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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님아, 하늘에 끝이 있나?"
"하늘에 끝이 어데 있노. 그런 거 읍다."


ⓒ 동아시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준 것은 세 살 터울의 형이었다. 지금은 맑은 밤하늘에서도 별을 찾기가 정말 하늘의 별따기이지만, 70년대 초반의 부산 하늘은 적어도 카시오페이아를 언제 어디서나 선명하게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늘 가졌던 코흘리개의 호기심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잠자리에 들면 태권V나 마징가Z를 몰고 저 멀리 우주 속 아무도 가보지 못한 은하로 여행하는 상상을 하며 스르르 잠들었던 기억들. 내 머리 속에서도 뽀얀 먼지가 내려앉은 오랜 골동품을 잠시나마 다시 들춰낸 책이 바로 <태의경의 우주콘서트>(이하 <우주콘서트>)이다.

우주론(cosmology)이나 천체물리학(astrophysics)이 내 주 전공은 아니지만 물리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소립자 전공자들에게) 이 분야는 요즘 기본 소양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불행히도 나는 그리 영민한 과학자가 못 되는지 별이니 은하니 팽창이니 빅뱅이니 우주배경복사니 하는 말들에 아직도 그리 능숙하지가 못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주콘서트>를 읽으면서 미처 몰랐던 많은 내용들도 알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물리 전공자가, 비전문 일반인이 쓴 교양도서에서 우주에 대해 배우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논문이야 30편 가까이 썼다고 해도 아직 전공 관련 책 하나 내지 못한 나로서는 현직 아나운서의 이 '교양과학도서'에 솔직히 질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책을 계속 읽으면서 나의 이 속 좁은 질투심은 저자에 대한 일종의 존경심에 서서히 자리를 내 주고 말았다.

왜 문과, 이과를 분리해서 가르쳤을까

열정.

아마도 내가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은 여태 전공서적 하나 쓰지 못한 무능이나 나태라기보다 저자가 우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그 뜨거운 열정이 아닐까. 나도 어릴 적엔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별을 세었더랬는데. 그 때 그 마음은 지금 다 어디로 가 버렸을까. 찰나의 우주쇼를 보기 위해 망원경 둘러메고 여기저기 좋은 자리를 찾아 삼매경에 빠지는 그 많은 이름 없는 아마추어들의 열정에 비추어 현직 과학자로서의 내 모습은 얼마나 떳떳할까.

사실 과학 그 자체의 정신에 관한 한, 아마추어 아니 마니아들의 이런 뜨거운 열정이야말로 오히려 우리 과학자들이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과학과 다른 분야들 사이의 소통이 심하게 막혀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부당하게도 엄격하게 문과, 이과를 분리해서 가르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위 문과 사람들에게 이공계는 세상 물정 모르는 '무식한 공돌이'일 뿐이고 이공계 눈에 비친 인문계는 잔머리 굴려서 돈이나 권세만 바라는 속물들일 뿐이다. '두 문화' 사이의 이런 적대 아닌 적대감은 양자 모두에게 고스란히 폐해를 끼친다. 물리논문을 쓰는 것이 내 직업이지만 나는 내가 더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을 교육받았더라면 내 논문의 질이 훨씬 더 좋아졌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와 꼭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정치인들, 행정 관료들이 최소한으로라도 현대과학의 기본원리와 역사 등에 대한 교양을 배울 기회를 더 많이 가졌더라면 아마 이공계 위기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못한 데에는 물론 다양한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는 과학자들의 사회에 대한 일종의 서비스 정신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자면, 인문학 하던 사람이 과학을 배우는 것이 그 반대보다 훨씬 어렵다. 수학이나 물리에 대한 진입장벽이 꽤나 높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과학자들이 일반인들에게 현대과학의 원리와 성과들을 대중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우주콘서트>를 쓸 만큼의 열정을 가진 수많은 아마추어들을 제도권 과학자들은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일차적으로 이들에 대한 교류와 대중적인 서비스 활동을 배가시켜야만 할 것 같다. 이런 폭넓은 아마추어의 풀이 있다면 아마 아인슈타인 같은 대스타가 출현할 확률도 그만큼 커지지 않을까.

나 또한 이런 사람들에게서 배울 게 많다. 사회 전체적인 교양의 수준도 따라서 높아지게 마련이다. 쿼크(현재까지 알려진 물질의 최소 기본 단위)만 쳐다보는 내가 어떻게, 예컨대 진화심리학 따위를 제대로 공부하겠나. 그 분야 전문가들의 사회에 대한 서비스 정신과 아마추어 마니아들의 넘쳐나는 열정이 결합된다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분명 큰 문화적 혜택을 받게 될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는, 지금껏 그래 왔듯이, 이 책을 두고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하며 빈정대기도 할 것이다. 사실 간혹 어떤 진술들은 과학적으로 정확한가 의심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전문가들이 쓴 책조차도 그런 의심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어릴 때부터 정답 찾기만 강요받은 대부분 우리들에게는 책의 어디가 잘못되었고 어디가 부족한가가 전부가 되어버렸지만, 과학의 도정에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진리를 향한 그 뜨거운 정열과 자연에 대한 그 한없는 애정이 아닐까. <우주콘서트>는 내가 지금껏 잊고 있었던, 어쩌면 우리 모두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자명한 원리를 다시 깨닫게 해 주었다.

아인슈타인 이론을 제대로 가르치는 대학이 얼마나 될까

책의 마지막 부분은 우주개발에 대한 인간의 도전사를 적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8년 외나로도 우주센터가 완공되면 직접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다. 얼마 전에는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 선발대회가 성황리에 열리기도 했다.

이 모든 가시적인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허전하기만 하다. 우주를 지배하는 중력원리로 지금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정말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대학이 지금 우리나라에 과연 얼마나 될까. 중력이론을 심각하게 연구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몇이나 될까.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기본'을 다지지 않는다면 우주탐사를 나서기 위한 핵심기술 따위를 확보하기란 영영 요원할 것만 같다.

흔히 말하는 그놈의 '지름신'을 나도 피해가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디지털 카메라를 업그레이드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우주콘서트>가 또 다시 나를 괴롭히고 있다. 책에 나오는 그 메시에 마라톤 (프랑스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Charles Messier)가 만든 천체 목록 110개를 모두 찾는 게임)인지 뭔지, 언젠가는 나도 천체망원경을 '질러서' 꼭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ps. 하늘에 끝이 없다는 어릴 적 우리 형의 주장은 현대우주론과는 맞지 않다.

태의경의 우주콘서트

태의경 지음, 동아시아(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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