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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폴리오
재일교포 작가 가네시로 가즈키는 우리에게 친근하다. 재일교포 주인공의 성장과 방황을 다룬 그의 소설 < GO >가 한국 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소설은 영화로까지 제작되어 국내에 개봉되기도 했다. 그런 저자가 이번에는 아주 특별한 사랑이야기를 전한다. <연애소설>을 통해서 말이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연애소설>은 드라마보다 감동적이고 영화보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그 사랑의 주체가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단지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의 가슴벅찬 사랑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을 뿐이다.

이런 구조는 <연애소설>속 세가지 짧은 단편, 연애소설, 영원의 환, 꽃을 모두 짊어지고 나간다. 이 세 단편들의 구조는 엇비슷하다. 요약하자면 누군가의 사랑을 지켜보는 일, 그리고 감동받는 일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왜일까? 가만 생각해보니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이 우리네 모습과도 닮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드라마나 영화같은 삶을 꿈꾸지만 정작 그런 불꽃 같은 사랑할 용기 없는 우리 모습 말이다.

정상적인, 그리고 지극히 피상적인 사랑을 하는 주인공, 하지만 그가 만나는 주변인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주인공을 제외한 책 속 등장인물들의 상태는 한결같이 심각했다. 정확히 말한다면 사랑에 상처받았지만 사랑의 기억이 없으면 한순간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랄까?

"나 그때는 이미 길들여진 상태였어."
그가 말했다.
"친한 친구를 다섯 명이나 잃었으니까."(30쪽)


그 중에서도 연애소설의 한 남자의 삶은 기고하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게 만드는 운명을 타고난 듯 보였다. 어릴 적 부모님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고, 함께 했던 친구들이 그랬고, 이런 일련의 사실에 아랑곳없이 자신을 맡아 키운 숙모마저 세상을 떠나게 했다. 그렇기에 그는 세상과 떨어진 채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놓지 못했던 단 하나의 운명, 단 한명의 연인이 그를 찾아왔다. 어느 날 그는 아주 우연히 계단에서 넘어져 구르는 같은 대학교 여학생을 엉겹결에 받아 안은 적이 있다. 그 일을 계기로 그와 그녀는 아주 친해지고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기에 그녀를 멀리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보며 그녀가 용감하게 말했다.

"있지, 제대로 전달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말을 꺼내고는 턱을 내리고 그의 옆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 있어도, 안 만난다면 그 사람은 죽어버려."
그도 얼굴을 내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람은 다 죽잖아. 그러니까 안 만나는 사람은 죽은 거나 다름없는 거야. 가령 추억 속에 살아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죽어 버려."(54쪽)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죽어버리기에 머뭇거렸던 남자의 운명 앞에서 여자의 말은 큰 힘이 되었다. 그렇기에 두사람은 그 운명에 당당히 맞서 싸웠다. 자신들이 이기는지, 그 운명이 이기는지 두고 보자라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가을이 끝나갈 무렵, 그녀와의 연락이 끊어졌다. 남자는 불안했다. 차라리 여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기를 바랬다. 제발 그녀가 무사하기를, 제발 그녀에게 아무일 없기를. 연락이 끊긴지 일주일 되던 날,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정말, 그냥 빈혈이야?"
"분명하게 말하는데,"
그녀가 딱 부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 봐. 네가 그런 식으로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금방 연락 안 했어. 난 까딱없어. 그냥 단순한 빈혈이고 게다가 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데"
생명력?
생명력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63쪽)


생명력이란 말에 그는 직감했다. 그녀 역시 자신으로 인해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말 지독한 남자의 운명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그녀를 떠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말했다. '알잖아, 자신이 몇 사람이나 죽게 했는지, 하지만 너만은 죽이고 싶지 않아라고.' 그는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말했다.

"너, 나쁘다."
그녀가 말했다.
"너 그런 말 하면 나를 이미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나를 죽이려는 거라구."(64쪽)


그녀는 그를 붙잡았다. 결국 그는 남았다. 그녀의 의식이 멀어질 때까지 손을 꼭 마주잡았다. 자신을 죽이는 일은 자신을 떠나는 일이라고 말하는 그녀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녀가 눈을 감을 때까지 손을 잡아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끝이 났다.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난 지금 행복해."
그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내 기억은 그녀만으로 가득하니까. 나를 계란처럼 반으로 탁 깨면, 그녀하고의 추억만 흘러나올 거야."(68쪽)


그와 그녀의 사랑이야기를 읽다보면 문득 생각나게 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를 죽게 만드는 것일까? 살게 만드는 것일까? 그는 그녀가 자신을 만나서 죽게 되었다는 자책감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하기에 그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말하는 죽음이란 그가 말하는 죽음의 운명을 넘어선다.

이렇게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는가? 누구도 쉽게 답할지 못할 것이다. <연애소설>의 지독한 사랑이야기는 그렇기에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주변 사람의 이야기로 남은 것 같았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로 들어야만 그래야만 감당해 낼 수 있는 이야기, 그렇기에 에머랄드 빛처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가네시로 가즈키의 <연애소설>은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 알게 해준다.

덧붙이는 글 | 정열은 냇물의 흐름과 같다. 얕으면 소리를 내고 깊으면 소리가 없다.

필자 미니홈피  http://cyworld.nate.com/UsiaNO1 


연애 소설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북폴리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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