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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합니다. 지난달 16일 두산중공업 주주총회를 통해 등기이사로 선임된 것입니다. 2005년 공금횡령과 분식회계 혐의로 기소된 이후 15개월만입니다.

IOC 위원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그리고 두산그룹 회장 등을 역임했던 박용성 회장은 회사돈 286억원을 횡령하고 2332억원을 분식회계 한 혐의로 기소되어 지난 2006년 7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80억원의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올해 2월 사면복권 되자 3월 주주총회를 거쳐 경영일선에 복귀한 것입니다.

회사 돈을 훔치고 거짓으로 회계장부를 꾸며 주주와 투자자 등을 기만한 행위에 대한 형벌 치고는 너무 가볍고, 죄값을 제대로 치루고 다시 복귀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경제사범에 온정적인 대한민국 사법부

분식회계는 우리 기업의 고질적인 병폐중의 하나인데요. 지난 2005년 4월 24일 보도된 <연합뉴스>의 '국내 상장·등록기업 10개중 2개 분식회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상장·등록 기업 10개 가운데 2개는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고, 분식회계를 이유로 처벌받은 국내 기업인들도 다수입니다.

대표적으로 SK글로벌이 1조5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로 최태원 회장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20조원대의 분식회계와 10여조원의 사기 대출로 김우중 회장이 징역 8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분식회계와 관련하여 미국의 양형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분식회계로 파산한 미국의 엔론사의 사례가 대표적인데요. 엔론의 전 CEO인 제프리 스킬링은 15억 달러(약 1조4100억원)규모의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 24년 4개월을, 110억 달러(약 10조3455억원)의 분식회계를 한 월드컴의 전 CEO인 버나드 에버스는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를 두고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낸 제프리 존스 변호사는 "한국 법원이 미국에 비해 아주 인간적이라며, 우리 사법부가 경제사범에 대해 온정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들은 제프리 존스 변호사가 미국 법원이 분식회계에 대해 너무 가혹한데 반해, 국내 사법부는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여 온정적인 판결을 하고 있다며 긍정적이라고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 주요분식회계 사건에서 미국의 양형.

이처럼 우리 관점에서는 미국 법원이 기업인 범죄에 대해 엄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미국에서는 오히려 '관대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고 하네요.

미국 기업 타이코인터내셔널의 CEO로 재직하다 수억 달러를 착복한 혐의로 징역 8년4개월~25년형을 선고받은 데니스 코즐로우스키(59)에 대해 가 실시한 온라인 여론조사에 따르면, 2만3280명이 참여한 조사에서 코즐로우스키의 형량에 대해 55%가 '너무 관대하다'고 응답했으며, '너무 가혹하다'는 응답은 8%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또한 월드컴의 에버스 판결 선고 당시 똑같은 조사에서도 대부분 '적정하다'(51%) 또는 '너무 관대하다'(29%)고 응답했다고 하네요. (<경향신문> 2005년 9월 20일, 미 회계부정 CEO 줄줄이 중형 선고)

사회적·문화적 토대가 다르고, 법원의 판단기준이 다른 만큼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국내 법원이 지나치게 기업인 범죄에 대해서 관용을 베푸는 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가진 자에게는 유독 선처를 베풀고 없는 자에게는 가혹한 법원의 판결이 사법부의 불신을 초래하는 현실입니다.

이는 지난해 노회찬 의원실이 밝힌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죄를 지은 기업가 53명중 49명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고, 11명은 이미 사면복권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서울중앙지법의 횡령 사건 461건(2002년 1월~2005년 8월)을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종업원·배달원 34명의 평균 횡령액은 평균 636만원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15명(44.1%)에 이르는데 반해, 사장님을 포함한 기업의 고위임원 83명의 평균 횡령액은 46억원에 달하는데도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28명(33.7%)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일례로 77만원의 음식대금을 횡령한 중국집 배달원은 징역 7월의 실형을 산데 비해, 286억원을 횡령한 두산그룹 총수 형제는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이죠. 물론 죄의 경중을 단순히 돈의 액수로만 따질 수는 없겠지만, 공금이나 남의 재물을 불법적으로 차지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점, 기업인의 범죄가 오히려 더 치밀하고 계산적이라는 점에서 법 집행이 공정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업인에 대해 검찰은 불구속 기소하고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대통령은 확정 판결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면권을 행사함으로써 기업인 범죄에 대한 단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입니다.

