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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면전차와 잔디로 덮인 레일.
ⓒ 이현민
보봉(Vauban)은 프라이부르크 도심 남쪽 외곽에 주민 4500여명이 살고 있는, 11만여 평의 마을 이름이다. 원래 논밭이었던 지역에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병영을 지었으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프랑스 군대가 주둔했던 지역이다.

1992년 프랑스 주둔군이 철수하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놓고 시에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이 공청회에서 합의를 거쳐 생태마을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이를 주도한 '보봉 포럼'은 햇빛발전과 태양열을 주된 에너지로 선택하고, 자동차로 인하여 생기는 환경피해를 최소화하고, 쓰레기배출을 없애고, 빗물을 이용하여 물소비를 가능한 최소화하고, 마을에서 가능한 콘크리트 사용을 억제하는 생태주거단지를 만들기로 하였다.

▲ 보봉 마을의 전경. 자동차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 이현민
노면전철에서 내려 마을을 둘러보니, 왜 생태마을인지 첫눈에 알 수 있다. 노면전차가 다니는 레일은 잔디로 덮여있다. 그리고 우선 골목길에 차가 없다.

▲ 골목마다 놀이터가 있고, 차량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연의 공간이다.
ⓒ 이현민
'보봉 포럼'은 애초에는 '차 없는 주택단지'를 꿈꾸었다. 그러나 독일에는 법으로 주택에 주차공간을 의무적으로 확보하게끔 되어있어, 마을 공동주차장을 이용하게끔 하면서 주택단지와 철저하게 구분하여 승용차를 가능한 한 없앴다. 법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예외규정을 만들어 별도의 주차공간을 확보하게끔 한 것이다.

덕분에 골목은 주민들의 차지가 되어, 산책로와 놀이터가 되었다. 골목마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거침없이 뛰놀고 있다.

▲ 마을초기에 공동식당으로 쓰였던 건물. 지난 겨울에 리모델링을 하였다. 지금도 휴일마다 마당에 장이 들어선다.
ⓒ 이현민
집집이 건물은 태양전지판을 머리에 인 채 전면 남향으로 서 있다. 우리로 치면 연립주택과 같은 비슷한 집들이 구획 별로 외양이 조금씩 다르게, 집마다 저마다 개성과 색깔을 가지고 서 있다. 이름하여 파시브 하우스(Passivhaus), 잉여에너지주택(Plusenergiehaus)이다.

▲ 헬리오트롭(Heliotrop ; 태양을 향한다). 태양에너지 사용과 발상의 창의력에 존경을 보내고 싶다. 우리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이현민
이러한 생태건축으로 유명한 집이 있다. 보봉의 포도나무 밭이 있는 언덕에 자리한 헬리오트롭(Heliotrop ; 태양을 향한다)이다. 이 집은 이름처럼 해를 따라 회전한다.

1994년에 지은, 지름 11m의 3층짜리 원통형 집으로 건물재료는 나무 등 생태적인 것을 사용하여 지었다. 전면은 3중 유리로, 나머지 절반은 완벽한 단열재로 된 벽으로 둘러있다. 겨울에는 집안의 난방을 최대한으로 하기 위해 유리쪽이 해를 향하면서 회전을 하고, 여름에는 반대로 단열재로 된 벽면이 해를 향한다.

지붕에 태양전지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집에서의 전기소비량의 5∼6배를 생산하여, 쓰고 남은 전기를 전력회사인 FEW에 판매한다고 한다. 지붕에는 이와 함께 빗물집수장치가 있어, 세탁과 화장실 등에 이용하고 있다.

'편리함'보다는 '자유로움'과 '평화'를 선택한 마을

▲ 한국의 연립 주택과 유사하지만,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색채를 가진 파시브 하우스(Passivhaus).
ⓒ 이현민
이 집의 주인이자, 설계를 한 롤프 디슈(Rolf Disch)는 보봉 지역에 이와 같은 주택단지를 설계했다. 약 150여 채의 집들은 태양광 등으로 집에서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주택단지이다. 이러한 생태주택은 남향에 지붕에 태양전지판, 태양열 집열판,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단열벽으로 지어졌다.

특이한 점은 단열이 잘될수록 통풍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동 환기 장치를 두었는데, 외부공기가 들어오거나 실내공기가 빠져나갈 때에 열교환기를 통과하게끔 하여 열손실을 없앴다. 밖에서 들어오는 찬 공기를 집안에서 빠져나가는 더운 공기로 데우게끔 하여 열손실을 최소화한 것이다.

