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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러나 이번 FTA 협상 타결로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은 있다.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이 바로 그것이다.

노 정부는 자주적, 때때로는 반미적 발언을 즐겨 사용했지만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에 한국을 가장 깊숙이 끌고 들어간 장본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노 정부는 침공의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을 제외하곤 이라크 전쟁에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했다. '동북아 균형자'라는 정치적 수사의 장막 뒤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세계패권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던 해외주둔미군재배치(GPR)와 전략적 유연성을 가장 확실히 보장해주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 FTA를 통해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동북아에서 확대·강화할 수 있는 거점을 만들어 주었다.

'반전평화'를 대선 슬로건으로 내세웠고, 미일동맹과 중국 사이에서 '동북아 균형자'를 추구하겠으며, '양극화 해소'와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를 임기 중 최대 목표로 내세웠던 정부에서 일어난 일들치곤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쯤 되면, 정부의 정치적 구호에 공허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국제품과 경쟁하자더니, '한미 경제동맹'이라고?

FTA가 타결되면서 정부와 보수언론, 그리고 보수적 전문가들은 일제히 한미관계가 기존의 군사동맹에 경제동맹까지 더해져 '포괄동맹'으로 발전했다며, 그 의의를 부여하는데 바쁘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환영할만한 일인가?

이라크 파병 논란에서 그 위력이 여실히 입증되었듯이 한미동맹은 모든 이성과 실리를 마비시키는 논리로 작용했다. 여기에 경제동맹까지 부과되면 한국의 정책 자율성은 더욱 요원해지지 않을까? 가령 앞으로 이라크 파병과 같은 미국의 요구가 있을 때, '군사+경제' 동맹이 된 한국이 보편적 가치나 국익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을까?

정부와 보수진영은 한미FTA 체결을 계기로 악화일로를 걷던 한미관계가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게 되었다며 반색하고 있다. 특히 경제동맹을 체결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을 걱정을 덜게 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을 '망국의 지도자'라며 하루가 멀다하고 비난했던 보수언론은 그를 '구국의 지도자'로 칭송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FTA와 군사동맹은 그 기본전제부터 다른 개념이다. 군사동맹은 공동의 적에 기반을 둔 체결국간의 '결속'의 개념이라면, FTA는 무역장벽이라는 빗장을 풀고 각기 경제 이익을 극대화 해보겠다는 체결국간의 '경쟁'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조차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면서 포괄동맹을 예찬하는 것은 한국의 미래를 '미국의 범위'에 가둬두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주한미군에 약간의 변화만 생겨도 호들갑을 떨어왔던 한국의 현실을 볼 때, FTA 체결로 미국 경기 변동에 한국 경제가 더욱 종속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그저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해 6월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지난해 6월 1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 연합뉴스
'평화의 동북아'에 군비경쟁 바람이

노무현 대통령은 FTA 타결 직후 '결단의 배경'에 중국이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우리 경제의 미래와 중국을 비롯한 세계시장의 변화까지 내다보는 큰 장사꾼의 안목을 가지고 협상"에 임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견제론'은 미국의 대중 강경파들의 인식과 닮은꼴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21세기 핵심적인 전략은 중국이 미국과 대등해지는 것을 사전에 좌절시키겠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은 채 대미 편승의 관성에 따라 거의 그대로 수용할 때,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지 않게 될 것이라는 안도감은 강대국 간의 원하지 않는 대결과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성을 잉태하게 된다.

한미FTA를 통해 동북아 거점을 확보한 미국은 일본과의 FTA도 추진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한미·미일동맹을 통한 군사적 봉쇄와 한국, 일본과의 FTA를 통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전자제품 등 일본과의 경쟁 상품의 대미 수출 경쟁력을 원위치로 돌아오고, 동북아의 미래는 정부가 구호로 내세웠던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보다는 군비경쟁과 총성 없는 경제전쟁으로 얼룩지고 말 것이다.

'리틀 아메리카'가 될 것인가

더욱 중요한 문제는 오늘날 많은 국가들과 지식인들은 '팍스 아메리카'에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있다는 데 있다. 의문은 두 가지 맥락에서 나온다. 지속가능성과 타당성이다.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여전히 세계 최강이지만 중국과 인도의 부상, 러시아의 회복, 유럽의 독자노선, 남미의 반미노선 등이 맞물리면서 10~20년 내에 다극체제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한 이라크 침공으로 상징되는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로 인해, 미국은 온건한 패권국가라는 이미지를 잃은 지 오래 이고, 국제사회에서 리더십의 위기에 허덕이고 있다. 미국 내에서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 역시 간과해선 안된다.

바로 이러한 미국을 상대로 줄서고 있는 한국이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리틀 아메리카' 이상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을지 극히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팍스 아메리카'가 종말을 고할 때이다.

'포괄동맹'에 찬사를 보내기에 앞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다.

한미FTA 범국본은 지난 3월  21일 농성장에서 '망국적 농업 포기발언 노무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미FTA 범국본은 지난 3월 21일 농성장에서 '망국적 농업 포기발언 노무현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내일신문 4월 6일자에 기고한 것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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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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