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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톤의 짐은 헬기로 샹보체에
ⓒ 이평수
"히말라야 영봉들이 우리 오른편에서 비행기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3월 29일 12시 30분께. 우리가 탄 비행기 기장은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 상공에 이르자 기내방송을 통해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우르르 비행기 좌석 오른쪽 창가로 달려갔다. 통상 국내 항공을 이용할 때처럼 아래를 굽어보던 습관대로 아래를 보았다. 거기에는 구름뿐, 아무 것도 없었다. 다시 반사적으로 눈높이에서 약간 위를 올려다본 순간.

아! 히말라야다.

흰 구름 위에 하얀 빛 밴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이 자신을 찾는 우리를 은은한 자태로 빙그레 내려다보고 있었다. 작렬하는 태양을 받고 구름 위 천상에서 하얗게 빛나는 히말라야 고봉들. 순간 나의 영혼은 오래도록 흠모해 오던 절대자에게 빨려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우리가 탄 비행기가 고도를 8000m 정도로 하강중이어서 이미 히말라야는 비행기와 엇비슷한 높이에 있었던 것이다. 눈부시도록 새하얀 히말라야는 흰 구름 양탄자를 깔고 일광욕을 즐기는 여신의 모습이었다. 히말라야는 억겁의 세월을 그렇게 말없이 서 있었듯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내품으며 거기에 그렇게 앉아 있었다. 아니 그냥 '계셨다'. 일체의 묘사를 거부하는 기운이다.

'걸어 다니는 히말라야 백과사전' 김창호 대원은 지난 20여년 히말라야를 오면서 이렇게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라고 비명을 지른다. 김창호는 흥분된 목소리로 히말라야 준봉들을 하나하나 가리킨다. 왼편의 가우리상카르 봉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초오유 봉에서 태연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에베레스트 봉우리와 로체와 마칼루까지. 이번 원정에서는 히말라야의 두 거봉 에베레스트(8848m), 로체(8516m)를 동시에 등정할 계획이다.

▲ 세르파들의 고향 남체 바자르
ⓒ 이평수
저기 구름 위에 서 있는 저 에베레스트가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올라갈 곳이다. 온몸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이 흐르고 숨이 멎는 것 같다.

히말라야, 흰 구름 양탄자를 깔고 일광욕을 즐기는 여신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에 감동과 흥분에 젖은 채 그렇게 입국했다. 8000m 이상의 히말라야는 눈보라가 빚어 만든 '8인의 산사나이들'을 맑은 웃음으로 맞았다. 박상수 원정대장(49), 김홍빈(44) 원정부대장 , 에베레스트 등반대장 김주형(41), 김창호(38), 윤중현(37), 김미곤 대원(36), 로체등반대장 강연룡(36), 박남수(42), 이석희(22) 대원이 '희망 2007 한국도로공사 에베레스트 로체 원정대'의 면면이다.

"히말라야에서는 정치도 국가도 없다. 오로지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동행할 뿐이다." 1953년 5월 29일 힐러리와 함께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던 네팔인 텐징 노르가이 세르파의 고백처럼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거대한 자연을 만나야 한다.

우리가 6월 2일까지 67일간에 걸친 에베레스트 장도에 오른 3월 28일 오후. 공항으로 향하는 원정대를 태운 버스 창을 천둥 번개를 동반한 우박이 세차게 때렸다. 한 낮인데도 어두웠고 봄비임에도 여름철 장대비처럼 빗발이 세었다.

30년간 산을 탄 박상수 대장. 평소 여유만만하게 대원들을 리드하는 그이지만 이날은 말이 없었다. 대원들도 22살 막내 이석희까지 긴장감에 숨이 막힐 것 같다. 산과 바람과 눈보라 빙하 크레바스를 건너며 히말라야를 누빈 이들 산사나이들은 생명을 나눈 형제보다 더 끈적끈적한 유대가 있다. 그리고 항상 밝았다. 그러나 출발을 앞둔 산사나이들의 표정은 지난 준비기간 동안의 농담과 웃음이 만발하던 분위기와 확연히 다르다. 내가 이들을 만남 이래 가장 긴장된 얼굴들이다.

