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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찾아올 때면 배가 무척 고팠다
춘분 지나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논두렁에 파랗게 돋아나는 봄나물을 캤다
아버지가 매일 비워내는 한 되짜리 소주병빛 하늘엔
솜사탕 같은 흰구름이 쌀밥처럼 피어올랐다
내 키처럼 쑥쑥 자라나는 봄풀을
배불리 뜯어먹고 사는 산토끼가 부러웠다
아까 먹은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소가 되고 싶었다
나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마다
고개 젖혀 뭉개구름 한 입 베어물고
소쿠리에 든 봄나물을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해는 좀처럼 지지 않았다
내 그림자도 좀처럼 길어지지 않았다
저만치 앞산가새 밭에 쪼그리고 앉은 *옴마는
오늘 저녁 밥상에 오를 초록빛 채소를 소쿠리 가득 뜯었는데
아지랑이 어지럽게 가물대는 봄날 하루는 너무 길었다
*어머니
- 이소리, '해마다 봄이 되면' 모두
춘곤증에는 제철에 나는 봄채소가 으뜸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은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계절이다. 하지만 겨우내 움츠렸던 몸이 포근한 날씨와 더불어 나른해지면서 이른바 춘곤증에 걸리기 쉽다. 게다가 춘곤증 때문에 낮에 꾸벅꾸벅 졸다 보면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춘곤증은 겨우내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적게 먹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춘곤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비타민이 듬뿍 들어 있는 봄 채소인 달래와 씀바귀, 냉이, 마늘, 미나리, 상추 등을 자주 먹는 것이 좋다. 봄 채소에 들어 있는 섬유질과 비타민, 무기질 등이 춘곤증을 한꺼번에 싹 몰아내기 때문이다.
요즈음, 밥상 앞에 앉아도 입맛이 하나도 없다, 온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다, 기운이 없어 일을 할 의욕조차도 사라진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음식이 제철에 나는 향긋한 봄 채소이다. 특히 봄 채소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는 채소와는 달리 아삭아삭 씹히는 상큼한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입안 가득 향긋한 봄 내음을 선물한다.
봄 채소는 싱싱한 그대로 물에 깨끗이 씻어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사과나 배, 오렌지 등과 함께 샐러드를 만들어 먹거나 쌈을 싸먹으면 아주 신선하다. 더불어 뜨거운 물에 봄 채소를 살짝 데쳐 여러 가지 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주물러 나물을 무쳐먹어도 좋고, 멸치 맛국물에 된장을 살짝 풀어 찌개나 국을 끓여 먹어도 그 맛이 일품이다.
텃밭에서 싱싱한 봄 채소들이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나그네가 살고 있는 경남 창원시 사파동 집 주변에는 장인 어르신께서 틈이 날 때마다 가꾸는 자그마한 텃밭이 서너 개 있다. 지금 그 텃밭에는 봄을 맞아 봄동과 마늘, 상추, 쑥, 냉이, 달래, 씀바귀 등 싱싱한 봄 채소들이 '어서 날 뜯어가 잡숴보슈'라고 속삭이기라도 하는 듯 초록빛 잎사귀를 한껏 피워올리고 있다.
그런 까닭에 나그네는 요즈음 입맛이 없거나 피로가 느껴질 때마다 그 텃밭에 나가 그저 눈에 띄는 대로 봄 채소를 뜯는다. 봄 채소를 손으로 뜯는 재미도 그만이다. 금세 손가락 곳곳에 연초록빛 채소물이 은근슬쩍 배어드는 것도 색다른 재미지만 봄 채소를 뜯으며 맡는 흙내음과 향긋한 채소 내음은 마음까지 환하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나그네가 살고 있는 곳에서 비음산(510m, 창원시 사파동) 들녘을 따라 5분쯤 걸어나가면 비음산 등산로 곁에 미나리꽝이 두어 개 있다. 그 미나리꽝에 가면 아낙네들이 싱싱한 봄 미나리를 낫으로 베내 미나리꽝 옆에서 졸졸졸 흘러내리는 맑은 도랑물에 깨끗이 씻어 그 자리에서 지나치는 길손들에게 팔고 있다.
