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스커스의 점심은 특별한 것이었다. 반 지하 형식의 식당은 입구는 좁았지만 객석은 넓고 분위기도 좋은 편이었다. 미리 예약이 되어 있었던지 우리들이 들어가자 곧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식당에서는 다른 곳에서 맛보지 못했던 다양한 음식들이 잃었던 입맛을 되살려 주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며 돌아본 식당은 넓은 객석에 손님들이 제법 많은 편이다. 우리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 사이,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들을 살펴보니 젊은 커플 2쌍과 친구들로 보이는 젊은 여성 3명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식당의 손님들이 하나같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남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들도 대부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이 피우는 담배는 우리식 담배가 아니라 물담배라는 것이었다.
물담배는 물속을 통과한 담배연기가 기다란 호스를 통하여 들어와 입에 무는 파이프로 마시게 되어 있었다. 이 물담배는 뽀글뽀글 담배연기가 통과하는 물에 각종 향료를 첨가하기 때문에 달콤하거나 향기로운 맛에 남녀를 막론하고 매우 즐기는 모습이었다. 한 번 피우기 시작하면 보통 1시간 이상씩 피운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피우는 담배가 맛은 향기롭고 달콤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양의 니코틴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을 통과하기 때문에 니코틴이 없는 것으로 알고 즐기는 이들의 이른바 물담배를 세계보건기구가 검사해본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이들이 한 번에 피우는 물담배의 니코틴 함유량은 보통 담배 30~40갑에 해당하는 양이라는 것이다.
그런 담배의 해악을 아는지 모르는지 물담배 파이프를 물고 희희낙락하는 젊은이들이 안타까운 모습이다. 아이들과 함께 온 엄마들도 그런 물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며 친구들과 함께 온 한 젊은 여성은 보통 담배를 여유롭게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식당 중간쯤 테이블에 자리한 네 명의 성인 여성들과 다섯 명의 아이들이 눈길을 끈다. 그 뒷자리도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여성들은 나이가 어림잡아 4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까지로 보이는 여성들이었는데 아이들은 10대에서 아직 젖먹이까지 아주 귀엽고 예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가가 물어보니 한 가족이라고 한다. 성인 여성들은 한 남자의 부인들이었다. 첫 번째 부인부터 네 번째 부인까지, 아이들은 첫 번째 부인을 제외한 나머지 세 부인의 소생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우리들이 보기에도 정말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돌부처도 시앗을 보면 돌아앉는다는데."
우리 일행 여성들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들이다.
"아랍에서는 한 명의 남성이 부인을 네 명까지 둘 수 있습니다. 단 조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모든 아내들에게 무엇이든지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와! 그럼 이곳은 남성들의 천국이잖아?"
누군가 믿기지 않는다는 말투로 탄성을 지른다.
"정말 그럴까요? 그건 천국이 아니라 지옥일 것 같은데요."
또 다른 일행은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 요즘 여성들이 얼마나 어려운 상대인데, 두 명도 아닌 네 명이라니, 그 남자는 분명히 무척 힘들고 괴로울 것이라는 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몇 명의 부인을 둔 남자들은 모두 부자라는 것입니다."
부인을 들일 때 상당한 몸값을 지불해야 되기 때문이다. 세계의 어느 문화권에서는 여성이 결혼할 때 많은 지참금이 있어야 한다는데 이곳은 그 반대인 모양이었다.
"몸값도 몸값이지만 생활비도 문제지요. 부인들과 또 그들을 통해 낳은 아이들의 양육비까지 책임을 지려면 어지간한 재력으로야 어디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것 같았다. 생활비며 교육비등 우리나라의 형편으로 생각하면 정말 감당키 어려울 것이다.
"경제적인 것을 빼 놓아도 역시 어려울 것 같은데요. 네 명의 부인에게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다. 정이라는 것은 어느 쪽으로든 쏠림 현상이 있게 마련인데 모든 부인들에게 모두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암튼 이 나라와 아랍권은 남성중심의 사회인 것은 분명하잖아요? 여러 명의 부인을 거느린 남성이 행복할지 불행할지 그것은 그 남성의 몫이라 치고. 그럼 반대로 여성들은 분명 불평등한 제도 때문에 불행할 것 아닙니까?"
모두들 긍정하는 눈치다. 적어도 우리시각으로는 그렇지 않은가? 남녀 간의 불평등이 얼마나 심한 제도인가 말이다.
"그런데 저 여성들 좀 보세요? 저 행복한 표정, 전혀 불행의 냄새를 느낄 수 없잖아요?"
정말 그랬다.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희희낙락하는 그 여성들의 표정 어디에서도 불행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식당 안에서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만난 어느 여성에게서도 불행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 어린 젖먹이 아이는 첫 번째 부인인 듯한 나이든 여성이 안고 있다가 아이가 칭얼거리자 엄마에게 넘겨준다. 마치 친정엄마와 딸 같은 모습이다. 서로 시기질투 하거나 미워하는 눈빛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네 명의 부인들이 한 마디로 오순도순 정다운 모습이다.
우리 일행 여성들이 그 가족들에게 관심을 보인다. 우선 아이들이 정말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 여성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모습을 본 엄마들의 표정이 더욱 밝아진다.
"자기 자식 예뻐하면 좋아하는 것은 어느 나라 어떤 사람들이나 똑같구먼."
우리 일행들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예쁘다고 어르고 귀여워하자 그 쪽 여성들이 더욱 좋아한다. 아이를 안아보고 싶다고 하자 선뜻 안겨주기도 한다. 귀엽게 생긴 아이들 때문에 어울린 네 명의 아랍여성들과 우리 일행 여성들은 금방 친해졌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발짓과 표정만으로도 충분한 교감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낯설어 했지만 자신들을 귀여워하는 마음을 금방 느끼고 알아차렸지 별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말이 아닌 표정과 마음을 통한 정으로도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들처럼 한 남성과 사는 두세 명의 부인과 아이들이 함께 외출하거나 정답게 관광하고 산책하는 모습은 이집트의 카이로를 비롯한 아랍권의 몇 곳에서도 또 만날 수 있었다.
"이 쪽에서는 통통한 여성들이 양 한 마리 쯤 더 받는다는데, 그럼 우리들은 값이 훨씬 많이 나가겠는데요. 우린 한 마디로 비싼 여자들입니다. 호호호"
우리 일행들 중에서 몸무게가 제법 나가는 두 여성이 다른 일행들을 웃긴다.
"여러분들은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십시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저 여성들처럼 한 남자를 두고 두세 명의 여성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쟁탈전을 벌인다고 가정해 보시면 상상이 되십니까?"
"우리가 미쳤어요? 한 남자를 두고 몇 명이 쟁탈전을 벌이게. 아예 안 살고 말지."
일행여성들은 생각만으로도 기분 나쁜 모양이다. 모두가 문화와 전통의 차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랍권은 남녀불평등이 매우 심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여성들이라면 절대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문화가 다른 우리들의 시각으로 그들을 마음대로 예단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었다. 식당에서 나와 우마야드 모스크로 향하는 골목길에는 그림을 파는 노점상과 카펫을 파는 노점상들이 좁은 골목길 담장에 물건들을 진열해 놓고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2일부터 2주간 북아프리카 이집트 남부 나일강 중류의 룩소르에서 중동의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까지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