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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전을 부쳐내는 손길이나 꽃잎을 장식하는 손길이나 곱기는 마찬가지.
ⓒ 안소민

바야흐로 시절은 춘삼월. 아직 음력으로는 2월의 끝자락이지만 봄기운이 완연하다. 귓볼을 간질이는 미풍은 부드럽고 꽃나무에 드리운 기운은 화창하기만 하다.

밝고 따사로운 봄날의 향기가 그윽한 지난 15일, 전주 한옥마을에는 한 가지 고운 향기가 더해졌다. 바로 꽃과 차 향기가 그것이다. 이름하여 '전통차와 함께 즐기는 전주 화전놀이'. 이름에서부터 멋스러운 향기가 물씬 풍긴다.

전주시와 한국차문화협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우리 민족의 멋스러운 전통이라 할 수 있는 화전놀이를 재현했다. 전북을 비롯해 서울·부산·경남·대전·충남 등 전국의 차문화협회 지부 회원들이 참여해 화전을 부치고 차를 우려냈다.

들차회를 겸한 이날 행사에는 지나가는 행인들도 모두 기꺼이 자리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입안 가득 꽃냄새, 화전이 이런 맛이구나"

▲ 화전을 장식할 봄철 꽃들. 유채꽃·제비꽃·쑥·진달래…. 온통 꽃밭이다.
ⓒ 안소민
▲ 녹차가루를 저어서 만든 녹차말차. 차 위에 띄운 꽃잎이 그윽한 조화를 이룬다.
ⓒ 안소민
본래 화전놀이는 강남간 제비가 돌아와 추녀 밑에 집을 짓는다는 '삼사일'에 행해졌던 전통놀이 중 하나다.

삼짇날 무렵이면 날씨도 온화하고 산과 들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러면 아낙네들은 진달래꽃을 따서 찹쌀가루에 반죽하여 참기름을 발라 지지는 '꽃전',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다음 가늘게 썰어 꿀을 타고 잣을 넣어서 먹는 '화면'을 즐겼다.

원래는 진달래꽃으로 부치는 것을 화전이라고 하지만 이날 행사에는 다양한 화전이 선보였다. 찹쌀 반죽 위에 제비꽃·유채꽃·쑥·돌나물 등을 얹어 부친 다양한 색깔의 화려한 화전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각 지부별로 창의성과 개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들이었다.

찹쌀 반죽에도 녹차가루나 치자가루 등을 섞어 노랗고 파란 색으로 더없이 훌륭한 바탕을 만들었다. 이들 화전은 후라이팬 위에 올라가 뜨거운 열과 만나면 그 아름다운 빛깔을 더욱 진하게 드러내었다.

"아! 화전이 이런 맛이었구나!"

"말로만 듣던 화전놀이에 직접 참여해보니 우리 조상들의 멋과 흥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서 좋네요. 예전보다 먹거리나 놀이문화가 더 풍요로워진 요즘이지만 옛 조상들의 놀이에 배어있는 멋과 운치를 따르기에는 많은 부족함을 느낍니다."

부산에서 온 김경욱(45)씨의 말이다.

"이러한 전통문화행사에 참여한 것이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충남차문화협회 회원인 엄마를 따라 행사에 온 김진희(14) 학생은 "교과서에만 보던 화전놀이를 직접 보니 신기하기만 해요, 학교에서 화전놀이에 대해 배울 때는 꽃을 어떻게 먹을까 싶었는데 직접 먹어보니까 싱그러운 꽃잎 향기가 느껴져서 좋아요"라고 말했다.

녹차 후르츠 요구르트, 드셔보실래요?