비음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티 없이 맑은 물을 먹으며 자라는 그 싱싱한 봄 미나리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몹시 상쾌해진다. 또 그 미나리를 한 다발 사서 집으로 가져와 물에 한 번 더 씻어 된장에 찍어 먹거나 쌈을 싸먹으면 아삭아삭 상큼하게 씹히는 맛과 함께 순식간에 입안 가득 향긋한 봄 내음으로 가득 찬다.
쌈, 나물, 볶음, 찌개, 국거리 등 향긋한 봄맛
봄이 점점 깊어가는 요즈음, 싱그러운 봄빛을 먹고 자라는 달래와 마늘, 씀바귀, 냉이, 상추, 미나리 등이 제철을 맞았다. 가까운 재래시장에 나가 보면 곳곳에 초록빛 봄 채소가 싱싱하고도 향긋한 몸매를 뽐내며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시켜도 밑반찬으로 나오는 것이 대부분 봄 채소로 만든 것들이다.
봄 채소는 조리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상추나 봄동, 미나리 같은 봄 채소는 깨끗한 물에 씻어 된장이나 멸치, 갈치젓갈에 쌈을 싸먹으면 향긋하면서도 달큰하게 감기는 깊은 감칠맛이 뛰어나다. 봄동과 미나리는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봄동은 된장국으로 끓이고, 미나리는 양념장에 조물조물 버무려 나물로 만들면 밑반찬으로 훌륭하다.
달래는 뿌리째 물에 깨끗이 씻어 그대로 양념장에 나물로 무치거나, 간장에 송송 썰어 넣어 밥을 비벼먹어도 맛이 좋고, 된장찌개에 넣으면 향긋한 감칠맛이 끝내준다. 마늘은 순을 뿌리 가까이 그대로 베내 진초록빛 잎사귀 끝자락을 잘라낸 뒤 된장에 찍어 먹으면 맵싸하면서도 상큼한 뒷맛이 아주 깊다.
씀바귀, 냉이는 뿌리 부분의 향이 몹시 강하기 때문에 깨끗한 찬물이나 정종에 담가 두었다가 조리하는 것이 제맛을 즐길 수 있다. 씀바귀, 냉이는 고추장이나 된장, 들깨 양념으로 무치거나 볶아먹어도 향이 깊고, 된장국을 끓여도 향긋하고 구수하다. 또 입맛이 통 없을 때 이들 채소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잘게 썬 뒤 나물죽으로 끓여 먹으면 색다른 맛이 난다.
향긋한 봄을 먹는 즐거운 봄날 저녁 한때
지난 18일(일) 저녁. 마땅한 밑반찬이 없어 집 앞에 있는 텃밭으로 나가 파릇파릇한 상추를 따고, 대를 한껏 밀어올린 마늘쫑을 꺾었다. 더불어 텃밭 둑 곳곳에 자라고 있는 냉이와 달래까지 조금 캤다. 그리고 쌈과 나물을 만들어 밥상 위에 올리자 금새 밥상 위에 향긋한 봄이 성큼 다가와 있는 것만 같았다.
평소 채소를 싫어하는 큰딸 푸름(16)이도 밥상 위에 초록빛으로 올려져 있는 향긋한 상추쌈과 마늘쫑, 냉이무침, 달래무침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 뜨며 입맛을 다셨다. 상추쌈을 아주 좋아하는 작은딸 빛나(14)는 "아싸∼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여기 다 모였다"라며, 어서 밥을 달라고 졸랐다. 상큼한 봄 향기를 맡고 먹는 즐거운 봄날 저녁 한때였다.
"아빠! 이게 무슨 반찬이야?"
"이건 된장과 들기름으로 버무려 통깨 살짝 뿌린 냉이무침이고, 요건 고춧가루와 참기름으로 버무린 달래무침이야. 그리고 저건 밭에서 금방 뽑아온 마늘쫑인데, 저것도 풋고추처럼 된장에 찍어 먹으면 상큼해. 푸름이와 빛나한텐 쬐금 매울지도 모르겠지만."
"맛이 어때?"
"향기는 참 좋은데 좀 매운 것 같아."
"빛나 넌?"
"아빠! 나는 살짝 매운 게 맛이 더 좋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