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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1900원' 정말 싸다. 게다가 맛까지 일품이다.
'짜장면 1900원' 정말 싸다. 게다가 맛까지 일품이다. ⓒ 최육상
자장면 한 그릇에 옛 추억이 새록새록 하다. 얼마 전 먹었던 1900원짜리 자장면은 2007년 서울에서 파는 것치고는 놀라운 가격이었고 게다가 맛까지 끝내줬다.

어린 시절 '짜장면'(맞춤법상 자장면이 옳더라도 추억 속에서는 그냥 짜장면으로 쓴다. 그때는 '자장면'을 정말 몰랐으니까)은 졸업식·입학식·생일 등과 꼭 함께 붙어다니던 종합선물상자 같은, 참으로 맛난 말이었다. 그래서 1년에 한두 번밖에 없는 그날들이 늘 야속했었다. 하지만 어쩌랴, 당시 짜장면은 귀한 음식이었는 걸.

고등학교 때 추억하는 짜장면은 '8초'

졸업식에 먹은 짜장면은 중학교 때가 마지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반면 고등학교 때 추억하는 짜장면은 '8초'였다.

2학년 겨울방학, 나와 친구들은 학교에서 발행하는 첫 교지(학교문예지)를 편집하느라 무척이나 바빴다. 그때 점심은 짜장면으로 때우곤 했는데, 어느 날 편집을 꾸리시는 선생님께서 "짜장면 빨리 먹기 시합하자, 꼴찌가 과자 사기다"고 제안하셨다.

한창 혈기 왕성한, 모래도 씹어 먹을 나이의 우리는 흔쾌히 시합에 응했다. 몇 날 며칠이고 계속된 시합의 결과는? 항상 선생님의 승리였다. 선생님은 8초면 뚝딱이었다. 마의 10초 벽을 뛰어넘지 못하면서도 우리는 '두 젓가락질에 우걱우걱 하고 끝!' 하며 짜장면을 놓고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객기를 연방 부렸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찬 도시락도 입에 구겨 넣던 우리가 선생님을 이기지 못했던 이유는 딴 데 있었던 것 같다.

당시 국어를 가르치셨던 선생님은 우리가 1학년일 때 정호승 시인의 '짜장면을 먹으며'라는 교과서에 없는 시를 소개하며 "짜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고 되뇌고는 하셨으니, 짜장면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강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비록 그 짜장면과 이 짜장면이 다르기는 하지만.

짜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짜장면보다 검은 밤이 또 올지라도
짜장면을 배달하고 가버린 소년처럼
밤비 오는 골목길을 돌아서 가야겠다.
짜장면을 먹으며 나누어 갖던
우리들의 사랑은 밤비에 젖고
젖은 담벼락에 바람처럼 기대어
사람들의 빈 가슴도 밤비에 젖는다.
내 한 개 소독저로 부러질지라도
비 젖어 꺼진 등불 흔들리는 이 세상
슬픔을 섞어서 침묵보다 맛있는
짜장면을 먹으며 살아봐야겠다.

- 정호승의 '짜장면을 먹으며' 전문


짬뽕 그릇에 비해 작지만, 자장면의 양은 적지 않다.
짬뽕 그릇에 비해 작지만, 자장면의 양은 적지 않다. ⓒ 최육상
가만, 언제 짜장면을 처음 먹었더라? 잘 떠오르질 않는다. 어렸을 때 짜장면이 얼마였지? 250원, 아니 300원이던가? 이것도 가물가물하다.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포털사이트에서 찾은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친절하게도 1970년(60원), 1980년(400원), 1990년(1253원), 2000년(2533원), 2006년(3273원)이라고 가르쳐준다.

1970년대 중후반쯤 짜장면을 처음 먹었을 테니 대략 250원 전후가 맞을 듯싶다. 내 기준으로 하면 그때에 비해 13배 정도 올랐지만 아직까지는 서민의 음식다운 가격이다.

그러고 보니 1900원짜리 자장면은 1990년대 후반의 가격이다. 짜장면 한 그릇으로 추억의 시간 여행을 대신한 셈이다. 서울 문래동에 자리한 이 자장면집은 얼마 전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가 말했던 바로 그곳이다.

문 대표는 지난 2월 7일 대표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의 식사 값으로 120만원을 썼다고 하는데 문래동 당사 주변 자장면 값이 1900원"이라며 "1900원짜리 자장면을 하나 놓고 민생을 논의하자"고 강 대표를 이곳으로 초청했었다.

맛으로 먹는 짜장면이, 시간에 쫓기며 먹는 자장면보다 맛있다

지금은 한미FTA를 반대하며 20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문 대표에게 이 집의 자장면 한 그릇과 따뜻한 짬뽕 국물 한 사발을 건네고 싶다. 서민들을 한데 잘 어우러지게 해서 속 시원하게 살 수 있도록 꿋꿋하게 싸워달라는 부탁 말씀과 함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자장면은 다시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맛있는 짜장면이 아니었다. 가끔 입맛이 없거나 바쁠 때 시켜먹게 되는 자장면이었을 뿐, 먹는 모습이 좋지 않아 여자 친구와도 함께할 수 없고 친구끼리도 짬뽕 국물에 소주를 찾게 되면서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더욱이 의도적으로 '자장면'이라고 부르게 되면서 '짜장면'의 추억은 이제는 쌓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짜장면과 자장면을 구분하는 잣대는 미성년자와 성인인 것 같다. 어른이 되어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 먹는 맛의 즐거움이 사라져버렸으니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후루룩 쩝쩝, 후루룩 쩝쩝하며 오로지 맛으로만 먹었던 '짜장면'이, 점잖은 척 발음에 신경을 쓰면서 시간에 쫓기며 먹는 '자장면'보다 더 맛있다.

1900원짜리는 바로 선생님과 시합하며 먹던 그 추억의 '짜장면' 맛이었다.
1900원짜리는 바로 선생님과 시합하며 먹던 그 추억의 '짜장면' 맛이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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