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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혜 부장판사
김영혜 부장판사 ⓒ 여성신문
법조계에 여풍이 거센 가운데 전세계 4000여명의 여성법관이 모여 여성인권 관련 선진법률을 논의하는 세계여성법관회의(IAWJ)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열려 화제다.

한국은 지난해 회원국가로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지만 김영혜(49) 세계여성법관회의 유치준비위원장(서울남부지방법원 부장판사) 등 여성법관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불과 몇 년 만에 회의 개최국으로 발돋움하는 성과를 올렸다. 지난 3일 김 부장판사를 만나 IAWJ 국내 유치 성공 스토리와 향후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 IAWJ 아시아지역 이사로서 2010년 회의를 국내에 유치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여성 종중원 인정 대법원 판결, 호주제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발표한 게 결정적이었다는데.
"유치준비위원장을 맡아 2006년 시드니에서 열린 회의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했는데 효과가 컸다. 처음에는 해외 법관들이 한국이 선진법률 국가라는 것을 믿지 않았는데 여성 종중원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과 호주제 헌법 불합치 결정 등을 발표했더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IAWJ는 사법재판 제도를 통해 양성평등을 구현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단체인데, 그 사례를 직접 보여줬으니 개최국으로 손색이 없다는 의견이었다. 그 결과 지난달 15일 영국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한국이 2010년 개최국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 이번 회의 유치가 사법부의 국제화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유치의 의의와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동안은 올림픽이나 영화 등 스포츠·문화 등의 사적 부문에서 활발한 교류가 진행된 반면, 입법·사법·행정 등 공적 부문에서의 교류는 적었다. 그 중에서도 사법부는 특히 국제화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남성 중심의 사법부가 외면해왔던 국제교류를 여판사들이 나서 이뤄냈다는 데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전세계 4000여명의 여성법관들이 참석하는 IAWJ를 통해 한국 여성법조인들의 역량을 과시함은 물론, 한국 선진 사법제도와 발전과정을 소개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 최근 여성판사 비율이 20%에 달하는 등 법조계에서 여풍이 거세다. 하지만 여전히 고위직 여성법관은 소수에 불과한데.
"IAWJ 활동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여성법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대부분이 낮은 직급으로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상 직급의 여성법관은 고등법원장 1명, 대법관 2명이 전부다. 많은 여성법관들이 전 분야에 골고루 참여하고, 법원 운영이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레벨까지 올라야 법조계에서 진정한 여권신장이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 여성법조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한다면.
"여성법관은 남성보다 감성적이고 세심하다는 장점이 있다. 재판을 할 때도 피고인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다 고려하면서 판결을 내린다. 여성법조인을 꿈꾸는 이들에겐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우선은 선배들을 많이 만나고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다음은 장기적 계획을 세워라. 사법고시에 패스했다고 다가 아니다.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법원에서 어떻게 커리어를 쌓을 것인지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영혜 부장판사와의 인터뷰는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 진행됐다. 20년째 판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심하지만 보람도 큰 직업"이라고 답했다. 스트레스 해소법을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옛날에는 화려한 잡지를 보거나 쇼핑을 하며 기분전환을 했는데 요즘엔 그냥 동창들과 만나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고 그래요. 드라마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죠."

김 부장판사는 오늘 아침엔 어머니 49재가 있어 많이 울었다고 했다. 냉철하고 권위 있는 법조인을 상상했는데 만나본 그녀에게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다.

세계여성법관회의란

세계여성법관회의(IAWJ: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Women Judges)는 여성법관들의 협력을 통한 '인권 보장과 정의 추구'라는 기치를 걸고 1991년 공식 출범한 국제단체로 현재 34개 기관가입국 회원 4264명과 54개국 개인회원 218명이 참여하고 있다. 여성법관회의는 2년마다 세계 각 대륙에서 회의를 열어 여성인권 관련 국제조약에 대한 교육을 장려하고 선진법률 등을 논의한다.

우리나라는 몇몇 여성법관들이 개인회원 자격으로 참여해오다가 2006년 2월 '세계여성법관회의 한국지부'로 기관가입을 한 후 100여명의 여성법관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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