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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메가쇼킹' 고필헌씨가 14일 '왕족체험-왕과 비' 방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왼쪽이 신부인 윤혜영, 오른쪽이 신랑 고필헌씨.
만화가 '메가쇼킹' 고필헌씨가 14일 '왕족체험-왕과 비' 방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왼쪽이 신부인 윤혜영, 오른쪽이 신랑 고필헌씨. ⓒ 오마이뉴스 김대홍

"예식장 비용이 너무 비싸. 화장이나 예식복 입는 것도 예식장에서 해야 하고."
"게다가 어찌나 빨리 진행하는지, 떠밀려서 결혼하는 것 같다니까."


예식장 결혼식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누구나 예식장 결혼식을 비판하며 문제점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대부분 예식장 결혼식을 한다. 파격을 시도하기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격으로 똘똘 뭉친 '메가쇼킹' 만화가 고필헌씨라면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한때 에로배우였던 하소연을 좋아한다고 밝히고, 괴수가 나오는 구닥다리 호러 SF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으며, '아방가르드포스트샤머니즘' 형제 액션 코미디 <감격브라다쓰>와 우주적 변태환상개그를 선보인 <애욕전선 이상없다> 등의 작품을 연재한 그의 이력에 비춰보면 평범한 결혼식은 고필헌씨와 어울리지 않는다. 14일 그의 결혼식에 나름의 기대를 하고 참가한 이유다.

'조선왕'이 된 고필헌씨.
'조선왕'이 된 고필헌씨. ⓒ 오마이뉴스 김대홍
역시,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전쟁기념관 별관 궁중대례청에 도착하자 가마행렬이 수많은 무수리(?)와 문무백관들을 이끌고 마당을 돌고 있었다. 가마에 타고 있는 인물은 틀림없는 왕의 복장. 고필헌씨였다. 그가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왕족체험 왕과 비'가 고필헌씨가 선택한 결혼 이벤트였다. 문무백관, 제조상궁, 대령상궁, 궁녀, 내관, 장군 등 대부분의 출연진은 바로 고필헌씨의 지인들.

각종 소도구를 든 신하들은 웃음을 참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한 신하는 들고 있는 깃발이 얼굴을 때리자 연방 걷어내고 있었고, 한 신하는 근엄한 척 무게를 잡고 있었다.

주위에 늘어선 지인들은 디카와 폰카를 꺼내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머리에 눈이 내린 어르신들도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느리지만 장중했던 왕과 왕후의 결혼식

"눈이 바빠."
"볼거리가 많네."


'조선왕후' 윤혜영씨.
'조선왕후' 윤혜영씨. ⓒ 오마이뉴스 김대홍
컨베이어 벨트처럼 숨 가쁘게 돌아가는 여타 결혼식과 달리 왕과 왕후의 결혼식은 느리면서 장중했다. 사회자가 "약식 궁중결혼이라 죄송하다"고 했지만 감상하기엔 충분했다. 결혼식을 시작한 지 30분이 지났는데도, 신랑 신부는 식장 입구에 선 채 입장을 하지 않았다.

결혼식은 왕과 왕후가 가마를 타고 마당을 한 바퀴 도는 식으로 시작했다. 이어 대북공연이 펼쳐졌다. 다음으로 혼주인사와 화촉점화의 순서. 40분쯤 지난 뒤에야 겨우 신랑 신부가 입장을 시작했다.

"오늘의 주인공이신 전하와 중전마마가 정청에 입장하십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궁중혼례 의식에 따라 복잡한 절차가 펼쳐졌다. 사회자가 열심히 설명하지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다음은 자료를 뒤져 겨우 뜻을 파악한 순서다.

전하의 부모님이 초례(술), 교훈, 기러기 전달을 하는 초자례급과 서부 모례, 전하가 중궁(신부) 부모님께 절을 하고, 중궁 부모님이 교훈을 내리는 전안례급과 초녀례, 천지신명께 서약하고 백년가약을 맹세하는 동뢰연, 전하와 중궁이 서로 배례를 행하는 교배지례 순서로 행사가 진행됐다.

고필헌씨는 진지했지만, 이따금 이 상황이 즐거운지 살짝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는 사람이 눈에 띄면 왕의 체통에 어울리지 않게(?) 손을 흔들기도 했다.

내명부 문무백관의 국궁4배.
내명부 문무백관의 국궁4배. ⓒ 오마이뉴스 김대홍

결혼식 막바지엔 문무백관과 궁녀들이 절을 올리는 국궁4배와 만세 삼창이 마련됐다. 흔히 결혼식에서 사회자가 신랑에게 '만세 삼창'을 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문화가 조선시대에도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날 행사엔 약 30여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됐다. 내금위 감사 부장을 비롯 호위 내금위장 장군, 가마꾼, 중전마마를 보필하는 부제조상궁과 대령상궁, 전하를 보필하는 제조상궁 등. 주최 측에 맡기면 1인당 7만원이 들지만 고필헌씨는 지인들을 동원해 결혼비용을 줄이면서 재미를 높였다.

이날 왕실 결혼식은 대한제국의 황실 궁중혼례 의식을 바탕으로 성균관 유림인 명재 원재식 선생이 혼례를 집필했다.

1시에 시작한 결혼식은 정확히 1시 57분에 끝났다. 거의 1시간 동안 결혼식이 열렸지만 하객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게다가 이날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였다.

결혼식이 끝난 뒤에도 하객들은 왕과 왕후와 함께 사진 한 장이라도 찍기 위해 줄을 섰다. 결국 2시 30분까지 사진을 촬영한 뒤에야 하객들의 사진 찍기는 끝났다.

한편 고필헌씨는 신부인 윤혜영씨와 함께 결혼식보다 훨씬 '쇼킹'한 신혼여행을 떠난다. 15일부터 두 달간 자전거를 타고 전국 일주 신혼여행을 할 계획. 제대로 자전거의 맛을 느끼기 위해 노숙을 제안했지만, 신부의 완강한 반대 끝에 찜질방과 여관방으로 타협을 봤다는 게 고씨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서해안을 끼고 전라남도 완도까지 간 뒤, 제주도로 갔다 다시 동해안을 타고 북상하는 시계방향 여행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용상에 앉은 신랑 신부.
용상에 앉은 신랑 신부. ⓒ 오마이뉴스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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