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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갈비의 돼지생갈비가 자글자글 익어가고 있다
부암갈비의 돼지생갈비가 자글자글 익어가고 있다 ⓒ 맛객
"된장 넣지 말고 삶아요."
"왜요?"
"고기가 좋아서. 그래야 구수해. 된장 넣으면 고기 맛이 안나."


언젠가 정육점에서 아주머니와 나눴던 대화 내용이다. 맞다! 그게 고기 아닌가? 신선한 고기에서 나는 냄새와 신선하지 않은 고기에서 나는 냄새는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 냄새는 무조건 안 나야 좋은 줄 안다.

청국장에 청국장 냄새가 없다면 그게 무슨 맛이겠는가. 고기는 고기 냄새가 나야 하고 마찬가지로 고기는 고기에서 맛이 나야 한다. 이 단순한 맛의 진리가 잘 지켜지지 않으니, 고기 좋아하는 국민을 두고도 망하는 고깃집이 생겨나는 것이다.

지인의 안내를 받아 간 곳은 인천 간석시장 입구에 있는 부암갈비. 1978년 생겨났다하니 나름 망하지 않은 비결(?)은 지니고 있나 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갈비집이라기보다 대폿집이라 해야 더 들어맞는 분위기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테이블에서 지친 삶을 달랬을까? 30년의 세월을 견뎌왔다. 요즘은 이렇게 작은 드럼통 테이블 보기 힘들다. 밑에 두꺼운 강판을 덧대 쓰러지지 않도록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테이블에서 지친 삶을 달랬을까? 30년의 세월을 견뎌왔다. 요즘은 이렇게 작은 드럼통 테이블 보기 힘들다. 밑에 두꺼운 강판을 덧대 쓰러지지 않도록 했다 ⓒ 맛객
이런 분위기, 서울에도 있다. 마포 최대포를 연상하면 쉬우리라. 드럼통을 개조해 만든 테이블 좀 보라지. 테이블이 귀엽다면 말 다했다. 이렇게 작은 드럼통 테이블은 어디 가서 본 적이 없다. 알고 보니 장사를 처음 할 때부터 사용하던 거라 하니, 테이블이 작은 게 아니고 그만큼 우리들 체격조건이 커진 탓이다.

그러고 보니 메뉴판도 작다. 그도 그럴 것이 갈비집이라면 잘 하든 못하든 꼭 있는 냉면 하나 없이 돼지갈비와 돼지생갈비뿐이니까. 좋아! 30년 동안이나 망하지 않고 버티게 해 줬던 그 갈비를 뜯어보자.

고기는 고기맛이 좋아야 진짜

생갈비 4대에 1만원, 고기 질이 모자라지 않다. 고기맛은 고기가 좋아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 하지만 잘 지키지 않은 집들이 많다
생갈비 4대에 1만원, 고기 질이 모자라지 않다. 고기맛은 고기가 좋아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 하지만 잘 지키지 않은 집들이 많다 ⓒ 맛객
여기 생갈비 한 판! 한 판은 갈비 네 대를 말한다. 그게 만원이다. 요즘 하도 저가의 고깃집이 많이 생겨나다 보니, 비싸다고 해야 하나 싸다고 해야 하나. 감이 안 선다. 그렇다면 나오는 고기를 보시라. 선명한 육색과 알알이 맺힌 지방층이 저가의 고깃집을 기억에서 밀어내지 않는가.

선도가 좋아 보인다
선도가 좋아 보인다 ⓒ 맛객

생갈비의 매력은 고기가 주는 구수함과 불맛의 조화가 아닐까
생갈비의 매력은 고기가 주는 구수함과 불맛의 조화가 아닐까 ⓒ 맛객
치이익! 잘 달궈진 불판 위에 고기를 올리고 굵은 소금을 친다. 이때, 소금은 살살 뿌리지 말고 고기에 쳐야 제 맛이다. 어쩌면 소금구이의 맛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기가 미각을 유혹하기 전에 나오는 찬들을 살펴본다.

갈비 맛을 살려주는 부암갈비만의 특제 젓갈, 고기의 느끼함이 없어진다
갈비 맛을 살려주는 부암갈비만의 특제 젓갈, 고기의 느끼함이 없어진다 ⓒ 맛객
젓갈에 다진 청양고추가 들어간 게 보인다. 같이 간 지인이 젓갈의 종류를 맞춰보라며 시험을 친다. 이것도 문제라고 내시나. 맛보기도 전에 딱 갈치속젓이구만. 근데 멸치젓도 약간 들어간 것 같다. 처음 보면 별로 정감 가지 않은 인상의 쥔장에게 물어보니 별로 정감 가지 않은 얼굴로 알 듯 모를 듯 미소만 흘린다.

