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빡빡머리를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엄마는 아빠가 병이 깊어지면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는 더욱 악착같이 일을 해야 했다. 아이 둘에 병든 시어머니까지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약직 근로자로 일하는 엄마는 손목이 붓고 시큰거리도록 일을 했다.
엄마는 3개월 전부터 파업투쟁 중이다. 정민이와 동민이가 찾아간 그날 엄마는 마지막 수단으로 다른 농성자들 몇몇과 머리를 깍았다. 엄마의 머리는 유난히 탐스러웠다. 아빠도 엄마 머리에 반해 결혼했다고 했다. 그런 머리를 깍은 것이다.
<빡빡머리 엄마>는 계약직 근로자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가족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정민의 시각에서 풀어나간다. 그래서 엄마가 파업을 하게 된 동기라든지, 엄마가 얼마나 파업하면서 겪는 고초라든지, 이런 이야기 보다, 계약직 근로자로 파업까지 하고 있는 엄마를 둔 가족, 아이의 생활에 초점을 맞추었다.
엄마가 직장만 다녀도 아이들을 제대로 챙길 수 없어 걱정인데, 정민이네 경우는 3개월째 엄마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생활비도 바닥나고 나이 어린 정민이는 어린 동생과 병든 할머니를 돌보며, 집안 살림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활비 걱정도 해야 했다.
정민이는 이런 자신의 처지에 화가 나고 엄마가 원망스럽다. 그런데 막상 엄마 얼굴을 보면 화를 낼 수 없다. 추운 천막에서 새우잠을 자며, 고생하고 있는 엄마 앞에 서면 그만 입을 다물고 만다.
1500원짜리 생태 앞에서 망설이는 정민을 보고, 차비 아끼려 먼 길을 마다 않고 장을 보러 걸어가는 정민을 보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동민이 재롱잔치에 엄마 대신 온 정민이는 같이 사진 찍고 자장면 먹자는 이웃 아주머니의 호의를 뿌리친다. 그런 후 호주머니 톡톡 털어 동생에게 어묵을 사주는 정민이의 마음을 이해 할 것 같다.
<빡빡머리 엄마>를 읽으면서 내 주위에도 분명 정민이네처럼 어려운 형편에 놓인 이웃이 있을 텐데, 그런 이웃들이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예전엔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이웃의 형편을 알고 지내는 경우도 드물 뿐더러, 도움을 주고 받는 것도 기관에 의해 제도화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나를 비롯한 일반인들은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으로 의무를 다했다 생각하고 기관에 책임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기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형식적인 부분이 많아 경제적 손실도 많고, 인간 간에 나누는 정을 느끼기 어렵다. 예를 들어 정민이네 세탁기가 고장난 것을 이웃 중 누군가 알았더라면 중고 세탁기라도 구해다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엄마가 3개월째 집을 비우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생태찌개를 넉넉히 끓여 같이 나누어 먹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정민이네는 그런 이웃이 없었다. 나 역시 그런 이웃이 되어 주고 있지 못하다. <빡빡머리 엄마>를 통해 계약직 파업근로자와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이해로 끝나서는 안 될 것 같다.
무엇보다 먼저 가까운 이웃에게 친근감 있는 인사를 주보 받는 일부터 해야겠다. 그래야 내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이 무엇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빡빡머리 엄마/ 박관희 지음 / 낮은산 펴냄
이 기사는 리더스 가이드, 알라딘, 네이버, 예스 24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