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누구나 다 누리고 있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봄입니다. 그리고 강철 같은 어린 싹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아스팔트로 둘러싸여도 자라나고, 시멘트에서도 풀은 자라납니다. 가끔 비닐을 뚫고 자라는 풀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닐 때문에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랑말랑하고 속이 다 보이는 비닐이 시멘트보다, 아스팔트보다 단단합니다.
초등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농촌체험 캠프를 하는 자리에서 밭에 비닐작업을 하고 있는 농부의 모습을 보고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밭에 왜 비닐을 심어요?"
"비닐을 심는 게 아니라 다른 걸 심으려고 비닐을 씌우는 건데…."
그 아이는 엄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정말 아이의 말처럼 요즘은 비닐을 심고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대부분이 감자를 심었습니다. 중부지방에서는 아마 감자를 심느라고 바쁘겠지요? 그렇게 심는 감자를 사람들은 비닐로 덮어 씌웁니다. 고추를 심을 때도 그렇고, 마늘, 양파, 심지어는 콩까지 비닐을 사용합니다.
콩의 경우는 뿌리에 '뿌리혹박테리아'라는 것이 있어 공기에 있는 질소를 흡수하여 모아 둡니다. 때문에 콩의 경우는 질소질 비료를 주지 않아도 되지요. 그런데 비닐로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하면 어떻게 될까요?
비닐을 깔아 줌으로 인하여 땅의 온도가 상승합니다. 그러므로 비닐을 깔지 않은 곳보다 작물의 자람이 좋겠지요. 또한 잡풀이 자라는 것을 억제하여 줍니다. 특히 장마철을 앞뒤로 하여 작물이 제대로 세력을 키우기에 앞서 풀들이 먼저 세력을 키우는데, 이때 비닐이 아주 요긴하게 성능을 발휘합니다.
그럼 왜 비닐을 사용하지 말아야 할까요?
우선 농업의 본래 목적에 맞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작은 화분에 상추를 키우는 것이나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는 분들이나 모두가 먹기 위하여 작물을 키웁니다. '먹는다'는 것은 또한 '살린다'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즉 우리는 '살기 위하여 먹는 것'이지요. 살기 위하여 농사를 짓습니다.
그런데 나만 잘 살면 재미가 있을까요? 농사를 짓는다고 하지만 농사는 땅만 있다고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땅 속에는 지렁이도 살아야 하고, 굼벵이도 살아야 하고, 두더쥐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온갖 벌레가 살아야 하고, 온갖 미생물들이 살아야 합니다.
비닐을 깔고 농약을 치고 비료를 뿌린 땅을 잘 살펴 보십시오. 흙은 단단하고, 지렁이는 구경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살기 위하여 농사를 짓는데, 결국은 나만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입니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늦은 밤 보초를 설 때 어딘가에 휘날리는 비닐 조각을 귀신으로 오해하고 떨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긴 겨울밤에 추위에 떨며 귀신이 있다고 보고를 하고, 다음날 수색을 합니다. 그렇게 하여 내린 결론은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로 판명이 납니다.
지난 추억으로 여기기엔 뭔가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우스를 많이 하는 지역에서는 비닐을 회수하여 자원재생공사로 가져갑니다. 하지만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곳에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들 태우거나 밭두렁에 그대로 방치하여 둡니다.
시골들길을 다니다 보면 시커먼 연기가 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봄이면 비닐을 태우다가 산불이 나기도 합니다. 바람이 불면 비닐은 마치 연을 날리는 것처럼 하늘을 날아 다닙니다. 그러다 큰 나뭇가지에 걸려 을씨년스런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지요.
이번 봄에는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지어 보세요. 농사를 짓는다는 것 자체가 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땀을 흘리고 일을 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풀도 뽑고 흙을 만져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