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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와 연상되는 말은 무엇일까? 아마 대부분 보릿고개와 보리밥을 떠올릴 것이다. 보리는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에 여름철 끼니를 이어주던 생명의 밥줄이었다. 그런데도 보릿고개란 아름답지 못한 이름을 얻은 것은 긴긴 겨울동안 먹을 양식이 바닥이 보이는데도 보리는 아직 익지 않아 배골이가 심했던 화풀이를 보리에게 덮어씌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쌀밥 먹기 소원했지만 보리밥을 먹어야만 했던 가난한 세대들의 배고픈 한이 서려 있을 것이다. 과거의 보리는 허기를 면해주던 생명의 곡물이었으나 지금은 당뇨병등 성인병에 좋은 건강식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으나 아직도 그 고마움을 어느 누구나 표하지 않고 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참고 견디면 봄이 온다는 희망의 이면에는 과거엔 보리와 나물이 나오는 봄 이였지만 지금은 꽃피는 봄을 기다린다.

이제는 보리밥을 먹지 않는다고 말할지 몰라도 현대인은 알게 모르게 많은 보리를 소비하고 있다. 제 기억으로는 80년대의 소주병의 상표를 보면 보리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한때는 쌀보리로 소주를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맥주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보리를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다.

맥주의 주원료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호프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맥주는 맥주보리라고 부르는 2줄 보리로 만들고, 호프는 쓴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맥주보리는 제주도와 남쪽 해안가에서 주로 재배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국의 보리 생산량(2005년)을 보면 맥주보리 2만2000ha, 쌀보리 2만8000ha, 겉보리 7만7000ha으로서 일반인들이 보리차나 꽁보리밥 이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겉보리는 사실 생산량이 매우 적다.

예로부터 호남지방은 까락이 짧은 쌀보리가 주로 재배되었고, 영남지방에는 까락이 긴 겉보리가 많이 재배되었다. 아마 산악이 많아 상대적으로 추웠던 영남지방은 추위에 잘 견디는 겉보리가 지역적으로 잘 적응했을 것이다. 쌀보리는 겉보리에 비하여 알곡의 크기가 작아 쌀과 혼식하여 밥을 해 먹기에 알맞지만, 보리 문댕이라는 별칭을 얻게 한 꽁보리밥은 겉보리로만 가능한데 그 연유를 어르신들에게 물어보면 쌀보리쌀로만 밥을 만들면 싱거워서 못 먹는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그 싱거운 맛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답이 나이가 들면 그 맛을 안단다. 모를 일이다.

자! 지금부터 지긋지긋한 보리를 피할 수 없는 현대인에게 소가 먹는 보리 이야기를 들려줄 작정이다.

이제 보리는 소가 먹어야 한다. 보리밥의 지긋지긋한 기억에서 과감히 벗어나 이젠 소먹이로 발상을 전환하여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소가 먹는 보리를 총체(總體, Whloe crop)보리라고 하는데 땅 위의 보리 줄기 전체를 베어서 랩(rap)비닐로 감아놓으면 배추가 김치로 되듯이 발효되어 소가 먹는 담근먹이가 된다. 보리가 익기 전에 알곡과 줄기를 몽땅 베어서 조사료로 쓰기 때문에 수확량이 엄청 많아진다. 보리재배 농민은 일반 보리에 비하여 10~15일 일찍 보리를 베어낼 수 있고 보릿짚이 안 남으니 그만큼 수월하게 벼농사를 지을 수 있다.

국가적으로는 종실수확보다 조사료 생산으로 양곡의 보관과 소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수입되는 조사료를 대체할 수 있으므로 외화를 절감할 수 있다. 축산농가는 우선 GMO가 아니면서 무농약, 무첨가물의 보리 담근먹이를 급여하여 양질의 유기농 축산물을 얻을 수 있다. 보리를 먹은 한우는 마믈링(Marbling)이라고 하는 근내지방도가 평균 5.5로서 일반 한우고기보다 월등히 높은 고급육 보리한우가 된다.

한여름에 보리밥을 먹는 것은 겨울동안 차가운 음기를 먹고 자란 보리를 양기가 왕성한 뜨거운 여름철에 먹어 음양의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으로 계절궁합이라 할 만 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철을 음기의 식품인 보리 담근먹이를 먹여야만 젖소가 더위를 먹지 않고 한여름을 건강하게 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즉 소도 여름엔 보리 먹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보리는 까락이 있다. 까락은 광합성 능력이 탁월해서 길수록 알곡이 크게 되는 경향인데 맥주보리의 까락이 제일 길고 쌀보리의 까락이 제일 작다. 까락은 보리에 대한 꺼끄러운 추억을 남게 하였는데 이것은 소가 먹기에는 바늘 같은 존재가 된다. 까락은 생김새에 따라 거친망, 매끈망, 무망, 삼차망으로 분류할 수 있다. 거친망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보리의 까락이다. 매끈망은 까락에 까칠까칠한 톱니가 없어 매끈하게 만져지는 느낌의 까락을 지칭한다.

무망은 일반 보리밭에서 가끔 볼 수 있는데 까락이 아애 없는 보리로서 알갱이가 작아 수량이 낮아지는 단점이 있다. 삼차망이란 까락이 없어지고 삼지창 모양의 작은 흔적만 남은 까락을 말한다. 삼차망은 무망에 비하여 까락모양의 흔적이 있으므로 광합성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면서 부드러워 소가 먹기에 좋게 개량된 것이다.

총체보리는 소에 좋은 영양성분을 개량하고 대형 농기계 작업에 알맞은 농업특성을 고려하여 전용품종을 육성하였다. 선우보리, 영양보리는 거친망이나 가장 많이 보급되어 축산농가의 호평을 받았고, 매끈망으로 우호보리, 삼차망으로는 유연보리가 육성되었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까락이 뭉뚱한 삼지창처럼 변형된 삼차망 보리는 소가 먹기에 좋은 특성으로 개량된 것이다.

앞으로 소가 먹는 삼차망 보리가 많이 재배되면 새로운 개념의 보리밭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제 청보리밭에 대한 추억을 바꿔야 할 것이다. 어르신들은 사람이 먹는 까락이 있는 청보리밭을, 새로운 세대는 소가 먹는 삼차망의 부드러운 청보리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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