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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푸징 입구에 있는 중국 대표호텔인 베이징판디엔. 우리말로 북경반점.
ⓒ 김동욱
냉장고 옆 싱크대 위에 즉석 카레 밥 같은 게 보인다. 호진이, 이놈이 저는 여자 친구 만나러 서울 가면서 나더러 아침 챙겨 먹으라고 던져 둔 거다. 이걸 배려라고 해야 하나, 배급이라고 해냐 하나…. 쩝.

그래도 배고픔이란 본능은 지극히 정직해서 나는 즉석 카레 밥 봉지를 뜯었다. 건조된 찐쌀과 바로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약간의 카레가 밀봉된 팩 안에 들어 있다. 봉지에 적힌 대로(봉지에는 중국어와 영어로 된 조리법이 적혀 있었다) 찐쌀이 담긴 플라스틱 그릇 안에 뜨거운 물을 붓고 그대로 전자렌지에 넣어 3분 정도 돌렸다.

뭐 그런대로 한 끼 식사로는 괜찮았다. 한 마디로 먹을 만했다. 우리나라 즉석 카레 밥과 그 맛이 별반 다르지 않다.

오전 9시. 슬슬 준비를 해야지. 서울에서 가지고 간 북경 배낭여행 가이드북(<베이징 네 멋대로 가라!>, 동아일보사)을 열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책은 사흘간의 나홀로 베이징 여행을 썩 잘 리드해준, 만족스러운 가이드북이었다.

이 책은 베이징을 A, B, C, D, E, F, G 일곱 코스로 나누어 놨고, 여기에 베이징 교외의 네 개 코스를 추가해 가이드 돼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꾸궁(古宮=자금성), 티엔안먼(天安門=천안문), 이허위엔(颐和园=이화원) 등 많이 알려진 명승고적 코스는 빼냈다.

▲ 왕푸징에서 약간 떨어진 넓은 길. 앞에 보이는 사각의 높은 건물은 광동발전은행이다. 중국말로 그대로 적으면 '꽝통파전인항'. 파전은 곧 발전이라....
ⓒ 김동욱
가급적 베이징 시민들이 많은 곳이나 베이징 사람들의 일상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을 골라 직접 그들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작 사흘의 시간 동안 베이징을 다 느끼기는 어려울 거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패키지 여행사 상품식의 코스관광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나홀로 북경여행 코스를 짰다. 첫날 밤과 서울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을 빼고 3월 31일과 4월 1일, 4월 2일의 사흘 여행 코스를 짰다.

▲ 우선 첫 날이랄 수 있는 3월 31일은 북경의 명동, 혹은 종로라 불리는 왕푸징(望府井)과 인근 후통(胡同=골목길) 둘러보기.

▲ 둘째 날인 4월 1일에는 베이징따수에(北京大学=북경대학교), 칭후어따수에(请华大学=청화대학교) 등이 있는 대학가.

▲ 마지막 날인 4월 2일에는 티엔탄꽁위엔(天坛公园=천단공원)과 치엔먼(前门=전문) 주변에 있는 따자란지에(大栅栏街=다자란거리) 및 리우리창(琉理厂=유리창)의 후통(胡同=골목길)

오전 10시쯤 집을 나섰다. 북경의 황사바람이 먼저 나를 반긴다. 생각보다 강하다. '휘이잉~' 부는 정도라 아니라 거의 태풍급이다. 거리의 사람들은 이미 북경의 이런 봄날씨에 익숙해 있는지 목만 살짝 움츠릴 뿐 각자 갈 길을 가고 있다.

'자~,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저 사거리 눈에 잘 띄는 곳에 별다방(스타××커피숍)이 보인다.

'일단 모닝커피를 한 잔 하자.'

문을 밀고 들어갔다. 주문대 뒤에 보이는 메뉴판 벽을 보니 에스프레소 커피가 17
원이다.

"워 시앙 허 이뻬이 카페이(我想喝一杯咖啡 나는 한잔의 커피를 마시고 싶습니다). 에스프레소!"

자신 있게 주문을 했다. 근데 이 아가씨 나더러 뭐라 뭐라 묻는다. 아, 또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 속이 새카맣게 탄다. 나중에 안 거지만 이 아가씨는 나에게 가지고 갈 건지 아니면 여기서 마실 건지를 물었던 거다.

지금 이 말을 다시 들으면 들릴 텐데, 이때는 정말이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튼 결국 보디랭귀지를 하는 우여곡절 끝에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 받아 마시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커피숍과 의사소통을 하고, 다시 길거리로 나왔다. 마침 한 아가씨가 지나간다.

▲ 중국에는 택시가 널려있다. 택시 외에도 일반 승용차로 택시영업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택시가 아닌 일반 승용영업차는 타지 않는 게 좋다고 한다. 사고가 나도 보험 처리가 안 될 뿐더러 간혹 범죄에 이용되기도 한다고.
ⓒ 김동욱
왕푸징(望府井)까지는 택시를 타면 쉽겠지만 가는 방법을 한 번 물어 보기로 한다.

"칭원, 워스~ㄹ 한구어런. 왕푸징 쩐머쪼우(请问,我是韩国人。望府井怎么走。실례합니다. 저는 한국인입니다. 왕푸징 어떻게 갑니까?)"

내가 이번 중국여행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 바로 '난 한국인입니다'이다. 이건 일단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발음이 서툴고 중국말을 잘 모른다'는 전제를 깔아두고 대화해 보자는, 일종의 간곡한 요청이기도 했다. 근데, 어라…? 이 아가씨가 한국말로 받는다.

"저, 한국말 할 줄 알아요. 왕푸징 가시려면 저기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쫌만 가셔서 사이공(420번) 버스 타면 되요."
"아~, 네. 고맙습니다."

이 아가씨는 아마 한국말을 배운 중국인이거나 조선족일 게다. 흐흐……. 이렇게 허탈할 수가…. 어쨌든 택시 말고 다른 교통수단으로 왕푸징 가는 법을 알아낸 건 수확이다. 일단 그 아가씨가 일러준 방향으로 가봤다. 근데 버스정류장을 찾지 못하겠다.

'그 아가씨가 잘못 알려준 건가……? 아니면 한국사람에게 억하심정이 있어서 나한테 엿 먹어라 한 건가?'

정류장 찾느라 더 이상 시간 보내기가 아까워 일단 택시를 탄다. 참고로 북경에는 택시가 널렸다. 택시정류장도 있지만 아무 데서나 손을 들면 세워준다. 그런 반면에 간혹 승차 거부를 하는 택시도 있다. 사람 사는 동네는 어디나 똑같다. 특히나 여기선 '나 거기 안가' 하는 놈한테 "웨이션머(为什么 왜)?" 해봤자 입만 아프다. 물론 말도 안 통하지만 ㅎㅎ.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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