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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청와대에선 오후 3시부터 5시 5분까지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 서명식과 수요자 관점 업무보고가 각 20분과 95분간 진행되었다.

장차법을 제정하기 위해 결성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연대(이하 장추련)와 각 장애 관련 인사 121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장차법에 서명을 하는 순서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장차법에 서명하기 앞서 "지난 대선 때 장애인의 인권과 자립이 실현되는 사회를 공약했다"며 "올해부터 시작된 중증 장애인 활동보조인 서비스도 계속 늘려나갈 예정"이라고 성과를 소개했다.

강제로 끌려 나간 초대받은 손님

곧 이어 지체장애인 장향숙 의원과 시각장애인 정화원 의원이 옆에 배석한 가운데 서명을 하려던 순간,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대통령이 장애인의 현실을 제대로 모른다면서 앞에 나온 박경석(지체 1급) 장추련 공동 대표는 옷 속에 몰래 숨겨두었던 플랭카드를 꺼내 펼쳐 들었다.

"장애인교육지원법을 제정하라", "시설비리척결 사회복지사업법 개정하라", "활동보조인서비스를 권리로 보장하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뒤이어 장애여성 단체인 '공감'의 박영희(지체 1급) 대표도 함께 앞으로 나와 박씨의 즉석 시위를 지지했다.

5분 가량 보좌관들과 실랑이를 벌인 두 명의 장애인들은 결국 완력에 밀려 행사장 밖으로 끌려 나갔다. 이때 초대 손님으로 와있던 장추련 법제정위원회 부위원장인 김광이(44세)씨는 "'강제로 끌어내지 말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정신이 없었다"고 상황을 전했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장차법 서명식"

이날 행사에 초대받았지만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도 있다. 장추련의 투쟁팀장인 이규식(뇌병변 1급, 39세)씨와 박옥순 사무국장이 그들.

<위드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씨는 "행사장에 가려고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경호원들이 못 들어가게 막았다"며 "지금 수배 중이라는 이유였다"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 입장할 수 있는 비표를 주겠다고 했으나 이미 행사가 진행되고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또 "장애인 시설비리와 장애인 이동권연대 투쟁을 했다고 수배를 내려 현재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있다"며 청와대측에 대해선 "나 같은 중증 장애인을 손님으로 초대해 놓고,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장애인을 차별하는 서명식이다"라고 비판했다.

박옥순 사무국장은 이씨의 입장이 좌절되자 "실무자만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라며 함께 입장을 거부했다.

행복한 장애인? 단식 중인 장애아 부모들

한편 청와대의 이날 행사는 '행복한 장애인!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란 취지로 진행되었다. 제1차 장애인지원종합대책(2006년 6월)에 이은 제2차 장애인지원종합대책(2007년 4월), 그리고 장차법으로 이어진 참여정부의 성과를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해 것.

실제 노무현 대통령은 "장차법 제정은 장애인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역사적인 일"이라고 강조하며 "장애인도 일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위해 인권위원회에서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장애인이 그러한 사안을 대통령에게 직접 말했다가 밖으로 끌려 나가는 게 현실.

또한 4월부터 전국적 활동보조서비스를 실시한다고 했지만, 오늘도 중증 장애인들은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복지부의 '나몰라라' 활동보조서비스 지침에 강력히 항의했다.

실제로 이 제도가 실시될 5월에 과연 활동보조서비스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을지 장애인들은 의문을 품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복지 마인드가 있는가

"의무고용은 정부부터 독려해서 공공부분 의무고용률 2%를 초과달성 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이늘 발언 역시 장애인들이 왜 즉석 시위를 벌였는지 이해하게 한다.

공공기관의 지난 2005년 장애인 평균 고용률은 각각 2.25%와 2.49%로 장애인 의무고용률 2%를 초과 달성했지만, 86개 정부기관 중 10곳과 135개 공공기관 중 75곳은 중증 장애인을 단 한명도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 또 30대 대기업은 1.14%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오늘 수요자 관점의 장애인지원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대형 생활시설보다는 지역사회 중심의 지원정책으로 전환하며, 장애아가 고등학교 과정까지 무료로 교육을 마칠 수 있도록 하여 인적 자원으로 육성한다는 것 등이 골자.

이 대책이 특단의 대책은 아니다. 대통령의 말대로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이뤄지기는 어렵다. 제시된 대책이 언제나 외양간 고치는 대책에 불과했다는 건 장애인 복지 관계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아울러 장차법 서명이 단순히 '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실효성 있는 시행령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대통령 먼저 장애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의 김동수(지체 1급, 40세) 팀장은 텔레비전을 통해 장차법 서명 행사를 지켜본 뒤 "장차법에 강제성이 없으니 시행령이라도 제대로 만드는 게 의미가 있으나, 자칫하면 있으나마나한 법이 될까봐 걱정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김 팀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장차법을 통해 사회적 인식을 바꾸자고 말하지만 지금 있는 제도들이 올바르지 않은데 어떻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 수 있냐"며 "대통령 먼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한 달간만 장애인과 생활해보면 바뀔 것"이라고 꼬집었다.

1990년 미국 대통령인 부시가 백악관에 장애인 대표들을 초청해 미국장애인차별금지법에 서명한 것을 본따 준비된 오늘 장차법 서명 행사는 해프닝으로 그치고 말았다. 앞으로 있을 장애인 지원 대책마저 실속 없는 대책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장애인 신문 위드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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