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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대를 비롯한 몇몇 사립대 총장들이 모여 이른바 정부의 '3불정책'(대학의 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정책)의 폐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 정책이 고등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막고 있다나 뭐라나... 한국에서 최고 엘리트들만 갈 수 있다는 대학 총장님들이 모은 깊은 뜻을 나 같은 무지렁이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나 싶어 그냥 조용히 있으려 했건만, 세계 4대 성인 중 한 분이시라는(그러니 물론 대학 총장보다는 서열이 더 높을) 공자님 가라사대, '유교무류' 즉,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다 하셨다니, 이 현실을 어찌 통탄하지 않을 수 있겠느뇨.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서울의 할렘가이자 집값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학교였다.(정상적인 자본주의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할만한 곳이었다.) 인근의 낮은 집값 덕인지 우리학교에는 대충 저소득층(혹자가 굳이 자신을 중산층이라 여긴다면 어쩔 수 없지만) 자녀들이 다니고 있었는데 내 기억에 나와 내 친구들 부모님은 타 지역 어른들에 비해 소득뿐만 아니라 학력도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 같다.

일단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가정의 소득 수준이 대강 그러하니 사교육 열풍은 남의 나라, 혹은 몇몇 상위권 아이들의 몫이었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정말 놀.기.바.빴.다. 때문에 우리학교 축제는 인근 학교들에 비해 화려하기 그지없었는데, 방과 후 마땅히 할 일 없었던 학우들이 동아리활동에만 매달려 마침내 가히 최강이라 말할 수 있는 공연동아리들을 보유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나는 이렇게 입시로부터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가 참 좋았는데 무슨 까닭인지 우리학교는―상업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참 미안한 얘기지만―'△△여상'이라 불리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학교는 근방에서 최하의 입시합격율을 자랑하고 있을 터였다. 간혹 지역할당제 같은 서울대학교의 배려로 우리 학교에도 '축 합격, 3학년 몇 반 누구누구, 서울대 무슨과'라는 플래카드가 붙는 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학교에 비해 깔끔한(?) 정문을 지나칠 수 있었고, 대학에서 암암리에 고등학교에 등급을 매기고 있다는 소문이 돌던 해에는 많은 고3들이 고배의 쓴잔을 삼켜야 했다.(뭐, 사실 고배의 잔은 이미 오래전에 마음을 비운 우리들의 몫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공부 안 한 학생들 탓을 했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그래도 공부하겠다고 인문계 고등학교로 온 애들인데 일부러 안했을라고. 출발점부터 너무 다르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수업이 끝나면 입시학원을 가고 또 주말이면 과외를 받는 친구들과 날마다 격차가 벌어져 이제는 따라잡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걸, 처음부터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을 가지고 언제든 포기할 준비를 해왔던 우리들에게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같은 건 애초에 빛 좋은 개살구, 그림의 떡 같은 거였다는 사실 말이다.

심각한 얼굴로 이 나라 교육의 미래를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보고 '정말 본고사가 부활하고 고교등급제가 실시되고 기여입학제가 시행된다면 어떨까', 나도 심각하게 생각해봤는데…

아마도 나의 모교는 용이 절대 안 나오는 개천이 될 거라는 거. 결국 부모님의 학력까지 그대로 물려받을 이름 모를 후배들은 철저히 학력 중심인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녹록치 않은 길을 가야만 할 거라는 거. 그리고 그런 사회야말로 가르침이 평등하지 못한, 공자의 이상과 가장 거리가 먼 사회일 거라는 거. 그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김도연 기자는 200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누구도 대학 가라고 재촉하지 않는 고등학교를 다녔고, 경기도보다 땅값이 싸다는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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