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세부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찾는 휴양도시다. 그러나 바로 이웃에 있는 보홀섬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필리핀 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섬이 어디냐고 물으면 보라카이섬 보다 보홀섬을 더 선호한다. 그만큼 보홀섬은 볼거리와 자연경관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섬이기 때문이다.
나는 세부와 보홀섬을 비교할 겸 4박5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났다. 패키지여행이 아닌 개별투어로 호텔을 미리 예약하고 국내선을 이용, 마닐라-세부, 세부에서 보홀은 패리호를 이용하고 보홀-마닐라로 돌아오는 일정을 잡았다.
필리핀은 오랜 문화유산을 간직하지 않아 자연경관을 빼고 나면 솔직히 볼거리가 그리 많지 않은 나라다. 세부 역시 주변관광지로 내 놓은 것이 마젤란 십자가와 도교사원, 페르난도 요새 정도다. 대부분의 신혼여행으로 오는 분들이 막탄섬 등에 위치한 고급호텔에 마련된 수영장이나 해변의 위락시설에서 열대과일과 음식을 먹으며 휴양을 하는 수준이다.
세부는 큰 도시라 밤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면 보홀섬은 한적한 해변에서 잘게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쏟아질 듯한 별을 바라보면서 낭만을 즐길 수 있는 한적한 곳이라 하겠다. 나의 세부여행은 화려한 밤 문화를 즐기기보다 생선 비린내가 진하게 풍기는 재래시장을 선택했다.
호텔에서 시내지도를 한 장 얻어서 재래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인 메니저가 그곳은 위험한 지역이라 가지 말라고 말린다. 우리 일행은 택시를 500페소(한화 1만원 정도) 주기로 하고 오전 3시간을 대절했다. 택시기사가 신이 나서 비좁은 시장골목을 누비며 서툰 영어지만 우리를 부지런히 안내했다.
온갖 생선과 열대과일과 채소가 시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시장 뒷골목 사람들의 생활상은 말 그대로 인간시장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새로운 삶의 활력소를 얻을 수 있었다. 호텔로 오는 길에 우리는 마젤란 십자가와 도교사원, 산 페르난도 요새도 보고 쇼핑도 즐길 수 있었다.
세부에서 보홀로 가는 패리호는 매시간 1편씩 갈 정도로 자주 있다. 보홀섬의 주도인 ‘타그 발라란’ 항구까지는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 가격도 1인당 400페소(8천원 정도)로 출발 30분 전까지만 항구에 도착하면 예약 없이도 탈 수 있다.
보홀섬의 진주라고 하면 바로 팡라오 섬이다. 대부분의 해변이 산호가루로 이루어진 화이트 비치로 분말처럼 보드랍고 야자수와 어우러져 한마디로 지상낙원이다. 팡라오섬은 보홀의 주도와는 작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팡라오섬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비팜(Bee Farm) 꿀벌농장 리조트를 예약했다. 보홀 리조트 등 잘 알려진 곳에 비하면 1/3값도 안 되는 저렴한 곳으로 필리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아침식사를 포함해서 2인1실의 숙박비가 2천페소(한화 4만원)다. 리조트 2층 창문을 열면 멀리 알루나 비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리조트에서 절벽 계단을 내려가면 하얀 분말을 일으키는 파도에 몸을 적시며 아담과 이브가 되어 남국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관광농원인 이 농장은 비키(VICKY)라는 필리핀 여성이 운영하고 있다. 꿀벌이 70군이나 되며 12ha 규모의 농장에는 온갖 유기농 채소와 허브를 기르고 열대과일이 익어가고 있다. 여기서 생산된 유기농채소가 식단에 오르고 직접 만든 빵과 제품으로 만든 아침식사는 다른 호텔에선 맛볼 수 없는 특선메뉴다.
"우리의 땅은 황금보다 더 값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비키씨는 농업에 남다른 애착심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이곳에선 잘 알려진 농군학교장인 셈이다. 어린이 체험학습장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매년 많은 학생과 유기농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종업원이 78명이나 되는 농장에선 유기농, 꿀벌농장, 과수원은 물론 가내 수공업으로 삼베와 수공예품도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보홀섬은 세부섬에 비해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은 섬이다. 가까운 섬으로 배를 빌려 나가면 스노쿨링도 즐길 수 있다. 또한 보홀섬이 자랑하는 두 가지 관광 상품은 바로 로복(Loboc)강에서 배를 타고 선상 식사를 하고, 이곳에서만 서식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원숭이(Tarsier)를 보는 것과 세계에서 유일한 초콜릿 힐(Chocolate Hills)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보홀섬만이 가진 자랑거리다.
리조트에서 1인당 500페소를 주면 에어컨이 있는 차를 대절해서 1일 관광을 즐길 수 있다. 초콜릿 힐은 팡라오섬에서 1시간 30분 정도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달리면 만날 수 있다. 초콜릿 힐은 말 그대로 동그란 초콜릿 모양의 언덕이 1268개나 펼쳐져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오래 전 바다였던 지역이 융기와 산호의 퇴적으로 형성된 곳으로 토양 속 염분이 점점 자라면서 이른바 ‘초콜릿 힐’을 만들었으며 멀리서 보면 경주에서나 볼 수 있는 왕릉을 연상케 한다.
소금 성분 때문에 언덕엔 염분에 강한 풀만 자라며 나무는 없다. 특히 4월부터 건기가 시작되면 언덕에 자라던 풀이 말라 초콜릿 색을 띠고 있어 초콜릿 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옛날 거인들이 진흙을 이겨 던지며 싸웠는데 그때 던진 진흙 덩어리들이 언덕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초콜릿 힐을 관광하고 팡라오 섬으로 돌아오는 길에 로복 강변에서 안경원숭이(타르시어스)를 구경할 수 있다. 몸집에 비해 안경을 쓴 것처럼 큰 눈을 가진 이 원숭이는 사람 손아귀에 덜어갈 정도로 작은 원숭이다.
관광객에게 하도 시달림을 받아서 그런지 나무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성질이 얌전하고 온순해 팔이나 손등, 어깨 위에 올려놓아도 큰 눈을 껌벅거릴 뿐 도망치거나 공격을 하지 않는 이색적인 원숭이로 아이들에겐 신기한 동물임에 틀림없다.
원숭이 농장 아래는 로복 강이 흐르고 있으며 이곳에서 유람선을 타고 1시간 정도 거슬러 올라갔다 내려오는 로복강 투어는 점심값으로 260페소(5200원정도)를 받는다.
강 주변을 가득히 메운 야자수와 주변을 따라 펼쳐지는 이국적인 풍경과 강물에 떠있는 구름과 파란 하늘이 더욱 아름답다. 특히 아이들이 강변에 나와 나무넝쿨을 타고 타잔처럼 강물로 뛰어 내리는 모습은 정겹다.
로복강 투어는 대부분 점심 식사 시간에 맞추어 진행되며 선상에서 점심을 먹는 재미도 괜찮다. 선상에서 점심을 즐기노라면 어김없이 기타를 든 무명가수가 나타나 팝송을 불려주고 한국 관광객에겐 '사랑해'라는 노래 한곡 쯤은 꼭 불러준다.
보홀섬은 아직 한국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다. 이곳으로 오는 방법은 세부에 도착한 후 페리호로 들어오는 방법과 마닐라에서 국내선을 이용하여 오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국내선 왕복요금은 12만원 정도 된다.
큰 호텔이나 리조트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하나 팡라오섬에 있는 일반 리조트는 시즌이 아니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보홀, 팡라오섬은 필리핀이 아끼는 아름다운 섬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비팜 홈페이지(www.boholbeef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