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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김삿갓의 체취를 찾아 영월 하동면을 떠돌다 우연히 들른 묵산 미술관.

장군바위와 세종바위가 비경의 틀을 잡고 그 밑으로 휘도는 맑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 들어서니, 아연 별세계다. 지난 2001년 10월에 문을 연 박물관은 전시실과 기념품점, 펜션과 체험장, 전통다실 등 아기자기한 꾸밈새로 여행객들의 발을 불러들인다.

중앙고속도로와 제천~영월간 고속화 도로의 개통으로 서울에서 여유있게 달려도 2시간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월·태백·정선은 한국에서 가장 속 깊은 오지로 꼽히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부근에는 아직도 별유천지를 노래할 만한 풍광들이 무시로 연출된다. 이런 면에서 문명과 개발의 손길은 처녀지의 순결을 어지럽히는 마각의 횡포로 치부될 만도 하다.

영월은 박물관의 고장이라 할 만 하다. 책 박물관을 시작으로 사진박물관, 국제현대미술관, 조선민화박물관, 곤충박물관, 김삿갓 문학관 등 단종, 생육신으로 대표되는 충절과 전통의 고장답게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시설들이 유독 많다.

다양한 아이템 중에서도 묵산 미술관이 갖는 의미도 적지 않겠다. 연중으로 전시되고 있는 소장품도 고서화를 비롯하여 현대회화 천여점이 있으며, 세계 아동미술 수상작품 2000여점과 각종 미술자료 3000여점을 소장 전시하고 있으며 관장이 수집하고 있는 미술관련 책들도 5000여권에 이른다 한다.

마침 미술관에는 관장인 임상빈 화백이 머물다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특별한 기별도 없이 미술관을 찾은 누구와도 만나 말나누기를 즐겨하신다고 한다. 동강의 자연에 묻혀지낸지 이제 10여년에 가까워서, 절반쯤은 물을 닮고 또 절반쯤은 산을 닮았다. 잠깐의 대화 중에도 담백한 맛이 넉넉하게 느껴진다.

미술 평단의 평가는 과문하여 아는 바 없으나 내게 닿는 작품들의 느낌은 깔끔하고 자연스럽다. 특히나 마을 일상의 모습과 동강의 자연을 그린 작품들은 전통화법을 새롭게 해서 그런지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전통한지에 흰돌 등 천연재료를 직접 갈아 바탕 판을 만들고 그 위에 그려내는 겨울풍경은 그대로 폴폴 눈이 나부끼는 느낌이다. 적막한 마을에 쉴 새 없이 눈은 쌓이고, 나는 그대로 고적한 산촌의 풍광 속에서 어느 새 한 뼘 눈이 쌓이도록 서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미술은 자신만의 눈을 완성하고, 자신만의 손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라는 것이 말하자면 임 작가의 작품관일 수 있겠는데 머지않아 한국화단의 귀중한 성취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지난 주 예술의 전당에서 '아트 서울'이라는 기획전으로 9일부터 14일까지 전시회도 가진 소위 말하는 전국구의 작가이면서도 지역에 기울이는 애정도 각별한 듯 하다. 지역주민들을 위한 강좌에도 열심이고, 또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미술의 기초부터 설명해주는 모습이 자상하다.

그런데 왜 '검은 산(墨山)'이라 이름했을까. 그렇지만 가족단위로 쏟아져 들어오는 관람객을 맞으러 일어서는 임작가에게 그걸 물을 짬은 없었다.

어쨌든 영월은 여러 가지로 행복을 가꾸어가는 보기 드믄 지역이기도 하다. '에콜 드 영월'이라 지금은 박물관 마을, '아트 밸리(Art Valley)'로 부상하는 영월의 한 귀퉁이에서 이렇게 영월의 산하를 그려내고,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 영월의 봄은 한층 더 싱그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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