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봄은 캠퍼스 내에서 더욱 찬란하다. 대학 교정을 들어가는 순간 "우울해지면 안 돼"라고 누가 주문이라고 건 듯, 새내기들을 맞이한 대학 곳곳은 행복으로 넘쳐 보인다.
이런 대학에 특강을 하러 온 <한겨레> 기획위원 홍세화씨는 언뜻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인상을 준다. '배반의 시대, 젊음은 이 시대에 불온하라'는 강연주제가 적힌 포스터에 찍혀진 홍세화씨의 얼굴은 그러나, 막 대학에 들어선 새내기들을 향해 무언가 소통하고 싶은 표정이다.
민주노동당 동국대 학생위원회 주최로, 지난 21일(수) 동국대 학림관 소강당에서 열린 홍세화씨의 강연을 풀어놓는다.
"주제가 좀 급진적이죠? (웃음) 제가 생긴 것은 부드러운데, 좀 급진적입니다."
쑥스럽게 웃으며 단상에 올라단 홍씨는 "삶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대학은 취업학원으로 변신했고 동아리도 다 죽어가고 있는 현재 대학생들이 '살아가는 문제'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것 같다"며 입을 열었다.
"우리사회 사람들은 보통 두 번 긴장을 하죠. 대학입시 때와 취업할 때입니다. 그런데 대학은 공고히 서열화되어 있고, 또한 물신주의에 휘둘려 취업하는 현재 이 긴장은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라기보다 주류가치관에 따른 속물적 긴장이라고 봐야겠죠."
홍씨는 이어 '나 자신의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딱 그만큼, 타자의 삶에 대해 소중히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속물적인 가치관에 얽매여 살면, 다른 사람의 삶도 똑같이 속물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호화 아파트 광고가 있죠? 만약 우리가 그 말을 쪽방촌에 사는 이들에게 적용한다면 어떨까요. 이런 광고문구가 버젓이 방송을 탄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저급할 뿐만 아니라 폭력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데, 결국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타자의 삶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홍씨는 '돼지가 되어 즐거워하기보다는 사람이 되어 슬퍼하리'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하며, "사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대답인데, 지금 우리 사회는 배부른 돼지가 됐거나, 아니면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에 실패한 사람들로 북적거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람'이기를 원하는 길은 간단한 얘기가 아니며, 이것이 또한 인문학과 철학, 정치학, 사회학, 미학 등등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결국 자신의 삶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영합하지 않아야, 속물적인 주류 가치관에 의탁하지 않아야 하며, 이는 곧 사회에 불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홍씨는 이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이 만연한 우리 사회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삶은, 몸과 의식으로 나뉠 수 있죠. 상태로서의 몸은 건강을 추구하며, 지향으로서의 의식은 균형을 지향합니다. 몸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사회에 상당히 높은 데 비해 의식에 대한 관심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없어요. 리영희 선생은 <대화>라는 대담집에서, 중학생 때 자신의 균형된 의식을 찾기 위해 '데칸쇼(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에 파고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제 자신 세대들도 어설펐지만 삶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어설픈 고민조차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몸은 건강하지 않을 때 아파하는 자각증세가 있는데 의식은 균형을 잃어도 아플 줄 모르니 끊임없는 자기성찰이 필요하다"고 의식의 중요성을 역설한 홍씨는 "몸은 자신이 허락받지 않으면 건드릴 수 없는데, 의식은 나를 둘러싼 사회가 계속 건드린다"며 '사회화 과정'에는 "개인의 삶을 위한 것도 있지만 자신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요소도 분명히 있다"고 말하며 "비판적 안목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여러분은 끊임없이 나 자신을 배반하는 의식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령 공교육이라면 헌법에 규정된 대한민국의 존재의미, 곧 '민주공화국'의 어원이 '공적인 일(res publica)'이라는 것을 구성원들에게 인식시켜 주는 것이 의무입니다. 하지만 가르쳐주지 않죠. 20:80의 사회가 아닙니까? 80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존재에 맞게,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정책으로 내세우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죠.
민주주의의 라틴어 어원은 '데모크라토(demos cratos)'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민주주의의 본질은 '서민 지배'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만약, '20'을 위한 정책을 내세우는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80'들을 봤을때 '내가 주장한 민주주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홍씨는 의식의 기본속성으로 이런 현상을 풀이하기 시작했다. 한 번 형성된 의식은 그 의식을 계속 고집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은 합리화하려는 동물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연립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간 <한겨레> 독자들 중 절반은 조·중·동으로 신문을 바꿉니다. 사은품, 무료구독 등 보수신문들의 집중공략에 따른 것이죠. 그런데 신문을 옮긴 독자들의 대부분이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한겨레>가 예전같지 않다' '볼 내용이 없다' 등의 얘기를 하면서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것입니다."
"의식을 고집부리지 말고 계속 회의해보라. 그리고 합리화시키지 말고 합리적 동물이 돼라"고 당부한 홍씨는 '나 자신이 주도하여 의식을 형성하는 과정'을 이렇게 말했다.
"일단 책을 많이 읽음으로써 여러 시대의 생각에 대해 알아야 하고, 열린 토론을 통해 동시대 다른 생각도 접해보고, 여행 같은 다양한 직접경험으로 실제 부딪혀 본 후, 마지막으로 자기성찰을 통해야지 올바른 의식형성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책을 도통 읽지 않고, 토론할 때 자기 생각을 그저 확인하려만 들고, 동아리들은 다 죽어간 현재 대학생들의 의식은 '자기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칼 맑스의 말처럼 '한 사람을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국가권력이 교육을 장악하고 있고 자본이 대중매체를 장악한 현실. 그러니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구호에 다수가 '사회주의적, 좌파적 발상'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죠."
홍씨는 '공화국의 주인'으로서 개인이 지금까지 형성된 의식이 지극히 일방적이고 편향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박노자씨가 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고 했는지, 칼 맑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어떤 얘기를 했는지, 한홍구씨는 <대한민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한국사회연구회'라든지 '근현대사연구회' 같은 동아리를 만들어서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홍세화씨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긴장하라"고 당부했다.
"자아실현과 생존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해야 합니다. 사회에 나가며 자아실현과 생존 두 측면을 동시에 가지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제발, 생존을 위해 자아실현을 양보만 하지, 포기하지 마세요. 옛 세대, 우리 세대, 그리고 끊임없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자아실현 자체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길입니다.
앞으로 끊임없이 여러분은 '소유'로 비교당할 것입니다. 절대 인간됨과 인격으로 비교하지 않아요. 소유로만 비교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가치관이 당당하다면 끝까지 그 가치관을 지켜가십시오. 그래서 기어이 사회가 여러분의 그 무한한 능력을 무시할 수 없도록 하십시오. 왜? 바로 그토록 소중한, 여러분의 삶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3월의 봄은 캠퍼스 내에서 더욱 찬란하다. 이 찬란한 3월의 봄에, 울산의 한 대학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알몸시위를 하다 쫓겨나간 소식이 들린다. 그 대학의 총학생회에서 학생들을 모아, 집회 중인 노동자들에게 "학교 밖으로 나가 떠들어라" "당신들 때문에 공부가 안 된다"라고 함성을 지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니 캠퍼스 안의 그 행복은 대학 바깥을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않는, 소통되지 않는 행복인 것 같다.
홍세화씨는 언뜻 당연한 얘기를 계속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 강연회의 내용 또한 그의 저서와 여러 인터뷰에서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그 '당연한' 주장이 적용이 되지 않아,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이 이렇듯 횡행한 우리 사회에서, 홍세화씨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한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