박상수 대장. '살모사' 별명을 가진 베테랑 산악인으로 후배들에게 매우 엄격해 그 앞에 서면 심장 약한 후배들은 말을 더듬을 정도다. 이른바 '한 칼 하는'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벌써 히말라야만 세 번 원정대장을 맡았다. 이번이 네 번째다. 한 번도 어려운데 대단한 기록이다. 나이 상으로는 이번이 그에게 대장으로서 은퇴원정이 될 것 같다.

박대장은 "30년 전 한국인 첫 히말라야 등정 이후 우리나라는 올해만도 5팀이나 히말라야에 오른다. 그러나 산에 오르는 순간부터 인간은 대자연 앞에 작고 왜소한 인간으로 외롭게 맞서야 한다. 지금 심정은 첫 걸음마를 떼는 아이의 마음 같다"고 한다.

"등반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떠나는 무념무상의 순례다. 너희들을 위해 많은 기도해주마." 광주에서 산을 가르쳐 주었고 히말라야 원정대도 이끌었던 윤장현 YMCA이사장의 말이 대원들의 가슴을 맴돌고 있는지 모르겠다.

눈보라 빙하 크레바스 건너며 히말라야를 누빈 산사나이들

이번 원정 대원들의 등반경력은 거의 국가대표 급들이다. 대학산악팀에서부터 시작해서 끊임없이 쉬운 길보다 어렵고 새로운 코스를 찾아 도전해왔다. K2, 시상팡마 남벽 신루트 개척, 세계3대 난코스 가운데 하나인 낭가파르밧(8125m)의 루팔벽과 8000m급에서 암벽등반까지 해야 하는 로체남벽 등반이 그것이다. 이번 에베레스트 등정은 산악인으로서 상징적인 보너스를 주는 원정일 수 있겠다.

희망을 위한 2007 한국도로공사 에베레스트 로체 원정대. 이름이 길다. '희망을 위한 2007'은 '열 손가락이 없는' 김홍빈 대원이 이번 원정대 부대장으로 동반 등반해서 붙인 이름이다. 세계 최고봉 등반에서는 제 한 몸 추스르기도 벅차다. 생명을 걸어야 하는 상황도 맞닥뜨린다. 그럼에도 이들은 장애인 선배와 동행, 그를 정상에 세울 계획이다. 등산화 끈을 매기도 어려운 장애인과 함께 설산을 넘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다.

희망. "정상등정보다 아름다운 것은 희망이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남다른 도전으로 희망과 용기를 주는 국민 속의 공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자"며 적극적으로 원정을 이끌어준 한국도로공사 손학래 사장에게 대원들은 고마울 따름이다. 박상수, 김주형, 강연룡, 김미곤 대원 등으로 국내 유일의 공기업 산악팀을 이끌고 있는 한국도로공사는 김홍빈, 김창호, 윤중현 대원 등 전문산악인을 이번 원정대에 초청하여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 잃어버린 열 손가락은 동료들이...김홍빈
ⓒ 이평수
김홍빈은 '열손가락이 없는' 전문산악인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한다. 열손가락은 7명의 후배들이 대신해 줄 것이다. 장애인 형의 열손가락이 되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함께 오르겠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동행이다.

김홍빈은 89년 동계 에베레스트 등반으로 히말라야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90년 맥킨리 단독등정 때 피켈, 주마사용을 안하는 등반장비최소화와 쌀 대신 선식 등 경량등반을 젊은 의기로 시도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구조대의 구조를 받는 과정에서 두 손에 동상이 걸려 열손가락을 잘라내야 했다.