하나마나한 윤리경영

법원의 양형과는 별개로 도덕적·윤리적으로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입니다. 두산중공업은 박용성 회장이 대주주로서 글로벌 경영과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 박용성 회장은 두산중공업의 주식을 단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룹 전체로 보더라도 3.24%밖에 되지 않아 '대주주 책임경영' 운운은 말이 안된다고 비판받습니다.

또한 이미 법적 처벌을 받았고 사면·복권되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이는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죄는 인정하되 벌칙은 면해주는 것에 불과하고 2월에 사면복권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3월에 바로 복귀하는 것은 잘못에 대한 반성도 없이 복귀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국내 기업들이 사회와 국민이 기대하는 높은 윤리 수준에 맞춰 행동하고, 임직원들도 이러한 기준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는 윤리경영을 실천한다고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앞서서 대내외적으로 윤리경영을 선포하고 지켜야 할 윤리강경을 제정하며, 사무국을 설치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노력들 때문인지 기업의 부패관행이 많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언론을 통해서도 윤리경영을 위반한 직원에 대한 징계도 종종 보도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오너나 최고경영자 등 기업의 상층부에는 윤리경영이라는 잣대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직원들은 윤리경영을 위반을 이유로 징계를 받곤 하는데 말이죠. 박용성 회장이 복귀한 두산중공업도 윤리경영을 실천한다고 하지만 당당하게 복귀하고,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도 확정판결 전이기는 하나 죄를 지었음에도 여전히 직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윤리경영 직원은 물론 최고경영자에게도 적용돼야

두산중공업 윤리강령 .규칙

3. 두산중공업 및 그 임직원은 신의성실을 바탕으로 일을 하며, 법령을 준수하고 건전한 사회관습을 존중한다. (두산중공업 윤리강령)

3.1 회사의 재무제표 및 그 기초가 되는 회계장부와 회계기록에는 회사의 모든 거래가 회계원칙에 따라 사실과 부합되도록 정확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두산중공업 윤리규칙)
임직원 윤리강령은 직원은 물론 오너나 최고경영자에게도 적용되는 기업 자체의 내부 규범입니다. 이러한 기준을 누군가에게는 적용하여 징계를 하고, 오너나 최고경영자에게는 나몰라라 한다면 이는 있으나 마나한 것이고 스스로 장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한 꼴입니다.

특히 두산중공업은 박용성 회장의 횡령과 분식회계를 비판한 직원에 대해 징계위원회를 열어 권고사직을 결정하기도 해서 형평성에 아주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업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이나, 오히려 기업의 명예를 훼손한 이는 횡령과 분식회계 범죄를 저지른 박용성 회장일 것입니다.

'윤리경영과 기업의 이익이 상충한다면 윤리경영을 선택하겠다.'

지난 2004년 포스코 이구택 회장이 윤리경영을 선포한지 1년이 되던 날에 언급했던 이야기입니다. 임직원이 행동할 때, 지금하고 있는 행위가 윤리경영에 위반된다면 회사의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윤리경영을 선택해야 한다며 윤리경영은 장기적으로 회사에 이익이 된다는 의미에서 했던 말입니다.

윤리경영 실천이 한낱 구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임직원 모두에게 공정하게 적용되고, 오너나 최고경영자라 하더라도 예외가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닌 기업 스스로의 실천 의지이니 만큼, 과연 두산중공업의 윤리경영 잣대로도 여전히 박용성 회장이 등기이사로 복귀하는 것이 정말 스스로 거리낌이 없는 것인지 되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블로그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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