글 | 이동현 기자는 cpn문화재방송국 소속입니다. 이 기사는 iMBC에도 동시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