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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쓰러지신 후 수혈을 받고 기력을 조금 회복하신 어머니. 당시 너무 기력이 없어 검사받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집에서 잠시 요양을 하다 정밀검사를 받기 위해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다.
시골로 엄마를 모시러 간 날, 어머니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지 "할아배! 나 없다고 밥 굶지 말고 꼬박꼬박 챙겨 먹어?" 하시며 몇 번이고 신신당부하신다. 차에 오른 어머니가 갑자기 내리신다. 다시 부엌에 들어가신 어머니. 이미 끓여 놓은 김치찌개와 반찬에 급히 된장찌개와 반찬 몇 가지를 더 만드신다.
아버지는 "니 엄마 불쌍한 사람이여" 하시며 갑자기 옛 이야기를 꺼내신다. 우리 어머니는 18살에 아버지에게 시집와 올해 일흔넷이다. 혼인하고 나서 보니 논 한 마지기 없는 가난한 집, 그래서 시집와서 고생만 했다는 어머니. 아버지는 보리 한 자루라도 얻으려 남의 집 일도 하고, 어머니도 돈 되는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했단다.
밤을 새워가며 고생고생 일한 끝에 조그만 논과 밭 마련했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신 후 아버지 치료에 재산을 처분하고는 어머니 혼자서 어린 4남매와 집안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야 했다.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어린 시절 어머니는 산에서 도토리도 따서 팔고, 약초도 캐서 팔고, 텃밭에 채소를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쉴 새 없이 일하다가도 아버지 병에 좋다는 민간요법을 들으면 백 리 길도 마다 않고 그 약재를 찾아 산으로 들로 찾아 나섰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쓰러진 아버지 곁을 지키셨다.
어머니 정성이었을까? 지금까지 35년 동안 약을 드시고는 계시지만, 아버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그렇게 악착같이 일해서 또 다시 조그만 땅과 텃밭 하나 마련하셨다.
모든 일을 기계가 아닌 사람 손으로 하던 시절, 어머니는 그렇게 당신의 육신을 팔아 어린 자식들과 아버지 병간호를 하셨다. 그런 어머니가 이제 그 육신이 다해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검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몹쓸 병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만 간절하다.
아버지가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전화를 하신다. "엄마 괜찮으냐"고 자꾸만 물어보신다. 어떤 분이 그러는데 "자기도 아는 사람도 엄마랑 비슷한 증상이었는데 몹쓸 병이었다면서 만약에 엄마도 그러면 어떻게 하냐"면서 "니 엄마한테 아버지가 잘못한 거 많은디" 하신다. 괜찮을 거라고 해도 자꾸만 목소리가 잠기는 아버지.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자꾸만 화가 난다. 왜 화가 나는 줄은 나도 모르겠다. 아마 우리 아버지가 불쌍해서 그런가 보다. 어머니도 병실에 누워서는 자꾸만 아버지 걱정만 하신다.
일흔일곱,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는 아버지가 걱정되는 탓이다. "아버지 걱정 말고 엄마 몸이나 챙기라"고 해도 어머니는 자꾸만 아버지 걱정을 하신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화가 난다. 왜 화가 나는 줄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머니에게 미안해서 그런가 보다. 미안해서 화가 나나 보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해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화가 나나 보다. 부모가 아프고 나서야 눈물을 흘리는 이런 내가 후회스럽고 미워서, 그래서 화가 나나 보다.
세상에 나 같은 못난 불효자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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