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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5일)는 5일마다 돌아오는 함안장날이었습니다. 마침 휴일인데다 함안 아라제가 열리는 날이어서 사람들은 다른 장날보다 많았습니다.
대형마트와 할인점들이 상권을 잡고 있는 도시와는 달리 시골의 오일장은 대형상권이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날이면 버스는 사람들을 다 태우지 못할 정도로 붐빕니다. 어린 시절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장날이면 버스를 타지 못해 지각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골의 오일장이 이렇게 활성화된다고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닙니다. 농촌인구가 고령화되었듯이 장터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분들도 모두가 할머니들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들 백화점이나 대형쇼핑몰로 몰리고 시장에는 가난한 서민들과 할머니들만 몰립니다. 이른바 시장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길에다 판을 벌이고,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에 며느리 눈치 보지 않고 밥을 먹겠다고 밭에서, 산에서 조금씩 가져와서 팔고 있습니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손주들 용돈을 주고 전기요금을 내고 전화요금을 냅니다.
어느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할머니는 다짜고짜 사라고 합니다. 특별히 꼬집어서 산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는 제 눈빛을 보고는 제피순을 담으려고 합니다. 가격도 모르고 산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할머니는 제가 산다고 하는 것처럼 봉지에 담습니다. 저는 '늦었구나'하며 가격을 묻습니다.
"할매 이거 얼맵니까?"
"이, 좀 시들어도 좋아. 새북에 산에서 딴 건디, 죙일 있어서 그래."
"예… 그래서 얼만데요?"
"3000원. 요만큼 더 줄게"
"요게 3000원 밖에 안 해요?"
할머니는 제 얼굴을 다시 봅니다. 다들 비싸다고, 깎아달라고 하는데, 싸다고 하는 총각이 있으니 이상하게 보였나 봅니다.
저는 할머니의 말이 다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제피순을 샀습니다. 어린시절 밭에 울타리 삼아 제피나무를 심었습니다. 독특한 향이 나는 제피 열매는 말려 가루를 만들어 추어탕 등에 넣어 먹습니다. 그걸 따서 장날에 팔려고 버스에 오르면 향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인상을 찡그립니다.
콩알보다 작은 열매를 따는 것도 힘들지만 어린 순을 따는 것도 힘들기는 마찬가집니다. 더구나 나무에 가시가 있어 자꾸만 손이 찔립니다. 그렇게 하나씩 따다보면 은근히 짜증도 납니다. 1시간을 꼬박 땄는데 양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께 산 제피순 3000원어치는 제 실력으로 딴다면 반나절을 따야 할 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