이 충격으로 한동안 산을 떠났다. 이후 후배들을 위한 지도, 스키강사 등을 하다가 다시 산을 찾았다. 북아메리카 맥킨리 봉,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정에 이어 작년에만 히말라야 가셔브룸2봉과 시사팡마 남벽을 등정했다. 이번에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선다.

김홍빈은 손가락이 없어 장갑을 끼고 벗는 것에서 아이젠, 신발, 벨트, 소변 보고 지퍼 올리는 것까지 동료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8000m 이상의 고소에서 자신의 몸 하나도 벅찬데 신세지는 것이 미안할 때는 짝이 맞지 않는 신발을 신거나 지퍼를 올리지 않고 추위에 떨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같이 하는 후배동료 산악인들은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보조해왔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도전한다. 김홍빈은 "그나마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산에 오르는 것"이어서 벌써부터 가을시즌 준비까지도 한다.

"가야 할 길이 막힌다 해도 희망을 통해 한걸음씩 길을 만들어가라"며 그동안 장애를 털고 산을 타는데 큰 지원을 한 위계룡 전 K2총대장의 말을 항상 새긴다.

박대장은 "김홍빈은 정상 등정의 갈망이 어느 때보다 강렬해 정상에 꼭 오를 것"이라고 했다.

"귀국해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는 것이 가장 큰 희망"

▲ 카투만두 공항에서 전대원
ⓒ 이평수
김홍빈의 열손가락이 되어 에베레스트 설사면을 기어오를 대원은 김주형 에베레스 등반 대장을 비롯 김창호, 윤중현, 김미곤 대원이다. 김주형은 90년대 초반부터 히말라야 낭가파르밧(8125m)을 시작으로 97년 낭가파르밧(8125m) 등정, 2000년 K2 (8612m) 등정, 2001년 시상팡마 (8027m), 2002년 시상팡마 남서벽 코리안 신루트, 2005년 루팔벽 등반 등 히말라야 8000m급 3좌를 등정했고 히말라야에만 이번으로 9번째 왔다.

박 대장은 "김주형은 그간 어려운 등반 때마다 정상등정보다 궂은 희생을 자임해왔다. 등반도 알려진 정상루트보다 암벽 등반 위주로 해왔다"며 "이번 에베레스트 정상공격이 선수로서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것이다"고 했다.

김주형은 "에베레스트 등정은 고교 때부터의 20여년 히말라야 등반활동의 한 단원을 정리하는 도전이다"며 "이번에는 홍빈이형이 손을 못 쓰니 안전하게 정상등정하고 하산 국내에 귀국해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라고 한다.

김주형은 칸첸중가 때는 한도규, 현명근대원을 잃는 사고를 겪기도 했다. 95년 맥킨리, 99년 칸첸중가, 2005년 낭가 루팔벽 때 낙석과 눈사태로 탈진한 대원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사고처리전문'의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 산하면 정나미가 떨어지다가도 히말라야 사진만 보면 다시 마음이 발동을 해 스스로 '히말라야 중독증 환자'라고 한다. 김주형은 "사고 후 다시 산을 찾으면 처음에는 겁이 나지만 등반을 시작해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올라가진다. 산하고 한 몸이 된 물아일체의 상태가 된다"고 한다.

▲ 네팔 카투만두의 모든 업무를 마치고
ⓒ 이평수
에베레스트를 고봉을 오르는 김홍빈과 김주형을 비롯한 산사나이들의 뜨거운 우정과 각오가 벌써부터 히말라야의 설산을 녹일 것만 같다. 설산의 눈보라가 빚어낸 8인의 산사나이들은 "이번 원정을 사랑과 나눔을 극한의 상황에서 실천해 보임으로써 우리 사회에 본보기를 만들자"고 다짐한다. 4월 1일 카투만두를 출발하는 8인의 산사나이들의 도전은 시작한다.

태그:#에베레스트, #등반, #로체, #히말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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