▲ 파시브하우스 주택단지 입구에 있는 태양주택 건물(Solar-Penthaus)와 안내문.
ⓒ 이현민
▲ 열병합발전 시설과 지붕에 있는 태양광발전기의 현황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왼편 사진은 음식물 및 분뇨 발효 시설이다.
ⓒ 이현민
아울러 주민들은 쓰레기 제로에 도전하고 있다. 마을에 음식물 쓰레기와 분뇨 등을 발효시켜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이용한 열병합발전시설을 두어 집집이 공급하고 있다.

▲ 태양전지판이 설치된 유치원 건물 지붕과 마당.
ⓒ 이현민
프라이부르크에서는 자판기에서도 개인 컵을 사용하면 할인이 된다. 그만큼 일회용품의 사용을 철저히 줄이고 있었다. 다른 지방과 달리 플라스틱병을 찾기가 어렵다. 독일을 대표하는 'Aldi'나 'dm' 같은 할인매장에서는 병맥주도 조차도 대부분 플라스틱병을 사용하는데, 이곳 프라이부르크에서만은 그렇지 않다. 그만큼 주민들의 쓰레기와의 전쟁은 흔들림이 없었고, 생활 그 자체였다.

프라이부르크대학으로 유학을 왔던 친구가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학업을 마치고 살던 집에서 이삿짐을 정리하는데, 주인 할머니가 올라와서 화를 내시더란다. 밖에 내놓은 쓰레기 중에서 책 한 권을 들고 오셔서, 책표지에 붙어 있는 금박문양을 떼지 않은 걸 추궁하시더란다.

이까짓 것쯤이야 하고 생각했던 친구는 이사 가는 날까지 할머니에게 혼났단다. 일반 가정집에서도 쓰레기통이 3∼4가지로 구분되어 있어, 철저히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러한 주민들의 환경가치에 대한 실천은 환경교육을 통하여 잘 나타나고 있다. 서독시절인 1970년부터 초등학교에 환경교육 계획을 수립하여 실시하고 있다. 집에서부터 분리수거 등으로 환경교육을 생활화하는 데다가, 환경교육이 기본적인 지도이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직접 '쓰레기 없는 학교 가꾸기' 등을 통하여 어려서부터 가정-학교-사회가 환경에 대한 가치를 중요시하고 실천을 생활화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에 있는 제법 큰 유치원 건물에도 지붕에는 태양전지판이 올려져 있었고, 건물은 나무 등으로 지어져 있다. 마당은 당연히 모래와 흙, 돌 등으로 놀이터가 꾸며져 있었다. 그 옆에 있는 놀이터는 바닥을 나무찌꺼기로 깔아 놓았다. '과연 보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자연지형을 유지한 놀이터. 바닥에는 톱밥과 나무찌거기를 잘게 부순 것을 활용하였다.
ⓒ 이현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골목의 놀이터이든 가능한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작은 돌은 치우기보다는 그 자체가 미끄럼틀 기둥이 되었고, 죽은 나무조차 아이들의 놀이시설이다.

헬리오트롭이 있는 마을 입구 건너편에는 커다란 주차장이 있다. 주거단지와 자동차를 최대한 격리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의지인 이 주차장의 지붕도 온통 태양전지판으로 덮여 있었다.

집집이 같은 색깔이 하나도 없을 만큼, 형형색색을 자랑하는 마을 풍경처럼, 서로 다른 모습과 개성을 가진 주민들이 모여서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 마을이 보봉이다. 독일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프라이부르크, 그중에서도 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마을인 보봉은 내가 방문한 동안에도 계속 건물이 늘어가고 있었다.

좀 더 불편하게 살도록, 승용차조차 내 집 앞에 마음대로 주차하지 못하는 마을. 그럼에도 보봉에는 1차 세대, 2차 세대가 입주한 뒤에도 3차 세대가 들어오기 위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물론 계속해서 유입되는 외부인들로 인하여 마을의 인화와 합의에 문제점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우려가 든다고는 하지만….

'편리함'보다는 '자유로움'과 '평화'를 선택한 보봉 마을은, '내가 사는, 우리' 마을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에 대한 좋은 사례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생태지평연구소(ecoin.or.kr) 운영위원이자, 부안 시민발전소 소장인 이현민은 농사일이 끝난 지난 11월부터 영국 런던 - 독일 베를린 - 체코 프라하 - 독일 프라이부르크 - 라이프찌히 등 유럽 각지를 돌며, 교통 - 에너지 - 놀이 - 공원 - 여가 등 우리의 모든 일상을 통해 유럽은 어떤 생태적 변화를 추구하며, 큰 흐름을 맞이하고 있는지 농부의 시선으로 찾아가보는 여행을 하였습니다.


태그:#보봉, #생태마을, #햇빛발전, #노면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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