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00>이 개봉되기 전 이란 언론들은 목소리를 높여 이 영화를 경계했다. "이란에 대한 문화적 모욕"같은 반응은 차라리 평온한 쪽이고 "부시 행정부의 대 이란 선전포고"로 제목을 뽑은 신문도 있었다. 이란 국영TV들도 나서 영화 <300>을 비판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제작할 정도로 이 영화에 대한 이란의 분노는 대단했다.
프랭크 밀러의 만화(미국식 표현으로는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300>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등장인물이나 화면구성은 만화의 각색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영화 덕에 배경이 되는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반면, 영화의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여 피어싱을 잔뜩 한 황제가 닌자들을 보내 치른 전쟁이라는 식으로 페르시아 전쟁을 기억할 위험성도 함께 높아졌다.
톰 홀랜드가 지은 <페르시아 전쟁>(책과함께)은 페르시아 전쟁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해드릴 만한 책이다. 페르시아 전쟁의 진행 과정을 묘사하면서도 당시 양쪽 진영의 문명을 비교하는 거시적 측면과 구체적인 전투, 영웅들의 면모를 다루는 미시적 측면을 모두 놓치지 않고 담고 있다. 술술 잘 읽히는 힘 있는 문장도 인상적이다.
페르시아 전쟁은 기원전 500여년 전 페르시아 제국이 그리스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페르시아는 제국을 이루고 있었고 그리스는 도시국가들로 흩어져 있었다. 올림픽 종목으로 이름을 남긴 마라톤 평원의 전투나 영화 <300>의 배경이 된 테르모필레 협곡의 전투 그리고 승부의 분수령이 되는 살라미스 해전 같은 유명한 전투들이 이 전쟁에 속해 있다.
페르시아 전쟁은 서구(West)와 동양(Orient)이 충돌한 첫 전쟁이었고 군사적인 대립이면서 일종의 문명 충돌이었다. 물론 동서양이라는 이분법이나 문명 충돌론 자체를 부정하는 견해들도 있지만 적어도 서구 입장에서는 이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하였기에 그리스로 시작해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다. 영화 <300>에 이란이 분노했던 것처럼 페르시아 전쟁의 대립구도는 서구를 대표하는 미국이 페르시아를 대표하는 이란을 압박하는 식으로 2007년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것은 스파르타였지만 페르시아 전쟁을 거치면서 전쟁의 주도권은 아테네로 넘어간다. 이미 스파르타의 도움 없이 마라톤 평원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아테네는 격론 끝에 해군력 강화를 결정하고 이 결정은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로 돌아온다.
전쟁에 참전했던 아테네의 중간 시민이나 무산 계급들은 전쟁이 끝난 뒤 정치적 발언력을 갖게 되고 이는 아테네를 시작으로 그리스식 민주주의를 이끈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이른바 서구식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니 이것 역시 오늘날 까지 이어지는 페르시아 전쟁의 유산이다.
문명과 전쟁을 함께 살펴보는 것과 함께 <페르시아 전쟁>이 가진 또 다른 미덕은 두 진영을 고르게 살펴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페르시아 전쟁을 다룬 책들이 그리스 입장에 치우쳤던 데 비해 <페르시아 전쟁>은 페르시아의 장점을 충분히 살펴보고 그리스의 문제점도 분명히 짚어준다. 최근 연구된 내용들도 최대한 반영한 것도 눈에 띈다.
무기와 전술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서양 고대 전쟁사 박물관>(르네상스)을 추천한다. 트로이 전쟁부터 로마 제국의 몰락까지 서양의 전쟁이 어떻게 이어지고 변했는지를 다루는 흥미로운 개론서다.
페르시아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결전인 살라미스 해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살라미스 해전>(갈라파고스)에 담겨 있다. 페르시아 전쟁에 승리했던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어떻게 분열하고 무너져 갔는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까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장익준 기자는 토클(TOKL, 국어능력인증시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