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편향성으로 말썽이 된 이른바 '전경련 경제교과서' 집필자들이 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내놓은 차기 국가교육과정의 경제과목도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논란에 휩싸인 집필자들을 학교 교과서 방향을 결정하는 업무에 참여한 사실이 이번에 새롭게 확인됨에 따라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사실은 교육과정평가원(원장 정강정)이 기록한 8차에 걸친 '경제과목 협의회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지난 15일 확인된 내용이다.
이 회의록에 따르면 교육부의 교육과정 연구의뢰를 받은 교육과정평가원은 경제교육과정 연구진 4명 가운데 3명을 '전경련 교과서'를 직접 쓴 이들로 뽑았다. 참고로 전경련 교과서를 쓴 관계자는 총 10명이다.
나머지 1명은 실무 업무를 맡는 교육과정평가원 내부 인사인 점을 고려하면 '전경련 교과서' 집필자들이 교육과정의 방향도 결정한 셈이 된다.
지난해 4월 12일 1차 회의록 등을 보면 김진영 강원대 교수(경제교육), 한경동 한국외대 교수(경제학), 정석민 경복고 교사(경제과), 박영석 당시 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 등 연구진은 7차 교육과정에서 논란이 된 부분을 수정하는 작업 등을 비롯하여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일을 진행했다. 이들의 결과물은 지난 달 23일 이종서 교육부 차관이 발표한 '국가교육과정 개편안'에 포함됐다.
'전경련교과서' 필자들, 지난해 3월엔 전경련과 미국교과서 편역
| | | 전경련 교과서, 내용 수정 중? | | | 재계, 27일 '전경련교과서' 토론회 열어 | | | | 이른바 '전경련 경제교과서'에 대해 교육부가 일체 입을 다문 가운데 교육부 관계자가 "필자들에게 원고를 돌려주고 일부 탈·오자를 수정하고 있다"고 지난 15일 밝혀 주목된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2월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기존 발행인 난에 적은 교육부란 이름을 빼고 "저자는 한국경제교육학회로 밝히기로 했다"고 인쇄 배포를 강행할 뜻을 내비친 바 있다.
필자 가운데 한 명인 김아무개 교수도 이날 "원고를 받았지만 나는 논란이 된 내용을 고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교조는 문제된 내용 수정 없이 일선학교에 대한 배포를 강행하면 배포금지가처분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손경식)는 오는 27일 '경제교육의 현실과 과제'란 토론회를 벌일 예정이어서 물밑에 가라앉은 '전경련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 윤근혁 기자 | | | | |
이 밖에도 '전경련 교과서'를 쓴 한국경제교육학회(회장 전택수) 관계자 10명 가운데 4명은 전경련이 지난해 3월 서울교육청의 검인정을 받아 펴낸 중학생용 부교재 <체험경제> 편역에도 참여한 사실이 새롭게 확인됐다. 이 학회 소속회원들은 또 재계쪽 입장과 비슷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 업무도 해왔다.
신성호 전교조 참교육실 사무국장은 "친 전경련 특정 학자들로만 교육과정 연구진을 짠 교육부와 교육과정평가원은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라며 "문제의 근본해결을 위해서는 사회적교육과정위원회를 구성해 다양한 생각을 가진 단체들이 모여 교육과정 연구에 참여토록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인제 교육과정평가원 연구본부장은 "좁은 땅덩어리에서 인력풀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불가피하게 중복자가 나타난 것 같다"며 "교육과정평가원이 먼저 교육과정 연구진을 선임했기 때문에 전경련교과서와 인과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김대인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연구관도 "연구진이 중복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교과서 집필·검정 과정에서 편향성이 있다면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
| | | 전경련 교과서 집필자 6명이 기존 교과서 저자 | | | 학교교과서, 체험경제, 전경련교과서 문어발식 집필 | | | |
| | ▲ 전경련교과서 필자들이 쓴 책들. | ⓒ교육희망 안옥수 | 재계 편향성 시비에 휩싸인 '전경련 경제교과서' 집필자들이 다시 입길에 오르내리게 생겼다. 집필자 10명 가운데 6명이 전경련과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반시장적이라고 공격한 기존 고교 '경제교과서' 저자로도 활동한 사실이 또 드러났다.
결과로만 보면 이들 학자들은 정작 전경련이 그렇게도 못마땅해 한 학교 교과서를 써놓고도 다시 전경련의 요청으로 교육부와 함께 기존 교과서를 개혁(?)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전경련 교과서'를 집필한 것.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5일 우리나라에 있는 검인정 고교 경제 교과서 5종을 분석한 결과 드러났다. <두산>과 <대한교과서>에서 낸 교과서엔 이들의 실명이 적혀 있었다. 전택수 한국경제교육학회 회장, 문승래 순천향대 교수, 박형준 성신여대 교수(이상 두산), 김진영 강원대 교수, 김경모 경상대 교수, 정석민 경복고 교사(이상 대한교과서)이 바로 그들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 집필자들은 지난해 6월 교육부와 전경련이 만든 경제교과서발전자문회의에 기존 교과서의 문제를 강하게 비난한 연구계획서를 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난해 6월 30일 제2차 경제교과서발전자문회의에 낸 '전경련 교과서' 제작을 위한 '연구계획서'에서 "은연중에 진리의 경전처럼 받아들이는 경제교과서에는 많은 오류가 있다"면서 "내용상의 문제, 불충분한 설명, 교수학습 방법의 부재 등으로 어렵고, 지루하고, 따분한 경제수업에 일조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홍훈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기존 경제교과서가 시장경제 위주로 되어 있는데도 편향적이라고 주장한 재계의 문제제기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학교 경제교과서 집필자와 전경련 교과서 집필자가 중복되는 것 자체가 역설적으로 그들의 잘못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 교과서'와 학교 경제교과서, 그리고 전경련이 낸 '체험경제'를 연구집필한 김진영 강원대 교수는 "원래 책을 내는 동기에는 기존 교과서가 너무 딱딱하다는 식으로 적지 않느냐"면서 "누가 의뢰를 하든 학생들의 교육에 도움이 되도록 글을 썼다면 필진이 중복된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 윤근혁 기자 | | | |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