▲ 녹차 꽃잎을 우려내어 만든 녹차꽃잎 차. 녹차꽃의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 안소민
▲ 녹차가루에 요쿠르트와 꿀, 과일을 넣어 만든 녹차 후르츠 야구르트. 자녀들 간식으로도 좋다.
ⓒ 안소민
▲ 차와 함께 즐기는 다도도 멋스럽기는 마찬가지. 팥·녹차·백련초·당근을 원료로 만든 앙금은 예쁘기도 하거니와 맛도 훌륭하다
ⓒ 안소민
화전놀이에 차가 빠질 수 없다. 이날 행사의 주최를 한 곳이 차문화협회인 만큼 다인들의 다도솜씨 또한 행사장의 향기를 더욱 그윽하게 만들었다.

녹차는 기본이고 황차(녹차를 완전 발효시킨 것), 녹차꽃잎차(녹차꽃잎을 말려서 만든차), 녹차말차(녹차가루로 만든차) 등 녹차를 응용한 다양한 차가 선보였다. 녹차 후르츠 요구르트와 같은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도 선보여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차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매력이야 새삼 말해 무엇할까. 그러나 팽주(다도를 주관하는 사람)가 건네주는 차향기가 입안에 가득히 퍼져 온 몸에 푸른 기운이 스며들 즈음이면 누구나 차의 매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 차는 오감을 통해 즐길 수 있는 음료다. 눈으로는 차의 빛깔을, 코로는 싱그러운 향기를, 귀로는 차솥에 끓는 물소리를, 손으로는 다기를 어루만지는 촉감을, 혀로는 차의 오미를 우리 조상들은 즐겼다고 한다.

이날은 특히 일본 다도협회 회원들의 일본 다도가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일본 회원들은 전통의상 기모노를 입고 일본 3대 유파 중의 하나인 '에도 센케'를 시연하였다.

차와 꽃이 어우러지니 '긔 더옥 반갑고야'

▲ "차맛 쓰지 않나요? " "아니~요!!" 차가 제일 맛있다는 어린이들.
ⓒ 안소민
▲ 일본다도협회의 한 회원이 '에도 센케'를 시연하고 있다.
ⓒ 안소민
오전 11시 헌공다례로 시작된 이날 행사는 비빔밥 큰잔치, 대금연주, 청소년 다례, 말차다례, 규방다례, 선비다례의 순으로 이어졌다. 특히 점심식사 시간을 이용한 비빔밥 큰잔치 시간에는 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 중의 하나인 비빔밥을 먹기도 했다.

일본 다도협회 중 이날 비빔밥을 처음으로 먹어본 한 회원은 "전주의 비빔밥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며 "여러 야채가 골고루 섞여있어 맛이 풍부할 뿐 아니라 많이 맵지 않아 외국인에게도 입에 잘 맞는다"고 소감을 말했다.

행사가 이루어진 한옥마을의 공예품 전시관의 문화마당에는 투호, 굴렁쇠, 제기, 줄넘기 등 전통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가족 단위로 외출 나온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전통놀이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기도 했다.

"…이런 좋은 경개 험없이 다 즐기니 소선의 적벽인들 이에서 더할소냐 이백의 채석인들 이에서 덜할소냐 화간에 벌려 앉아 서로 보며 이른 말이 여자의 소견인들 좋은 경을 모를소냐 규중에 썩힌 간장 오늘이야 쾌한지고…." '화전가' 중

진달래 화전을 한 입 베어무니 찹쌀의 담백한 맛에 꽃향기가 입혀져 입안에 향기로움이 퍼진다.

고운 꽃 중에서도 가장 어여쁜 꽃잎을 조심스럽게 따서 곱게 빚은 반죽에 하나씩 살포시 얹혀 부쳐내면서 화전가를 불렀던 그녀들. 시집살이의 고됨, 노동의 수고로움 등 일상의 자잘한 애환을 놀이로 승화시킨 우리 조상의 멋과 지혜로움에 마음까지 향기롭게 젖어든다.

▲ 곱게 부친 한 장의 화전에는 우리 조상들의 기쁨과 슬픔, 멋과 여유가 담겨있다
ⓒ 안소민

태그:#행사, #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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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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