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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들은 18일,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사건의 용의자가 한국인임을 1면 머리기사로 일제히 보도했다.
한국 언론들은 18일,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사건의 용의자가 한국인임을 1면 머리기사로 일제히 보도했다. ⓒ AP 연합뉴스 이진만
버지니아텍(버지니아공대)에서 일어난 총기난사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미국 교포들은 물론 한국인들까지 공황상태에 빠졌다. 미국 교포들이나 유학생들은 인종 차별에 따른 보복이 있을까봐 두려워하고 한국인들은 한국에 대한 나쁜 인상이 심어지거나 심지어는 향후 비자 면제나 외교 문제에 악영향을 끼칠까 염려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은 물론 주류 언론들까지 범인이 한국인 영주권자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대통령부터 외교통상부와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회에 큰 죄를 지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누리꾼들은 조승희씨의 것으로 보이는 개인 웹사이트까지 공격했다고 한다. 이들의 행동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인간에 대한 분노와 무고하게 살해당한 사람들에 대한 애도가 아닌,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느끼는 수치와 한국인 조씨에 대한 비난에서 비롯됐다.


한국은 집단주의 문화 - 미국은 개인주의 문화

미국 교포들은 물론 한국인들까지 공황상태에 빠진 것은 문화 차이 때문이다. 문화 구분으로 가장 흔하게 이용되는 것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 구분이다. 개인주의 문화권은 북미와 서유럽 등 우리가 흔히 서양사회라 일컫는 곳이고 그 외 지역은 대부분이 집단주의 문화 성향이 강하다.

또한 개인주의 문화는 산업화가 진전되고 민주주의가 발전될수록 더욱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개인주의 문화라 해서 집단주의 성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집단주의 문화라 해서 개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이 문화 구분은 한 사회와 그 구성원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한국 사회의 경우 강한 집단주의 문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물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지만 이번 사건과 같은 상황에서는 집단주의 성향이 첨예하게 드러난다.

집단주의 문화에서의 개인은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자기소개를 할 때 내가 어떤 사람인가 보다는 어느 회사, 어느 지방, 어느 학교에 소속됐는지 등을 밝히는 것도 집단주의 성향 때문이다.

그리고 집단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했을 때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절박한 상황에서 국가, 학교, 직장, 가족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이 비난을 받으면 그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수치심이나 죄의식을 느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철저하게 개인의 이익이 우선이다. 국가, 학교, 직장의 이익은 자신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인정된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행동은 이기적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런 이유로 개인의 이익이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심한 비난을 받는다.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소재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에서 16일 32명이 숨지는 사상 최악의 교내 총격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전쟁 기념관앞에서 학생들이 모여 사망한 학생들을 추모 하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 소재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텍)에서 16일 32명이 숨지는 사상 최악의 교내 총격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전쟁 기념관앞에서 학생들이 모여 사망한 학생들을 추모 하고 있다. ⓒ AP 연합뉴스
미국선 오히려 "범인이 한국인인 게 왜 문제지?"

일부 언론들은 미국인들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한국인이 범인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지 않자 오히려 놀라는 분위기다. 또한 이런 분위기를 미국인들의 포용적인 자세로 해석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이런 시각은 문화적 차이에서 접근해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총기 사건은 조승희라는 한 개인이 저지른 일이고 그의 가족조차도 이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범인이 한국인인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등 인종에 초점을 맞춘 질문에 당황했을 것이다. 특히 다문화 사회이면서 개인주의 문화가 강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질문일 것이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문화의 특성은 살면서 자연스럽게 터득되는 것이고 집단 내에서의 소통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한국 교포들처럼 한국문화를 유지하고 상호간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사는 경우에는 미국에 있으면서도 집단주의 성향이 잘 나타난다. 그러나 주류 미국 사회의 경우 개인주의 문화가 어느 사회보다 강하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개인주의나 집단주의 문화 모두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가 다른 것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 가지 문화가 접촉하는 이른바 교차문화(cross-cultural) 상황이 되었을 때는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미국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미국 문화의 시각에서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인들이 이번 사건에서 미국인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집단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교차문화적 상황에 익숙하지 않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고 미안할 이유 없어... 인류애로서 애도해야

황우석 사태가 일어났을 때도, 여성가족부가 성매매 예방 캠페인과 관련해 물의를 빚었을 때도,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연연했다. 그리고 국가 망신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한국인들은 모두가 한가족인 것처럼 행동하고 국가이익을 우선시하면서 여론을 통일시키려 애를 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개인주의 문화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전 세계로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비난을 받는 미국의 국민들은 세계를 여행할 수도 없고 그 많은 비난에 대한 저항 또는 죄책감 때문에 만성적인 정신적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번 사건은 미국 문화의 시각에서 이해해야 하고 한국이나 한국 문화가 범행에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한국인을 강조할 이유도, 한국인들이 미안해할 이유도 없다. 그보다는 국가의 경계선을 넘은 인류애에 기반해 억울하게 죽어간 자들에게 애도를 표해야 한다.

무엇보다 총기 사건이 빈발하는 가운데서도 총기규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있는 미국 정부를 비난해야 한다. 그리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도 집단적 이익의 차원에서 비난할 것이 아니라 자세한 상황이 알려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최소한의 인권은 지켜주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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