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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에서 범인이 사용한 총과 동일한 글록19 권총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에서 범인이 사용한 총과 동일한 글록19 권총 ⓒ AFP·연합뉴스
버지니아텍(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으로 미국의 총기 소지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미 언론들의 결론은 대부분 일치한다. 이번 사건으로 총기 소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겠지만 실제로 총기 소유가 제한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인들이 보유한 총기는 2억5000만정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인구가 약 3억명 정도니 성인 모두를 무장시킬 정도의 양이다. 미국은 총기 사고로 해마다 3만명 정도가 사망한다.

그렇지만 총기 규제에 총대를 메겠다고 나설 정치인은 거의 없다.

공화당도 민주당도 피하고 싶은 '총'

일단 미 수정헌법 2조는 "인민들의 총기 소지와 휴대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총기를 규제하면 엄청난 헌법상의 논란이 불거진다.

총기 소유 찬성자들은 정치적으로 훨씬 더 적극적인데다 미국 최대의 로비단체인 총기협회(NRA)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공화당은 원래 총기 소지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전통적으로 총기 규제에 우호적이었던 민주당도 몇 번의 선거에서 패배한 경험 때문에 다시 이 문제를 선뜻 꺼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국 미 <뉴욕타임스>가 '국내 살인자(killer at home)'라고까지 불렀던 총기 소지를 막을 현실적인 방법은 없는 셈이다. 미 CNN은 18일 "이번 사건으로 총기 규제가 다시 정치적 쟁점이 될 것인가?"라고 묻고 나서는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총기 규제는 정치인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문제였다"고 보도했다.

지난 1981년 3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정신질환자인 힝클리에게 저격 당했다. 이때 짐 브래디 백악관 대변인도 총에 맞아 반신이 마비됐다. 한참 지난 뒤인 지난 1993년 총기 구입시 일정 기간의 자격심사 등 조건을 까다롭게 한 브래디 법이 만들어졌다.

또 1994년에는 러시아제 AK-47이나 이스라엘제 우지 기관단총 같은 공격용 무기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CNN은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가? 민주당은 선거에서 패배해 의회 권력을 상실했다"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총기 소지와 관련된 로비가 민주당의 패배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민주당은 총기 문제를 회피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더구나 위의 두 법안은 지난 2004년 효력을 상실했다.

앨 고어·존 케리, 총기 문제 건드렸다 대선 패배

미국에서 총기소지 문제에 대해 자유로운 정치인은 거의 없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총기소지 문제로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국에서 총기소지 문제에 대해 자유로운 정치인은 거의 없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이번 사건과 관련해 "총기소지 문제로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 백악관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앨 고어와 존 케리도 총기 문제를 건드렸다가 패배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1999년 4월 콜로라도 주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13명이 숨지자 당시 앨 고어 부통령은 총기 규제를 포함한 청소년 범죄 법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1년 뒤 이 법안은 하원에서 갑론을박을 벌이다 폐기됐다.

고어는 2000년 대선에서 총기 규제를 언급하면서도 "사냥 등 스포츠로 총기를 즐기는 것은 제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미국총기협회(NRA)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18일 AP통신은 "2000년 대선 때 고어가 총기 찬성 지지가 압도적인 농촌 지역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할 것으로 예상됐다"며 "많은 정치 분석가들은 총기 규제 찬성 때문에 고어가 2000년 대선에서 패배한 것으로 본다"고 보도했다.

2004년 대선 때 민주당 존 케리 후보는 미 수정헌법 2조를 옹호했다. 그러나 미국총기협회는 "우리는 지난 20년간 당신이 총기 소지 권리에 반대했음을 알고 있다, 케리는 미국의 총기 소유자를 우롱하고 있다"고 광고를 내보냈다.

지난 1871년 창설된 NRA는 46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미 최대의 로비 단체다. 이들의 로비 공세에 당해 낼 정치인은 드물다. 현재 공화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원래 총기 규제를 찬성했는데 올해 들어서는 "총기 제한은 (연방정부가 아니라) 각 주가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으로 한발 뺐다.

지난 1990년대 이래 총기 규제에 관한 미국민들의 지지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도 지적된다.

CNN에 따르면 올해 1월 여론조사 결과 좀 더 엄격한 총기 규제에 찬성하는 비율은 49%로 1990년 이래 처음으로 50%를 밑돌았다. 1994년 이후 점차 범죄율이 낮아지는 것이 한 이유로 분석됐다.

물론 버지니아 공대 사건과 같은 참상이 벌어지면 다시 총기 규제 지지도가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대중적 분노는 장기간 지속되지는 않는다.

CNN은 "총기 소지 찬성자들은 총기에 대한 그 어떤 제한도 자신의 권리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하고 투표 한다"며 "그러나 총기 규제 찬성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총기 소지 찬성자들의 행동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표' 앞에선 작아지는 총기 규제 목소리

민주당 소속 찰스 랭글 하원 의원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총기 소지 지지자들은 너무나 영향력이 크다"며 "설사 85%의 사람들이 더 강력한 총기 규제를 지지하더라도 나머지 15%는 훨씬 더 활동적이고 목소리가 크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총기 소지라는 헌법적 권리에 도전하는 것은 대단히 인기 없는 행동이다, 총기라는 민감한 문제를 떠맡고 나설 정치인은 거의 없다"며 "이 문제에 관한 거대한 변화는 먼 미래의 일"이라고 보도했다.

이 때문인지 버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이 벌어진 현재 총기 규제에 대한 민주당 정치인들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해리 라이드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는 "지금은 희생자들을 생각할 때지 미래의 법률 전쟁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력한 총기 규제론자였던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도 "이런 비극을 막을 조치들에 대해 논의할 시간이 올 것"이라면서도 "오늘 우리의 생각과 기도는 희생자들의 가족에게 가야한다"고 밝혔다.

조지 부시 대통령도 ABC TV에 출연해 "물론 정치적 논란이 벌어질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가 이번 사건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 될 때까지 그 문제로 논란을 벌일 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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