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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마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이런 원리를 안다는 것과 마음을 그렇게 쓰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래서 마음은 늘 닦아야 하는 것이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닦는 것이 수련과 명상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세수하고 거울보고 얼굴을 가꾸듯이 늘 마음을 살피고 돌보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주일 정도 목욕을 안 하거나 며칠 얼굴을 안 씻으면 찜찜해서 견디지 못하면서도 마음은 평생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제대로 된 수련을 처음 한 것은 1992년께다. 난생처음으로 나의 본 모습을 맞대면하는 자리가 되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갈등과 망상이 멈추고, 물질적 오랜 습이 멈추었다. 텅 빈 충일감이 있었다. 동학에서는 이를 성품자리라고 한다. 불가에서는 견성이라고도 하고 무념이라고도 한다. 순간에 깨어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때의 충격은 엄청났다. 물질작용 중심으로 생각하고 정치체제와 사회구조문제로 모든 세상사를 읽고 있던 내가 비물질의 엄청난 세계를 접하는 기회였다고 할 수 있다. 사회구조문제와는 별개로 개인의 심성과 영성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꼭 1주일 동안을 세상과의 인연을 딱 끊고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야마기시 공동체에 가서 '야마기시 특별연찬강습회'를 한 것이다.

수련원을 나설 때 온 세상이 달라 보였다. 긴 시골길을 걸어 나오는데 보이는 모든 것, 들리는 모든 것이 새 세상이었다. 세상이 달라졌으니 나의 생활도 예전과 같을 수가 없었다. 수련기간은 1주일이었지만 사실 내 생을 온통 걸었던 일주일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를 쓴 독일 태생의 에크하르트 톨레의 경험과 견줄 만하다. 책에 보면 그는 우울증으로 청소년 시절에 몇 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다시 자살을 생각하면서 '나는 더이상 나 자신과 함께 살 수 없어'라고 중얼거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순간 또 다른 '나'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가짜 '나'를 버리고 진짜 '나'를 보게 되는데 그 순간 새들의 지저귐과 밝은 햇살이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신비함 그 자체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수운 최제우의 '용담유사'에도 보면 경주 멸적굴로 들어가 죽기를 각오하고 49일 기도를 시작할 때 계곡의 물소리와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마저 어리석은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같은 간절함이 우리를 마음의 근원자리에 가 닿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사회운동만 해 온 지독한 유물론자였던 내가 1주일 동안을 화두를 들고 씨름을 해 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수련 기간에 위기가 여러 번 있었다. 뛰쳐나가는 사람이 실제 있었다. 수련원에서 맞은 여러 번의 내 정체성 위기는 나를 송두리째 흔들면서 비약적으로 내 의식을 심화시켰다. 큰 공안사건에 휘말려 몸과 마음이 완전히 파괴되어 있던 내가 존재의 위기를 겪고 있었던 것이 오히려 마음공부에 집중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뒷산 약수터에 운동 삼아 약수를 뜨러 갔었다. 길게 늘어진 통 수만큼의 인간들이 물통 곁을 지키고 있었다. 자리를 뜰 때도 동행한 가족을 불러 세우곤 했다. 달라진 세상에서 달라진 나는 그들과 같을 수가 없었다.

내 물통을 제일 뒤에 갖다 두고 '나 없어도 잘 있거라'고 부탁을 하고 철봉에 매달리기도 하고 윗몸 일으키기 등 운동을 하고 돌아왔더니 내 물통만 동그마니 뒤에 처지고 다른 물통들은 다 앞으로 가 있었다. 내 뒤에 있던 물통들도 다 내 앞으로 나가 있었다.

"하하. 다른 물통들은 다 부지런히 앞으로 갔는데 내 물통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네. 하하" 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내 물통을 줄의 제일 뒤에 갖다 붙였다. 그러자 한 사람이 나더러 물통주인이냐며 자기 앞에다 갖다 놓는 것이었다.

뒤로 밀려났던 내 물통이 아무도 상하게 하지 않고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간 것은 당시 탐독하고 있던 고엔카의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는 책의 영향도 컸다고 본다. 이 같은 일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아무리 힘겹고 어려운 문제에 부닥쳐도 고요한 상태로 바라보기만 할 수 있다면 더이상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넷째마디] 마음공부, '단지 바라볼 수 있는' 힘 기르기

그때부터 시작된 마음공부는 때로는 급격히, 때로는 느리게 나를 변화시켜갔다. 내 변화의 방향은 마음이 편하고 무슨 일이든 즐겁게 하게 하는 쪽이었다. 누구하고든 관계를 잘 풀고 나를 감추지 않고 잘 드러내게 하는 쪽이었다. 비록 나를 놓치고 격한 기분에 휩쓸리더라도 오래가지 않았고 금세 산뜻하게 본심 자리로 돌아왔다.

감정이 격해진 상태의 나를 바라볼 수 있으면 이미 그런 기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내게 맞는 기법을 개발한 것들도 많이 있다. 예컨대 마음이 중심을 잃었을 때는 이를 작은 소리로 내게 확인시켜 준다.

'희식아 네가 지금 잔뜩 화가 나 있구나. 그래 화가 날만도 하지 그치?', '너 지금 우울하구나. 심란한 일이 있나보네?' 등이다.

이를 요약하자면 순간에 살기, 판단-분별 이전에 머물기,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 내 뜻대로 창조하기 등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문제는 순간에 깨어있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자신의 상태를 깨닫는 것이 첫 관문이 된다. 화가 엄청나 있는 자기를 발견하고서도 '나 지금 화를 더 오래 내야 돼. 지금 이대로 화가 없어지면 안 돼!'라고 고집 부리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화 그 자체에 휩쓸려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의 경우다. 따라서 마음공부는 모든 현상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고 그러한 자기를 '알아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야마기시 수련원에서 '공분'과 '의분'의 정당성에 대한 연찬도 했었다. '화가 없이는 해 낼 수 없는 일이 있는가?'라는 주제로 연찬하였다. 당연히 그런 일이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마음공부 초기의 내 과제는 분노나 미움 없이 세계를 개혁하는 것이었다. 변혁운동을 하면서 분노하고 공격하면 그 순간 내 속에 분노의 기운, 공격의 기운이 꽉 차면서 스스로 내상을 입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대표로 있던 단체가 엠티를 갈 때 명상적 엠티를 접목해 봤는데 아주 성공적이었다. 격한 토론과 뒤풀이 술잔치에서는 맛볼 수 없는 깊은 공명을 불러 일으켰다.

그 후 94년 말, 동사섭 프로그램을 처음 하고는 바로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었다. 행자수련원에 들어갔고 수계를 받았으니 내 초발심이 대단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 후 지금까지 해 온 수련은 참으로 다양하고 꾸준하였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수련을 하는 동안 맛보는 깊은 환희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단지 먼 미래를 밝혀 줄 고행이기만 했다면 절대 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3년여 전에는 '인산 뜸' 수련을 했다. (* 다음 기사에서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열린전북> 4월호 '전희식의 생명이야기 네번째 마당-마음공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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