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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8일 오전8시 30분

이 글을 쓰고 나서 사건의 용의자가 한국계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한국계가 범인인 사건을 소재로 미국사회를 탓해서 한국인으로서 송구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누가 범인이냐, 사건의 구체적인 배경이 무엇이냐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왜 미국이 이렇게 불의의 사고를 수시로 당하면서도 총기규제를 하지 못하는가, 그 사고방식은 어떤 사회를 만들었는가, 그렇게 불건전한 미국식 자유화 이념이 한국사회로 이식될 한미FTA는 또 얼마나 위험한가' 가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널리 혜량해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 블랙스버그 경찰들이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버지니아텍 노리스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 AP 연합뉴스
미국에서 또다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비극적인 일을 당한 나라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 냉혹할 수도 있겠지만, 미국인들이 당하는 총기사건은 상당 부분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

흔히 미국을 일컬어 '술보다 총이 사기 쉬운 나라'라고 한다. 총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총기 규제 주장이 제기되지만 미국인 스스로 총기규제를 막아왔다. 탈규제를 지향하는 공화당 정권을 세운 것도 미국인 자신이다.

2002년에 방영된 MBC 스페셜 '미국을 말한다'에 의하면 미국이 매년 총 때문에 치르는 사회적 비용은 13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50조 정도라고 한다. 온갖 사고에 따르는 의료비·보안장치·금속탐지기 등에 소요되는 비용이다. 총기 사고에 의한 국민들의 정신적 손실은 계상되지 않았다.

1999년엔 약 2만9000건의 총기 사망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약 75% 정도가 여전히 '총기 소유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한다.

총 2억3000만 정, 아메리카 대륙을 위협한다

공식적으로 미국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총은 약 2억3000만 정이라고 알려져 있다(군대, 경찰 제외).

그러나 미국인들은 공식적인 통로 이외의 경로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총을 살 수 있다. MBC 스페셜 '미국을 말한다' 인터뷰에서 미국 총기사용자협회 회장 래리 프렛은 "미국인들이 소유한 총의 양이 대략 30억 정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다.(과장이 섞였다고 판단된다)

전미총기협회, 즉 NRA(National Rifle Association)는 2001년 <포춘>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로비단체' 1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미국인들에게 총을 소지할 자유는 중요하다. 미국 대통령은 낙태 문제와 총기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

미국에서 1999년에만 3282명의 어린이, 청소년이 어떤 식으로든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기 규제를 반대하는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린 지금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나라와 포괄적인 경제통합 협정을 맺으려 한다. 우리 정부의 사고방식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미국이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절대적 신념 때문이다.

그것이 투자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이어지고, 개인의 자유와 투자자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의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전한다. 개인의 자유는 곧 시장에서의 선택의 자유가 되고, 이것이 '소비자주권론' '소비자후생증대론'으로 발전한다.

개인이 총을 소지할 자유를 박탈한 나라가 훨씬 안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선 개인으로부터 총을 빼앗으면 그 개인이 위험해질 거라는 선전이 먹혀든다.

이는 "개인에게 고교선택권을 주면 훨씬 좋은 교육을 향유할 것"이라는 이상한 선전이 먹혀드는 한국의 상황과도 일면 비슷하다. 한국이 미국식 자유화 사고방식을 맹렬히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태의 자유는 불허, 총기 소지의 자유는 허가

▲ <볼링 포 콜럼바인>을 찍은 마이클 무어 감독
더 이상한 건 총기 문제엔 그렇게도 개인의 자유를 절대시하면서 낙태 문제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총기 소지의 자유를 원하는 건 백인 남성 중산층이고, 낙태 문제는 여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강자의 자유만 중요한 것이다.

미국은 강자인 투자자, 즉 자산가의 자유는 중시하면서 노동자, 민중이 누려야 할 자유에 대해선 인색하다.

투자자에게 국가제소권을 주면서 노동자에겐 국가제소권을 주지 않는 것이다. 또 강자인 자신의 이익극대화를 당연시하면서 약자인 후진국의 경제개발노력을 거세한다. 자신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게 만들어 멕시코를 영구적으로 착취하려는 것이다.