푹 삭은 갓김치도 가벼운 음식들로 테이블을 차지한 다른 갈빗집과 다른 점이다. 한 마디로 배가 불러도 밥 생각나는 김치의 맛이라면 상상이 가는가. 고추 간장 장아찌도 있고, 맛보라며 총각김치도 내온다. 상추나 깻잎 같은 건 관심권 밖이니 내버려 둔다.

부드러운 고기가 탱탱한 탄력감이 느껴진다. 다 익었으니 어서 맛 좀 봐주라는 항의다. 쥔장께서 고추장아찌를 얹어 맛보라고 권한다. 맛이 풍부하긴 한데 이건 여성적인 맛이다.

아무래도 불 맛을 선호하는 맛객은 소금에 살짝 찍어 먹는 게 낫겠다. 육즙이 넘친다. 살살 녹는다. 앞서 얘기한 대로 고기에서 맛이 난다. 한 마디로 고기가 좋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맛이다.

잘 익은 갓김치와 함께 먹으면 웬만한 양념갈비는 저리 가!
잘 익은 갓김치와 함께 먹으면 웬만한 양념갈비는 저리 가! ⓒ 맛객

젓갈과 갈비,식단의 서구화와 가벼워지는 맛이 넘치는 세상에 별종 맛이 아닐 수 없다
젓갈과 갈비,식단의 서구화와 가벼워지는 맛이 넘치는 세상에 별종 맛이 아닐 수 없다 ⓒ 맛객
불 맛보다 좀 더 진한 맛을 보고 싶다면 아까 말한 젓갈에다 찍어 먹는다. 젓갈과 고기가 어느 한쪽으로 끌려가지 않는다. 서로 충돌해 어긋나는 맛이 아닌 결합해 맛을 상승시킨다. 자칫 고기만 먹었을 때 느끼할 수 있는 단점을 극복하게 해주는 맛이다.

우리가 찾아간 시간이 일요일 오후였는데 그새 7~8개의 테이블이 손님들로 가득 찼다. 쥔장은 불 피우랴. 고기 구우랴. 심부름하랴. 바쁨의 연속이다. 좀 전의 다정다감해 보이지 않던 얼굴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인해 매력이 느껴진다면 넘 오버인가?

"나는 처음 본 사람들이 첫인상 보고 좀 그래도 한 번 사귀면 몇 십 년 오래 사겨."

자신의 얼굴을 보지 말고 진득한 마음을 보라는 쥔장의 말이다. 첫 인상이 그 사람의 전체를 평가하는 세상에 쥔장의 고뇌가 묻어 있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양념갈비는 오래 전 그 맛!

2~30년 전 맛으로 돌아간 듯한 양념갈비
2~30년 전 맛으로 돌아간 듯한 양념갈비 ⓒ 맛객
생갈비 맛이 주인장 마음의 맛을 엿볼 수 있다면 양념갈비는 손맛을 보여준다. 어디 먹어보자. 언뜻 보면 양은 불판 같지만 유기로 만든 불판이다. 무게도 꽤 나가는 걸 보면 두께가 있나 보다. 이 불판 역시 아주 오래 전에 꽤 비싼 돈을 주고 맞춘 거라고 한다.

양념갈비에서는 약간 쓴 듯하면서 향채의 맛이 느껴진다. 요즘 갈빗집마다 너나 할 것 없이 내주는 달착지근한 맛이 아니다. 뭐랄까. 시간을 거꾸로 돌려 2~30년 뒤로 돌아간 맛이라고 할까. 요즘의 젊은 세대는 잘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맛이다.

달달한 맛이 아니고 양념 맛이 깊게 풍긴다
달달한 맛이 아니고 양념 맛이 깊게 풍긴다 ⓒ 맛객
반대로 테이블과 분위기에서, 갈비에서 어떤 향수를 찾고자 하는 그대라면 많고 많은 갈빗집 놔두고 한 번 찾아가 보시라. 먹으면 당장 와 맛있다! 소리는 나오지 않더라도 은근히 자꾸 생각나게 하는 맛이니까. 또 이게 원래 우리들 맛 아녔던가.

갈비를 다 먹었다면 필히 밥 한술 떠 보시라. 나오는 된장찌개가 볼품은 없지만 구수하고 개운해서 먹어도 먹어도 수저를 놓지 못하게 하니까. 여기에 잘 익은 갓김치를 반찬 삼으라. 금세 고향집 밥상 앞에 앉아있는 착각에 빠져들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업소 정보는 http://blog.daum.net/cartoonist/9828599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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