낙태 문제는 종교와 결부되어 있다. 미국식 자유화는 곧 보수화다. 보수는 결국 종교적 근본주의와 만난다.

미국은 지금 근본주의가 창궐하고 있다. 신정체제라는 말까지 나온다. 생명을 절대시하는 종교는 낙태를 금지한다. 그리하여 공화당은 낙태를 거부한다. 그런데 낙태보다 더 생명을 위협하는 총기 소지의 자유나 전쟁엔 적극적이다. 종교도 이것에 대해 낙태만큼 강하게 제동을 걸지 않는다.

결국 미국식 사회는 강자제일주의의 사회진화론의 산물일 뿐이고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총인 셈이다. 아무리 아이들이 죽어나가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총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1999년 콜럼바인, 2007년 버지니아

1999년에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화씨911>로 유명한 마이클 무어는 이 사건을 소재로 <볼링 포 콜럼바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연간 총기 피살자수. 일본 39명, 호주 65명, 영국 68명, 캐나다 165명, 프랑스 255명, 독일 381명…. 미국 1만1127명.

도대체 미국만 왜 이런 것인가? 마이클 무어는 질문한다. 그가 이 다큐멘터리에서 제시하는 답은 일단 "미국의 호전적 기질"이다. 남을 침략하길 밥 먹듯 하는 나라의 백성이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건 당연한 일일 터.

그다음 마이클 무어의 관심은 빈민사회로 향한다. 미국에서 최연소 총기사건을 일으킨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를 방치하고 생계를 위해 두 개의 직장에서 낮이나 밤이나 근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마이클 무어는 이렇게 질문한다.

"두 직장을 다녀야 하는 사회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왜 미국은 두 개의 직장을 다니며 열심히 일해도 빈곤을 대물림하는 나라가 됐을까? 그것은 미국이 자유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총기소유의 자유란 개인의 보호는 개인 스스로 하라는 사고방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것은 각 개인의 삶은 각자의 자업자득이란 생각과 통한다. 이것이 연대의 정신에 입각한 국가단위의 복지체제를 형성하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에게도 개인에게 총기소유의 자유를 인정하듯, 투자자의 자유를 인정해 국가규제를 최소화한다. 그 결과 미국은 총기사고가 범람하는 양극화 사회가 됐다.

지금처럼 '공포로 정신이 나간 미국인'들에게 총기를 쥐어줘선 안 된다고 생각한 무어 감독은 미국총기협회(NRA) '찰톤 헤스톤' 회장을 찾아간다.(<벤허>의 그 배우다) 찰톤 헤스톤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내게 주어진 권리를 즐기는 거야. 이 나라를 건설한 현명한 백인들이 내게 그런 권리를 물려줬으니까. 난 장전하는 쪽을 '선택'했어."

미국식 자유, 우리도 따라갈 것인가

▲ '한미FTA 무효 범국민대회'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한미FTA 저지 범국본 주최로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찰톤 헤스톤이 말하는 건 '선택의 자유'다. 미국식 자유주의는 모두에게 주어진 시민권을 시장에서의 선택의 자유로 치환한다. 시민을 소비자로 만드는 것이다. 보편 주권이 소비자 주권으로 치환되자 상당수 국민이 빈곤의 덫에 빠져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자는 목소리가 드높다. 고교평준화를 해체하고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한다. 스크린쿼터를 없애고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한다. 수입품 관세를 낮춰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한다. 그리고 투자자 자유를 신장시키자고 한다. 미국식 자유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총기를 규제하자는 제안조차 묵살당하는 미국이다. 그 명분은 사회적 약자가 총기소지를 못하게 되면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약자이익론이다. 약자를 위해 탈규제 자유화하자며 선진국 중에서 가장 약자가 못 사는 나라를 만든 것이 미국식 자유화인 것이다.

한국정부는 그런 미국과 '투자 자유화' 협정을 맺겠다고 한다. 한미FTA를 통해 양극화도 줄어들고 일자리도 늘어나는 등 약자의 이익이 커진다고 한다. 지지율 1·2위를 다투는 차기 대선주자들은 국가규제를 전면 자유화하겠다며 오늘도 자유화 이념 설파에 여념이 없다. 이러다 10년 후 한국사회도 '자업자득'인 몰골이 될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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